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시니어들에게 조용히 쌓여가는 것들
강의를 하다 보면
준비한 내용을 다 전하지 못하는 때가 있다.
시간의 제약 속에서
결국 몇 가지 이야기는 마음속에 남겨둔 채
마이크를 내려놓는다.
그런 날이면
돌아오는 길엔
늘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특히
리더나 중간관리자,
이른바 시니어를 대상으로 강의 할 때
더 큰 부채감이 남는다.
그들이 보여주는
'집중의 무게’는
실무자들과는 또 다르기 때문이다.
최근 한 금융 회사 리더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진행했을 때도 그랬다.
준비한 장표는 줄어들지 않는데
시간은 야속하게 흘렀다.
하나라도 더 현장에 적용하려
눈을 빛내는 그들의 간절함을 마주할 때면,
내 강의가 그 귀한 시간을 낭비한 건 아닐지 자꾸 되돌아보게 된다.
시니어 과정에서는 주로 효율을 넘어,
‘책임’과 ‘사고 파트너’로서의
AI 활용을 이야기한다.
조금은 지루하고 무거운 주제지만,
그들은 그 무게를 묵묵히 받아들인다.
그 덤덤한 수용이 가능한 이유는,
그들이 이미 수많은 변화의 파도 앞에 서봤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IMF를 견뎠고,
무수한 조직 개편 속에서 살아남았으며,
어제의 정답이
오늘의 오답이 되는 장면을
숱하게 지켜본 이들.
그 풍파 속에서
매번 역할은 덜어지는 법 없이
하나씩 추가되어 왔다.
현장도 챙기고,
위아래를 조율하며
모든 결과에 이름을 걸어야 했다.
그래서인지 AI라는 거대한 파트너 하나쯤 더해지는 일도
겉으론 아무렇지도 않아 보인다.
“이 정도야 뭐.”
그 말은
여유라기보다,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견뎌온 사람이
몸에 익힌 습관에 가깝다.
시니어들의 질문은
결코 툴의 기능에만 머물지 않는다.
“AI가 낸 결과에 문제가 생기면, 어디까지 제 책임인가요?”
“결국 제가 판단해야 한다면, 리더의 직관은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요?”
나는 여전히 리더의 역할을 이야기한다.
먼저 써봐야 하고,
방향을 잡아야 하며,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말은 맞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워진다.
이미 충분히 많은 역할을 안고 있는 이들에게,
또 하나의 짐을 너무 가볍게 얹어놓은 건 아닌지
마음이 쓰인다.
AI는 분명 많은 것을 덜어준다.
하지만 그 덜어진 자리 위에는
반드시 새로운 책임이 쌓인다.
초안을 쓰는 수고가 사라진 만큼,
그 결과물에 대해 변명할 틈도
함께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강의실을 나설 때마다
그분들의 뒷모습을 보며
참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은 기술이 세상을 바꾼다고들 하지만,
결국 그 기술을 손에 쥐고
묵묵히 조직을 이끌어가는 건 이 사람들이다.
밀려오는 파도 앞에 기꺼이 서서
제자리를 지키는 그 조용한 열정들이
말할 수 없이 고맙다.
이 시대를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는
세상의 모든 시니어를
응원하며 마이크를 내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