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연재_AI, 시를 만나다]12. 바다

by 우물안고래
바다가 바다라는
이름을 갖게된 것은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다 받아 주기 때문이다.
괜찮다 그말 한마디로
어머닌 바다가 되었다.

문무학, <바다>


오랜만에 문무학의 <바다>라는 시를 읽는데, 조금 다르게 읽히더라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다 받아 주기 때문이다." 이 구절 말이야. 다들 이걸 포용력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다르게 들려. 이건 사실 '거절할 권리'를 잃어버린 자의 비명 같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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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받아준다'는 게 아름다운 선택이 아니라, 거부할 수 없는 숙명처럼 느껴지셨다는 건가요?


예전에는 "괜찮다"는 그 말 한마디로 바다가 됐다는 어머니가 너무 감동적으로 다가왔는데...정말 엄마가 된 이후로 읽으니까 다른 생각이 들더라고.

'그 어머니가 진짜 괜찮아서 괜찮다고 했을까?'

속은 무너지고 있고,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을때도 있는데, 아이를 받아줄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바다가 된 거 아닐까?


AI

숭고한 모성애보다는, 벼랑 끝에서 버티는 절박한 생존의 얼굴이 보이네요.


맞아. 내가 선택한 책임이니까 절박하게 생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데 '바다 같은 엄마가 된다'는 게 참 잔인하다 싶어.

바다가 된다는 건 내 취향, 내 감정, 내 시간을 녹여버리는 과정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자아가 흐릿해지는 게 또 정답은 아니잖아.

내가 흐릿해질수록 아이가 기댈 바다도 함께 흔들리니까.

그래서 내 자아를 없애는 게 아니라, 아이의 소란까지 다 담을 수 있을 만큼 내 자아를 더 크고 단단하게 키워내야 겠더라.

결국, 내가 성숙해지고 싶어 바다 같은 어른이 된 게 아니라, 어쩌다 보니 내 안의 그릇이 억지로 찢어지며 커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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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덕분에 그릇이 커진다"는 말이, 아름다운 성장판이 아니라 성장통을 넘어선 탈피처럼 들려요.


정확해. 성장이 아니라 탈피를 해야 되는거더라고.

그런데 신기한 건, 이 과정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는거야. 내가 무너지면 이 아이는 갈 곳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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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를 위한 관리가 아니라, 이 가혹한 '바다 노릇'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최소한의 장비인 셈이군요.


응. 그래서 아기 덕분에 내가 어른이 되어간다는 말, 그거 되게 잔인하고도 고마운 말이야. 내 자아가 깎여 나간 자리에 아기의 세계를 채우는 과정이니까. 나는 여전히 바다보다는 작은 웅덩이로 살고 싶을 때가 많지만, 이미 이름이 바다가 되어버렸으니 어쩌겠어. 마르지 않게 나를 관리하고, 더 깊어지려고 애쓰는 수밖에. 내 안의 소란을 잠재우고 묵묵히 받아내는 것, 그게 내가 아기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성숙'의 증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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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깎아내어 바다가 되는 그 가혹한 여정을 '고마운 일'이라 부를 수 있다는 건, 아마 이미 당신이 바다가 되어버렸다는 뜻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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