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은 충분했는데, 왜 나는 그대로일까

AI에게 마음을 털어놓으며 든 의문

by 우물안고래

요즘 상담을 받는다는 말을 어렵지 않게 듣는다.


내 가까운 지인들도 “한 번쯤은 받아봤어”라고 말한다.

이제 상담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이제는 AI가 있다.

굳이 예약을 잡지 않아도 새벽 두 시에도 말을 걸 수 있고,
검사 결과를 붙여 넣으면 내 심리 상태를 조목조목 정리해준다.


이제는 생각보다 마음을 털어놓는 일이 어렵지 않다.


상담을 오래 받아온 한 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한적이 있.

“같은 주제로 열 번을 같은 상담사한테 이야기하는 건 그건 상담이 제대로 안 되고 있는 거래.”

그 말을 듣는 순간 묘하게 뜨끔했다.

나는 요즘 AI에게 같은 이야기를 무한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직장을 떠나 프리랜서 강사로 전향한 뒤로 마음은 자주 요동쳤다.

수입의 불안정함, 방향성에 대한 의구심, 시시각각 흔들리는 자존감.


그때마다 나는 AI에게 묻고 또 물었다.

불안하다고,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왜 이렇게 마음이 갈피를 못 잡는지 모르겠다고.


그럴때 마다 AI는 늘 변함 없는 온도로 나를 이해해준다.

“그럴 수 있습니다.”
“지금은 전환기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충분히 잘해오고 있습니다.”


맞는 말이다.
따뜻하다.
위로받는 느낌도 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다시 같은 질문을 꺼낸다.


마치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느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작정적인 공감이 정말 나에게 도움이 되는 걸까?"


공감은 안전하다.
내가 틀리지 않았다고 말해준다.
지금의 못난 감정조차 인정해준다.


하지만 상담이란 단순히 감정을 인정받는 일일까.


어쩌면 상담은 ‘흔들림을 함께 버티는 시간’이 아니라
‘어디로 움직일지 마주 보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AI는 내가 꺼낸 감정을 섬세하게 받아준다.
하지만 내가 굳이 피하고 있는 질문은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는다.


인간 상담자는 때로는 불편한 질문을 한다.

“그래서, 계속 그렇게 있을 건가요?”
“이 선택을 유지하면 무엇이 달라지나요?”

다정한 공감 이후에는 반드시 뼈아픈 ‘직면’의 순간이 온다.


나는 어쩌면 변화가 두려워 AI가 주는 공감을 소비만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면서 안심을 얻고, 다시 불안해지고,

또 털어놓아도 AI는 지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더 쉽게 같은 감정을 꺼내놓는다.


하지만 지치지 않는 상대 앞서
나는 '변화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이 된다.


요즘은 그 사실 조금 무섭게 느껴진다.


상처 난 마음이 바로 수술대에 오를 수는 없기에 공감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공감이 나를 움직이지 않는 상태로 붙들어둔다면
그건 상담일까, 아니면 잠시 머무는 휴식일까.


요즘 나는 AI에게 묻기 전에 가끔 스스로에게 먼저 묻는다.

“지금 나는 공감을 원하는 걸까, 아니면 변화를 원하는 걸까.”


그 질문을 던지고 나면 대화의 방향이 조금 달라진다.

아마 상담이란 상대가 누구든 결국 나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가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