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분명 일을 빠르게 정리해 준다.
하지만 그 결과를 받아보는 순간,
손이 완전히 빠졌다는 안도감을 느끼기는 어렵다.
자료를 고쳐 달라 하면
앞부분은 좋아지는데 뒷부분이 어색해지고,
표현을 다듬어 달라 하면
문장은 매끄러워지지만
의도는 살짝 비켜간다.
하나를 맞추면 다른 하나가 어긋난다.
결국 다시 처음부터
내 눈과 손으로 훑어 내려가야 한다.
정리하지 않아도 될 일들을
정리하느라 시간을 쓰고,
도구를 썼음에도
나의 개입은 줄어들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두고
AI가 아직 ‘신입사원’ 같아서 그렇다고 말한다.
시키는 건 잘하지만
맥락을 알아서 짚지는 못한다고.
그러면서도 우리는
AI를 유독 엄격하게 대한다.
조금만 어긋나도
“제대로 좀 해라”는 말이
쉽게 튀어나온다.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마주한 것이
정말 신입사원이라면,
우리는 이렇게까지 대했을까.
진짜 신입사원이라면
잘 안될 때 조금 더 설명해 주고,
한 번쯤 기다려 주고,
“아직 몰라서 그럴 수 있다”는 말로
한숨을 갈무리했을 것이다.
사람에게는
그런 여백이 허락되기 때문이다.
신입사원의 부족함은
단순한 능력의 결여가 아니라,
선배가 대신 책임질 수 있는 영역이다.
그 책임을 전제로
관계는 유지되고,
일은 조금 느리더라도
다음 단계로 이어진다.
하지만 AI 앞에서는
그 여백이 좀처럼 허락되지 않는다.
우리가 던진 말은
곧바로 차가운 결과의 형태로 돌아오고,
사람 사이였다면
굳이 묻지 않았을 애매한 지점까지
내가 다시 논리로 증명해야 한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눈빛으로 넘어가 주던 그 부분을,
이제는 하나하나
정확한 지시어와 데이터로 메워야 한다.
결국 AI에게 화를 내는 이유는
사람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생략되던 맥락과
조용히 넘어가 주던 ‘배려’가
이 기계적인 관계에서는
작동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AI 이전에도 우리의 일은
늘 완벽하지 않았다.
다만 그때는
어긋난 틈을 굳이 비추지 않는
특유의 ‘조용함’이 있었다.
지금은 그 조용함이 사라지고,
비어 있던 자리마다
설명과 증명이 필요한 것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그래서 요즘 나는
효율보다
‘남겨둠’을 더 자주 떠올린다.
AI가 채워주는 결과물 사이에서,
사람에게만 남겨두어야 할 여백은
어디까지였는지.
돌아보면
일이 늘 서툴고 어긋나 있던 시절에도
이상하게 덜 지치던 때가 있었다.
말이 조금 부족해도,
설명이 다 되지 않아도,
“그쯤이면 알겠다”고
서로가 조용히 넘겨주던 순간들.
AI가 없는 시절이
그리운 것은 아니다.
다만 그때 우리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서로에게 허락해 주던 그 태도가
이제는 어디로 갔을까 싶어,
가끔 마음이 시큰해진다.
앞으로도 우리는
AI와 함께
더 많은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그 속에서
사람다운 어긋남과
말로 다 하지 않아도 되던
그 조용함을
끝내 다시 느끼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지.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