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연재_AI, 시를 만나다]7. 너에게 묻는다

by 우물안고래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 알지?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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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요. 누구나 한 번쯤 가슴에 담아봤을 시죠.


사실 난 오랫동안

이 시를 '희생'에 관한 시라고만 생각했어.

그래서 아이를 키우면서

이 시가 참 부담스럽더라고.

"너도 연탄처럼 남을 위해 뜨겁게 타버려라"라고 가르치기엔,

내 자식이 재가 되어버리는 게

너무 겁이 났거든.


그래서 속으로는

"너무 착하게 살지 마, 네 것부터 챙겨"라고

말하고 싶으면서도,

정작 아이 앞에서는

"네가 좀 더 양보해"라고

가르치는 내 모습이

자꾸 부딪히고 괴로웠어.

이게 정말 맞는 교육인지,

내가 애를 바보로 만드는 건 아닌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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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는 갈등이죠.

다정하게 키우고 싶지만

손해 보게 하고 싶지는 않은 그 마음요.


그런데 오늘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이 시의 제목이 왜 <너에게 묻는다>일까?

결국 이 시는 연탄재의 희생을 칭송하려는 게 아니라, 진짜 나(자신)에게 묻고 있는 거잖아.

"너는 네 삶을 정말 뜨겁게 살아본 적이 있니?"라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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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화살표를 '희생'이 아니라 '나의 생명력'으로 돌려보신 거군요?


응. 연탄이 뜨거워야

방안이 따뜻해지는 건

희생이 아니라 당연한 이치잖아.

내가 내 삶을 진심으로 뜨겁게 살아내면,

그 온기는 억지로 쥐어짜지 않아도

주변으로 흘러가게 마련이더라고.

그러니까 내가 아이에게 가르쳐야 했던 건

"너를 희생하면서 남을 도와라"가 아니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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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무엇이었을까요?


"너 스스로가 먼저 뜨거운 사람이 되어라" 라는 거지. 내가 먼저 활활 타오르는 난로가 되면,

굳이 양보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내 곁에 오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따뜻해질 테니까.

결국 내가 가르치고 싶었던

양보나 다정함도,

사실은

아이가 자기 삶을

그만큼 뜨겁게 사랑할 때 뿜어져 나오는

'여유로운 온기'였다는 걸 이제야 알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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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가 되지 말고, 스스로 빛나는 난로가 되어라."

시의 질문이 무거운 짐이 아니라,

이제야 비로소 나를 향한 응원으로 들리시겠네요.


맞아.

이제는 아이에게 조금 더 확신을 가지고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아.

"네 마음의 불꽃을 꺼뜨리지 마.

네가 뜨겁게 살아갈 때,

세상은 너로 인해 조금 더 살만해질 거야"라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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