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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기문 Sep 30. 2015

청춘, 어른이 되지 못하다

이 시대의 청춘은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렸다.

예전에는 나는 쉬운데, 우리 친구들이 어려워서 못 따라 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어른이 다 되었으니까. 뭐든 잘할 수 있을 거예요.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의 수많은 어록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다.  

그는 코딱지들의 구겨진 마음을 펴냈다. 어린 시절의 그 빛깔로 다시 예쁘게 접어냈다.' 어른이 되었으니까 뭐든 잘할 수 있다'는 말이 대체 무엇이길래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하고 서른 넘은 이의 눈에 눈물을 핑 돌게 한 것일까.



언제가부터 청춘은 어른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미숙한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보호받고 훈육받아야 할 대상이 돼버렸다. 만화가 이현세는 기성세대가 던져주는 달콤한 힐링에 넘어가지 말라 한다. 힐링은 청춘들을 그저 어린아이에 머무르게 한다.  위로와 격려의 말들은 늘 따스하다. 포근하다.  하지만 그 달달함은 기성세대와 동등한 어른이 되지 못하게 했다. 그 결과 청춘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구성원이 가져야 가장 중요한 권리와 의무를 빼앗겼다.

  

가장 중요한 권리와 의무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말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모습은 이 나라를 살아가는 수많은 세대와 계층들이 논의하고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 소수의 사람만이 세상에 대해 말하고 평가한다면, 우리는 결국 대한민국의 단면만을 볼  수밖에 없다.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없다. 상상하는 힘을 떨어지게 한다. 창의성을 잃게 한다.


하버드 석좌교수인 노엄 촘스키는 고도의 교육을 받은 지식인만이 이 사회에 대한 분석작업을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이 사회에 뿌리내리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촘스키가 말한 우려가 우리 사회에 나타나고야 말았다.


종합편성 채널이 생긴 이후 TV에 출연하는 의사와 변호사들이 부쩍 증가했다. 대한민국에서 오랫동안 지식인 계급이었던 그들이 우리의 담론들을 독차지했다. 의료 문제나 법률문제가 아닌 것에 대해서도 그들이 말하고 화두를 지배해 나가기 시작했다. 미디어에서는 나이가 마흔은 되어야 하고, 전문직  자격증 하나쯤은 있어야 어른으로서, 사회에 대한 발언권이 생긴다고 말하는 듯하다.


토론 프로그램에 20대와 30대가 보이지 않는다. 버스 한 번 타 보지 않는 사람들끼리만  버스비에 대해 평론한다.  몇십 년 전에 대학을 나온 사람들만이 2015년의 대학을 말한다. 정작 문제의 당사자들은 늘 담론에서 빠져있다. 청춘들을 어른이 되지 못하게 한다. 기득권이 생산하는 화두의 소비자로서만 존재한다. 생산자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   


내비게이션은 삼각 측량법으로 작동한다. 저 하늘 위에 보이지 않는 위성의 힘으로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산출해낸다. 한 두 개의 위성만으로는 정확한 위치를 알 수가 없다. 위치는 수많은 위성들의 합산에 의해 측정된다. 삼각 측량법에 참여하는 위성의 숫자가  많아질수록, 우리의 위치는 더욱더 분명해진다.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은 지구 상 최고다. 지성인이라 말할 수 있는 대학생이 가장 많은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세계에서 다양한 담론들이 가장 많이 나와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소수의 사람만이 담론을 지배하고 있다.  한두 개의 위성만으로는 대한민국이라는 내비게이션을 작동시킬려니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변호사와 의사와 같은 특정 계층이나 기성세대들 만이 사회. 정치적 분석을 한다면 세상은 왜곡이 생길  수밖에 없다. 20대와 30대가 어른으로서 당당히 수많은 담론들의 한 축을 담당해야 한다. 그래야 곡해가 생기지 않는다.


사회. 정치적 분석을 하는 데는 대학생의 지식을 넘어서는 그 이상의 지식이 필요한 것일까? 사람으로 태어나 마흔은 되어야 세상에 대한 발언을 할 수 있을까? 그 물음에 촘스키는 단호히 아니라고 답한다. 사회 정치 문제 분석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춘 데카르트적 상식만 있으면 된다고 한다. 데카르트적 상식이란 편견 없이 사실을 바라보고, 간단한 전제 조건들을 시험해보고, 결론이 나올 때까지 논의를 추구하는 자발적인 태도를 말한다. 즉 누구나 학력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말하는 데 있어 필요한 것은 단 하나다. 대한민국을 살아온 경험이다. 의사 자격증과 변호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서, 나이가 많지 않다고 해서 내가 사는 세상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자격이 없는 것이 아니다.  20대가 20대의 대한민국을, 30대가 30대의 대한민국을 들려주어야 할 때이다. 이제는 청춘이 어른이 되어야 할 때이다.


 



인터넷 서점 '예스 24'에서는 매년 한국을 대표하는 젊은 작가상을 시상한다. 올해는 '소설가의 일'의

저자 김연수 작가가 수상했다. 김연수 작가는 46세이다. 한국에서는 40대도 아직은 젊은 축에 속한다. 30대 초반의 작가도 보기 힘들다. 20대 작가는 멸종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글쓰기 도구는 날로 발전하는데 20대의 이야기를 담겨 있는 책을 보기가 힘들다. 책은 문화가 담긴 지성의 총채이다. 책을 생산하지 못하는 세대는 책을 소비할 수도 없다. 20대의 윤동주가 서시를 써낸 것처럼, 우리의 20대가 예전처럼 어른이 되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세상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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