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아직 배우지 못한 것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다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AI에게 동화를 만들어 달라고 하면 꽤 그럴듯하게 만들어 준다.
줄거리도 있고, 등장인물도 있고, 결말도 제법 교훈이 있다.
그런데 막상 그 이야기를 읽어 달라고 하면 아이의 반응이 달라진다.
"재미없어"
이유를 물어보면 대답은 단순하다.
"이상하게 읽어"
이야기는 괜찮은데 읽는 게 이상해서 재미없다니...처음엔 조금 웃음이 났다.
그런데 아이의 말을 듣는 순간, 15년 전 쯤 만났던 한 박사님이 떠올랐다.
언어학을 전공하시던 그분은 국가 사업을 따내어 한창 바쁘다며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요즘 기계에게 사람의 억양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데, 너무 정신이 없네요.”
그 말을 듣고 '처음엔 사투리 같은걸 가르치시나?' 했다.
당시 음성인식 기술이 막 나오던 때였고, 사투리를 알아듣지 못해 곤욕을 치른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사님이 가르치는 건 사투리가 아니라 "음..", "아... ","그래?" 같은 짧은 단어 속에 내포되어 있는 실제 의미를 알려주는 일이라고 했다.
예를 들면 “아”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이다.
놀라서 나오는 “아!”가 있고,
이해해서 나오는 “아~”가 있고,
공감해서 나오는 “아~~”가 있다
사람은 그 차이를 본능적으로 알아듣지만, 기계에게는 그게 가장 어려운 숙제라고 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AI는 정말 많은 것을 해낸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순식간에 복잡한 분석까지 마친다.
어떤 영역에서는 사람보다 압도적으로 빠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억양"만큼은 아직 어색하다.
사실 AI는 발음도 정확하고, 목소리도 좋고,
전화로 들으면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자연스러울때도 있다.
하지만 "억양"이 어색하게 들릴까.
생각해보니 AI는 '듣는 대상’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AI는 '아이들'이라는 평균적인 집단을 향해 소리를 낸다.
하지만 엄마는 '내 눈앞의 아이'를 보며 숨을 고른다.
아이가 무서워하면 목소리를 깔고,
지루해 보이면 톤을 높인다.
결국 억양이란, 상대를 향한 끝없는 '눈맞춤'은 아닐까?
AI는 이미 이야기를 쓰는 법은 배웠다.
하지만 내 눈앞의 존재에 맞춰 목소리를 변주하는 법은 아직 배우지 못한것 같다.
아이의 책을 읽어주면서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AI가 노래도 만들어 주고, 영상도 제작해주고, 동화도 잘 만들어서
맨날 AI랑 놀고싶다고 말하는 아이지만,
엄마가 그래도 AI 보다 재밌는게 하나쯤은 더 남아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