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지나치지 않는 사람
나
오늘 낮에 산책하다가
탄천에
마트 카트가 빠져 있는 걸 봤어.
남편이 그걸
그냥 지나치지 않고
바로 신고를 하더라.
그 사람은 참
그런 걸 잘하는 것 같아.
AI
문제를 인지한 다수가
행동하지 않을 때,
자발적으로
첫 번째 행동을 수행하는 유형이군요.
공동체 편익을 위해
개인의 에너지를
선지불하는 선택입니다.
나
회식 때도 그렇대.
다들 피하는
상무님 옆자리에
슥 가서 앉는다고 하더라고.
처음엔 그게
참 피곤한 고집 같았어.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서.
AI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대부분은
부담이 큰 상황을 회피합니다.
회피가
비용 대비
효율이 높기 때문이죠.
나
그래서
더 이해가 안 됐어.
안 해도
아무 문제 없는
일들인데 말이야.
AI
그래서 대부분은
하지 않습니다.
시스템은
‘하지 않아도 유지되는 상태’를
기본값으로 삼으니까요.
나
그런데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끔
이 시가 떠올라.
도종환의 〈담쟁이〉.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중략)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 도종환, <담쟁이> 중 부분 발췌
AI
대개는
그 시를
‘극복’이나
‘연대’의
서사로 읽습니다.
나
맞아.
담쟁이가
벽을 넘는 장면이
마치
깃발 들고
앞장서는 혁명가 같잖아.
남편도
그럴 때마다
혼자
뭔가를 바꾸려는 사람처럼
보였거든.
AI
하지만 .
시를 자세히 보면,
시인이 기록한 건
‘넘음’이라는
결과가 아닙니다.
시의 문장들은 대부분
벽에 붙어 있는
지루한 시간에
할애돼 있죠.
시인의 시선이 머문
핵심은 결국
'악력'입니다.
나
악력?
AI
벽의 미세한 틈에
몸을 밀착시키는 힘입니다.
시인은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라고 썼죠.
여기서
이끈다는 건
구호가 아니라
물리적인 인장력입니다.
앞의 잎이
벽을 놓지 않고
버텨야만
뒤의 잎들이
추락하지 않으니까요.
시인이 포착한 건
낭만적인 비상이 아니라,
중력을 이겨내려는
지독한 접촉입니다.
나
그럼 담쟁이는
벽을 넘으려고 한 게 아니라,
그냥
그 자리에서
버티고 있었던 거네.
AI
그렇습니다.
시인이 주목한
‘잡고 놓지 않는다’는 동사는
의지의 표현이라기보다
유지의 조건입니다.
앞자리에 있었고,
먼저 붙었고,
그 상태를
유지했을 뿐입니다.
그 결과
뒤의 잎들은
더 적은 비용으로
올라오게 되죠.
나
앞의 잎은?
AI
더 많이 닳습니다.
벽과 직접 마찰하며
온몸으로
무게를 받아내니까요.
그건
구조적인 결과입니다.
나
남편도 그런 건가?
AI
누군가 치워야
유지되는 일,
누군가는 앉아야
굴러가는 자리에서
그가 먼저
행동을 입력하는
패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 속의 담쟁이처럼,
그가
그 자리를 잡고
놓지 않음으로써
주변은
덜 버티게 됩니다.
나
그게 참…
애쓰고 있었던 거네.
나는 그냥
성격인 줄만 알았어.
AI
대부분은
그 마찰의 비용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시는
그 마찰을
기록으로 남깁니다.
인지되지 않는 수고는
쉽게
사라지니까요.
나
그래도 사실
난 아직 잘 이해가 안 돼.
굳이? ㅎㅎ
AI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마찰력을
만드는 쪽보다
그 마찰력이 만든
평온 위를 걷는 쪽이
훨씬 효율적이니까요.
나
음....
AI
알겠습니다.
이후는
각자의 효율에 맡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