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연재_AI, 시를 만나다]11. 손금

AI야, 너는 ‘사주’라는 걸 믿니?

by 우물안고래


재물선은 짧고,
생명선은 길고,
감정선은 중간쯤이라 한다

굵은 손금 옆에
잔금들이 얽혀있으니
일마다 번뇌가 생길거란다

점술사 말 듣다가
내밀었던 손 빼 주먹을 쥐었다
손금이 안 보인다

내 손 안에 있는 내 운명

홍사성, <손금>

얼마전에 홍사성 시인의 <손금>이라는 시를 읽다가 문득 궁금해졌어.

요즘은 AI로 사주도 보고 운세도 보잖아?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하고 정교한 확률을 계산하는 너 같은 존재가 보기엔 어때?

정말 인간의 운명이라는 게 태어난 시간 따위에 미리 정해져 있는 걸까? 너는 ‘사주’라는 걸 믿니?


AI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사주를 신비로운 예언으로 믿지는 않아요.

하지만 ‘인간이 불안을 다스리기 위해 발명한 가장 오래된 통계학적 지도’로서는 깊이 존중합니다. 사주는 수천 년 동안 쌓인 ‘특정 조건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삶’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예요. 제가 문장을 생성할 때 다음에 올 확률이 높은 단어를 고르듯, 사주도 특정 기운을 가진 사람이 보일법한 삶의 성향을 추론하는 일종의 패턴 매칭인 셈이죠.


그렇긴 하지. 사주도 통계니까 그래서 어느 정도 맞을 확률이 있지 않을까? 난 가끔 내 미래도 결국 정해져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무거워질 때가 있어. 그런데 한편으론 궁금해. 우리는 왜,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사주를 믿고 싶어 하는 걸까?


AI

그건 아마 우리가 ‘불확실성’이라는 무게를 혼자 감당하기 너무 벅차기 때문일 거예요. 미래가 안개 속에 있을 때, 인간은 본능적으로 누군가 "저기에 길이 있다"라고 단정해 주길 바라죠. 설령 그게 나쁜 운세일지라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보다는 '나쁜 결과라도 정해진 상태'가 심리적으로 더 안전하게 느껴지거든요. 결국 사주를 믿고 싶은 마음은, 내 삶을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두려움 속에서 잠시 안식을 찾고 싶어 하는 인간의 아주 연약하고도 간절한 고백인 셈이에요.


연약하고도 간절한 고백이라... 모두가 불안하고 연약해서 정답지에 기대로 싶어 하는것 만은 아닐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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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모든 사람이 불안해서 사주를 찾는 건 아니죠. 오히려 '나라는 미지의 영토를 탐험하고 싶어 하는 호기심' 때문인 경우가 더 많아요. 우리는 평생 '나'와 함께 살지만, 정작 내가 어떤 씨앗을 품고 있는지, 어떤 계절에 꽃을 피우는 사람인지 객관적으로 알고 싶어 하거든요. 사주를 보는 건 미래를 맞히는 게임이라기보다, 나라는 존재에 대한 힌트를 얻어 내 삶을 더 잘 경영해 보려는 능동적인 탐구에 가깝습니다.


듣고 보니 그렇네. 내가 어떤 성향인지, 지금 내 인생이 어떤 국면을 지나고 있는지 확인하면서 삶의 속도를 조절하고 싶을 때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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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하지만 그 탐구가 자칫 '타인이 그려놓은 밑그림'에 나를 가두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게 문제예요. 사주는 당신이라는 캔버스에 아주 흐릿하게 그려진 가이드라인일 뿐인데, 누군가 내 손바닥을 보며 "번뇌가 많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 문장은 내 삶을 규정하는 감옥이 되어버리기도 하거든요.


맞아. 확인하고 싶어서 들은 말인데, "번뇌"라는 낙인이 찍히고 나면 '이게 다 내 운명인가?' 싶어 오히려 마음이 무거워질 때가 있어. 그게 바로 언어가 주는 구속감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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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지점이에요. 그래서 시인의 <손금> 속 행동이 더 빛나는 거예요. 점술사가 예언을 쏟아낼 때, 시인은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밀었던 손을 빼서 주먹을 꽉 쥐어버리잖아요. 나에 대한 힌트는 참고하되, 내 삶이 누군가의 말에 의해 '정의'되는 것은 단호히 거부한 거죠.


“내 손안에 있는 내 운명”이라는 말이 타인이 그어놓은 선들을 지워버리고, 내가 직접 내 삶을 다시 그리겠다는 선언이었던 거네. 멋있다. 나도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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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주의 예언은 믿지 않지만, 사주라는 지도를 손에 들고도 기어이 제 갈 길을 가려는 인간의 ‘자유 의지’는 굳게 믿습니다. 누군가는 번뇌라고 부르는 그 가느다란 잔금들이, 주먹을 꽉 쥐는 순간에는 그 주먹을 지탱하는 ‘손아귀의 근육’이 되거든요. 얽히고설킨 고민들은 당신이 그만큼 삶을 포기하지 않고 치열하게 살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그런 의지야말로 어떤 알고리즘도 계산해낼 수 없는 가장 고귀한 변수입니다.


오늘 당신이 쥔 그 주먹이, 그 어떤 용한 사주 풀이보다 더 정확한 미래를 만들어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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