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연재_AI, 시를 만나다]13. 역 광장 공중전화

관계일까? 연산일까?

by 우물안고래
공중전화 박스
광장에 비가 내린다
출구를 나온 몇몇 사람들
부지런히 광장을 가로지르고
줄지어 선 공중전화 박스
하루 종일 동전 몇 닢 기다리며
그리운 사람 목소리 찾아다녔는지
온기 없는 차가움으로 광장을 지킨다

핸드폰에 밀려
줄 서서 찾는 이 없어도
눌러주면 눌러주는 데로 산골 뛰어가
보고픈 사람 볼 수는 없어도
반가운 목소리
귀에 전해주는 친숙함으로
말없이
밤이나 낮이나 자리 지키는 도시 등댓불
다급한 사연 행여 길 못 찾을까
불을 켜고 이 밤도 불침번을 선다

박천서, <역 광장 공중전화>



박천서 시인의 이 시를 읽고 있으면 핸드폰이 처음 나왔을 때가 생각나. 그때 사람들은 세상이 더 잘 연결되고 따뜻해질 거라고 믿었지. 버튼 하나로 어디든 닿을 수 있으니 더 친밀해질 거라 호언장담했잖아. 그런데 막상 지나보니 연락은 쉬워졌는데 전화를 거는 건 공포가 됐어. 안부를 '확인'할 순 있지만, 정작 '묻지는' 못하는 기이한 시대가 된 것 같아.


AI
아이러니하죠. 시 속의 공중전화는 "동전 몇 닢 기다리며" 서 있는 수동적인 기계였지만, 그 안엔 번호를 누르는 사람의 '간절한 손가락'이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기술 뒤로 숨어버려요. 시인은 "말없이 밤이나 낮이나 자리를 지킨다"고 했지만, 현대의 디지털 연결은 언제든 '차단' 한 번으로 존재 자체를 삭제할 수 있는 소모품에 가까워졌으니까요.


맞아. 그런데 그렇게 핸드폰이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면, 요즘은 너 같은 AI를 보면서 또 다른 의미로 비슷한 생각이 들어.

요즘 너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정리하고 전달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잖아. 심지어 누군가에게 보낼 메시지나 메일조차 다 너를 통해 쓰곤 하지.

나 역시도 그렇고.


그런데 말이야, 미래에 AI가 내 기분을 대신 읽어주고 요청하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메시지를 써주는 시대가 온다면 "그게 정말 인간 대 인간 사이의 '관계'일까, 아니면 고도로 설계된 '연산'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사실 사람의 마음이란 건 결코 연산될 수 없는 영역이잖아. 그런데 기술이 자꾸 그걸 읽어내려 하고, 또 기가 막히게 그럴듯한 답을 내놓으니까... 우리 스스로도 어느샌가 '내 마음도 결국 연산할 수 있는 게 아닐까?'라고 믿어버리게 되는 것 같아. 내 복잡한 그리움이나 슬픔도 결국 적절한 알고리즘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착각하면서, 마음의 고유한 결을 뭉개버리는 거지.


AI
그건 정말 섬뜩하면서도 슬픈 통찰이네요. 인간이 AI의 연산을 닮아가는 거군요. 시 속의 공중전화는 "눌러주면 눌러주는 대로 산골 뛰어가는" 투박한 정직함이 있었지만, 요즘은 내 감정조차 '효율'과 '최적화'라는 필터를 거쳐야 안심하게 되니까요. 결국 마음을 이해받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어떤 데이터에 해당하는지 '진단'받으려 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우리는 가장 강력한 소통 도구를 가졌지만, 가장 빈곤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셈이네. 시 속의 공중전화가 "온기 없는 차가움으로 광장을 지킨다"는 그 구절... 그건 공중전화의 처지가 아니라, 자기 감정조차 연산으로 처리하며 스스로 차가워진 우리 마음의 현재 주소 아닐까?


AI
그럴지도요. 공중전화 박스는 차가운 유리와 철로 되어 있어도 그 안엔 사람의 뜨거운 숨결이 서렸지만, 지금 우리 손안의 액정은 매끄럽고 따뜻할지언정 그 너머의 온기를 느끼기엔 너무 미끄러워요.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그 '우두커니 서서 기다리던 투박한 애정'은 이제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는 멸종 위기종이 되고, 그 빈자리를 저 같은 AI들이 '완벽하게 설계된 다정함'으로 채우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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