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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끝난 고3, "그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이것"

가장 예민한 시간을 지내고 있는 그들에게 어른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신호

by 박승일






“누군가에게는 이 강의가 관심 밖일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 되고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자살을 고민하는 분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경찰관으로 근무하면서 자살 예방 강사로 벌써 5년째 겸직을 이어오고 있다. 몇 개월 전부터 일찌감치 잡혀있던 강의가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전체가 대상이었다. 이번 강의는 특히나 마음을 더 쏟게 되었다. 수능이 끝난 지 며칠 되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그 시기가 얼마나 복잡한 감정이 오가는 시간인지 나 역시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혹시 집중하지 못하면 어떡하지?’하는 생각이었다. 더욱이 재밌는 강의도 아니고 주제가 자살 예방 강의였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24일 오전 9시. 관악구에 소재하고 있는 고등학교에 도착했다. 이번 강의 요청은 학교 측으로부터 섭외가 온 것이 아니었다. 관악구청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추진하고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강당 문을 열고 들어섰다. 강당에는 따뜻한 온도가 있었다. 다들 눈빛은 조용했지만 진지했다. 수능이라는 큰 산을 넘고 난 뒤, 그동안 참았던 생각들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그 복잡한 마음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 강의가 끝났다.


결론부터 말하면 성공적이라고 자평한다. 객관적인 평가도 있었다. 프로그램을 준비한 관악구청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강의가 끝나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받은 설문지가 그렇다. 사실 학교마다 관심사에 대한 차이가 커서 온라인 교육으로 대체하는 때도 많다. 아무래도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하는 교육이라 더욱 그런 듯싶다.

자살 예방 교육은 지난해 7월부터 의무화되었다.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및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공공기관과 노인복지법에 따른 노인복지시설, 초, 중등교육법 제2조에 따른 학교 등은 연 1회 교육하고 결과 보고까지 보건복지부에 제출해야 한다.


자살예방법 제17조를 보면 ‘기관, 단체 또는 시설의 장은 자살 방지 및 생명 존중 문화 조성을 위하여 자살 예방 교육을 하고 그 결과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보건복지부 장관 또는 주무 부처의 장에게 제출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 외에도, 5인 이상 기업이라면 필수로 진행해야 하는 국가 지정 교육이 있다. 직장 내 장애인 인식 개선, 성희롱 예방, 개인정보보호, 퇴직연금 교육이다. 연 1회 60분 이상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그리고, 자살 예방 교육이 있다. 지금은 자살 예방의 경우 되도록 실시할 수 있도록 노력 대상으로 지정하고 있지만 곧 의무 교육이 될 것이라고 본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다. 10년 넘게 계속 그렇다. 나는 자살 예방 강사를 하고 있지만 ‘왜 이렇게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높을까?’에 대한 의문이 있다. 물론 연구 자료는 많다. 나는 사실 우리나라가 1위라는 오명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수능 이후 부정적인 생각이 많았는데 이런 교육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으며 의미 있는 강의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자살 예방 교육 잘 들었습니다. 공감되는 이야기가 많아 이해하기 쉬웠습니다”


관악구청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강의가 끝나고 몇 시간 뒤 학생들이 직접 작성한 의견을 5개 보내왔다. 수능이 끝난 학생들에게 쉽지 않은 강의라고 걱정했던 내 생각은 착각이었다. 참 다행이었다.


수능이 끝난 청소년들은 새로운 길을 앞에 두고 가장 많은 생각이 겹치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


나는 수능이 끝나고 꽤 방황하는 시간을 보냈었다. 원하던 대학을 가게 된 것도 아니었고, 지방인 전주에 살다 낯선 서울에서 지내야 한다는 것도 고민이었다. 그리고 넉넉하지 못한 가정형편이었던 터라 학비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그런데 그것들에 대한 고민은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 시절 누군가 “괜찮아, 너만 그런 게 아니야. 같이 방법을 찾자”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내 고민도 덜 힘들었을 것이다.


10대인 청소년과 20대 청년들의 사망률은 어떨까. 당연 1위는 자살에 의한 죽음이다. 그중 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되는 때가 수능이 끝나고 고민이 많은 바로 지금이다.


학교에서는 더욱 적극적으로 자살 예방 교육했으면 한다. 단순하고 형식적인 온라인 교육으로 시간을 때우기보다는 실질적이고 내실 있는 촘촘한 예방 교육이 있었으면 한다. 현재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을 통한 강사들이 전국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한다.


그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어른들의 관심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수능이 끝나고 당장 대학을 어딜 가야 하는지에 대한 걱정만큼이나 그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귀 기울여 들어줬으면 한다. 그것은 어른들이 반드시 살펴야 할 책임이자 몫이다.


왜냐하면 한국 청소년 정책 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그들이 고민 상담을 부모에게 하는 경우는 33.5%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살을 암시하는 경고신호를 98%나 보내지만 정작 그 신호를 알아차린 비율은 21%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한 학생이 남긴 의견을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다. 세상의 어른들이 꼭 들어주길 바라는 부탁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수능을 끝낸 모든 청소년에게 조용히 전하고 싶다.


지금은 잠시 쉬어도 된다. 길은 아직 많고, 선택의 기회는 앞으로 더 온다. 그 시간을 걸어갈 충분한 힘이 여러분에게는 있다. 그리고 어른들은 그 길을 잘 걸어갈 수 있도록 따뜻하게 비춰줄 것이다. 믿어주기 바란다.


“저는 자살이 과도한 책임감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가 되니까 요즘 많이 듣는 말이 있습니다. ‘너도 성인이 되니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라는 말입니다. 사실 2~30대도 아직은 충분히 어린 나이 아닙니까. 물론 책임감도 필요하지만, 그 책임감이 지나치게 무거워지면 힘들고 괴롭다고 말하기조차 어려울 것 같습니다. 과도하게 책임감을 요구하기보다는 어른들이 조금 더 기다려줬으면 합니다. 우리 스스로 행복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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