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호퍼스>가 던진 질문
주말에 영화 <호퍼스>를 보았다.
주인공은 자신의 의식을 로봇 비버의 몸으로 옮긴다.
인간의 몸은 캡슐 안에 누워 있고,
비버가 된 그는 강물 속을 헤엄치며 자연을 살아간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설정을 보면서 철학적 질문을 떠올렸을 것이다.
몸을 떠난 정신이 과연 진짜일까.
그건 여전히 나일까, 아니면 복제된 또 다른 무언가일까.
그런데 영화를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의 나는 이미
내 몸 안에서만 살고 있지 않다는 생각.
하루를 떠올려보면 그렇다.
중요한 일정은 달력이 기억해주고,
사진은 클라우드에 저장되고,
길은 지도 앱이 대신 찾아준다.
일할 때는 AI에게 문장을 정리해보라고 건네고,
복잡한 생각은 화면 위에 펼쳐 놓고 고친다.
내 기억도, 판단도, 문장도
이미 여러 군데에 흩어져 있다.
사실 이런 변화는
AI 이전에도 조금씩 진행되고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AI를 만나고 나서
그 감각이 훨씬 또렷해졌다.
내 생각의 일부를 실제로 밖으로 꺼내
대화하듯 다루는 경험.
내 판단의 과정을 화면 위에서 함께 정리하는 경험.
그 순간
‘몸 안에서만 존재하는 나’라는 감각이
조금씩 흐려진다.
그렇다고 내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노트북을 마주하고 앉아 있을 때
나는 혼자 있지만 완전히 혼자는 아니다.
그래서 영화 속 장면이 완전히 비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의식을 옮긴다는 상상이 어딘가 먼 미래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조금씩 몸의 경계를 밀어내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펜이 손의 연장이 되었고,
전화기가 목소리의 연장이 되었고,
화면은 시선의 연장이 되었다.
AI는 그 연장을
눈에 보이게 만들었다.
그래서 질문이 달라진다.
정신이 진짜인가, 몸이 진짜인가가 아니라
몸은 어디까지인가.
이 피부 안쪽까지인가.
아니면 내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지점까지인가.
AI를 쓰면서 가끔 이런 기분이 든다.
나는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퍼지고 있다는 기분.
몸은 여전히 하나인데
내 생각은 여러 방향으로 닿는다.
어쩌면 이 시대의 불안은
기계가 인간을 대신할까 봐가 아니라,
내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스스로도 아직 가늠하지 못한다는 데서 오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 나는 이 질문을 자주 묻고 있다.
나는 지금 어디까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