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려고 공부하는데, AI가 다 하면우리 애는...

by 우물안고래

강의가 끝나고 모든 수강생이 퇴장한 후, 가방을 챙기던 한 여성분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했다.

"공부해서 돈 벌려고 하는 건데, AI가 다 하면… 우리 애는 뭘 시켜야 하죠?"

순간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을 얻고, 좋은 직장 다니며 월급 많이 받고.

부모님이 그렇게 말했고, 선생님이 그렇게 가르쳤고, 사회가 그렇게 작동했다.

한 번도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이 논리의 밑바닥을 꺼내 읽어보면 문장 하나가 남는다.

[공부의 목적은 먹고사는 것이다.]


말이 맞는데, 왠지 허했다.


그 허함은 사실 오래된 것이었다.

AI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냥 보이지 않았을 뿐.


인간이 수년간 고생해서 익히는 기술을 AI는 몇 초 만에, 더 정확하게 해낸다.

'잘하는 것'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그러니 그 분의 불안은 타당했다.

공부의 이유가 먹고사는 것 하나로 좁혀져 있었는데, 그 기둥이 흔들리고 있었으니까.


쉽게 대답할 수 없어 나는 질문으로 답했다.

"아이는 요즘 뭘 재밌어하나요?"

그러자 그분이 망설이며 대답했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긴 해요. 그런데… 그걸로 먹고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서요."

씁쓸했다.

우리 모두 그렇게 살아왔다.

좋아하는 것도 먹고사는 것으로 먼저 재는 삶.

그게 당연했기에 내 아이의 설렘조차 효율성으로 검열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펐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그 질문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AI가 그림을 1초 만에 그려주는 세상에서,

아이에게 "AI가 네 대신 그림을 다 그려준다면, 너는 남는 시간에 뭘 하고 싶어?" 라고 물어봤을때

만약 어떤 아이가 주저 없이 이렇게 답한다면 어떨까.

"그래도 저는 제 손으로 직접 그리고 싶어요."


나는 그런 아이를 자꾸 생각하게 된다.

AI가 더 빠르고 더 정확하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연필을 깎아 제 손으로 캔버스를 채우겠다는 아이.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테레사 아마빌레 교수는 30년 넘게 창의성을 연구하며 이렇게 말했다.

"외부 보상을 위해 하는 일과,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은 결과물의 질이 다르다. 내재적 동기에서 나온 창의성은 대체될 수 없다."


AI는 정교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하고 싶어서 만든 것'은 복제하지 못한다.

역설적으로 AI가 완벽한 그림을 쏟아내는 세상일수록, 사람의 마음이 담긴 불완전한 그림은 더 선명하게 빛난다.


생존 말고 다른 이유를 가진 사람은 AI가 등장해도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생존이 유일한 이유였던 사람은 그 생존이 흔들리는 순간 전부가 흔들린다.


물론 나도 안다. 좋아하는 것만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쉽게 말할 수 없다는 걸.

그건 여전히 각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하지만 나는 그 분에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아이가 캔버스를 채워가는 그 시간 만큼은 AI가 절대로 뺏어갈 수 없다고.

효율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마음이 결국 아이를 지키는 가장 단단한 무기가 될 것이라고.


아이가 무언가에 푹 빠져 있다면 조금만 더 지켜봐 주자고.

"그걸로 먹고살 수 있겠니?"는 내일의 걱정으로 남겨두고, 대신 이렇게 물어봐 주는 건 어떨까라고.

"그게 뭔데? 나한테 조금만 더 얘기해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