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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승일 Jan 15. 2024

경찰관 20년 만에 찾은 취미, '그림을 그리다'

직업과 전혀 상관없는 취미 활동을 시작한 이유?

필자는 현직 경찰공무원이다. ‘경찰관’이라고 하면 먼저 ‘몸을 쓰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도 그렇다. 경찰관들은 취업을 준비하면서부터 시험에서 가산점을 위해 무도 자격증 하나씩은 가지고 입문하게 된다. 필자도 현재 태권도 3단이다. 그리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의무적으로 한 달에 몇시간씩 무도훈련을 실시한다. 물론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내근부서도 마찮가지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장 흔한 취미활동은 당연 헬스다. 필자도 최소 10년 이상은 정기적으로 스포츠센터에서 운동해왔다. 물론 몸짱이되기위해서는 아니었다. 사실 남들 다하니까 마지못해 하는 것도 있었다. 그렇게 20대와 30대를 보냈다. 그리고 현재 40대 후반이 되었다.


복싱 그러브, 지난 3년 동안의 취미 활동

그러다 3년 전쯤 찾은 취미활동은 ‘복싱’ 이었다. 그때 필자는 ‘내게 가장 잘 맞는 운동을 찾았다’며 주변에 자랑하곤 했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생활인 복싱대회에 출전하기위해 준비까지 했었다. 그러다 부상에 따른 직장에서의 민폐(?)를 우려해 중간에 포기했다. 그만큼 경찰관에게 있어 운동은 필수이면서도 취미생활 그 자체였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뭔가 새로운 취미생활을 시작하고 싶어졌다. 흔히 말하는 몸 쓰는 취미생활이 아니라 마음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그런 취미생활 말이다. 그렇게 한 달여를 고민했다.


사실 20여년 직장생활을 하면서 권태로운 것도 어느정도는 있었지만 무엇보다 심리적 스트레스가 크게 다가왔다. 지난 17년 동안 내근업무를 하다, 최근 3년여 최일선인 지구대에서 마주하는 사건들이 녹녹하지 않았다.


반복해서 만나는 자살사건 현장에서 마주하는 변사, 술에 만취해 왜 싸움이 일어났는지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폭행 현장, 가정폭력에 울음바다가 된 집안 공기, 치매에 길을 잃은 할머니의 엉뚱한 하소연, 조현병으로 괴로워하는 청년과의 대화, 교제폭력으로 피 흘리는 여성의 흐느낌, 성폭행 사건의 현장에서 마주한 피해자, 매일 반복되는 주취자의 황당한 요구.

   

그래서일까. 경찰관이라는 직업 자체가 ‘육체노동’인 듯하면서도 ‘정신노동자’라는 말이 맞는 듯 싶다. 112신고 현장에서는 특히나 그렇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어주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보니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업무를 하면서 항상 누군가에게 끊임없는 위로의 말을 해야 했고 어느 때는 화가 나는 일도 있지만 참는 일도 많아지고 있었다.


필자는 경찰관이라는 직업 자체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 취직할 때부터 ‘돈 받으면서 보람있는 일을 할 수 있다니 이게 웬 떡인가’ 싶었다. 사실 그랬다. 경찰관들 다수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만약에 ‘보람이 없다면 구지 이 일을 할까?’ 싶다.


그런데 언제 부턴가 직업적으로 얻는 ‘보람’보다 ‘스트레스’가 더 크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요즘 말로 ‘번 아웃’이라는 표현이 적절한 듯 싶다. 그러다보니 몸을쓰는 취미보다 정서적인 취미활동을 찾고 싶었던 듯 싶다.


그러다 문득 고등학교 때가 생각났다. 그때 필자는 일반대학을 준비하면서도 예체능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과 친하게 지냈다. 특히 미술을 전공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친구들이 화통을 메고 소매 자락에 묻어 있는 물감이 멋있어 보였다. 그래서 더욱 친하게 지냈던 것 같다.


그러다 문득 ‘나도 그림이나 그려볼까?’, ‘제대로 한 번도 그려보지 않았는데 가능할까?’, ‘경찰관이 그림을 그리러 다닌다고 하면 비웃지는 않을까?’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만하면 뭐하냐. 일단 질러보자’는 결심을 하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미술교습소를 찾았다.


그때가 지난해 11월 말이었다. 중,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하는 입시반과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취미반이 함께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바로 한 달 수업료를 결재했다. 매주 4시간씩 2회 꾸준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림 가운데도 필자는 현재 유화를 그리고 있다.

유화를 그리기 시작하고 두달째부터 시작한 자화상

처음 한 달은 대부분 ‘드로잉’ 수업을 했다. 손도 그려보고 사물도 그려보면서 흥미를 조금씩 가지게 되었다. 무엇보다 서너 시간을 오롯이 집중하면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게 너무 좋았다. 그렇게 그림에 빠져들었다.     

둘째 달부터는 유화의 기초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풍경화를 그리고 지금은 필자의 자화상과 어머니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 물론 아직은 초짜 중에 초짜다. 그런데 너무도 흥미롭고 재밌다. 아마도 평생 안해본 것을 도전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이나 그런 듯 싶다.


모든 직장인들이 그렇지 않을까. 20년 동안 한 직장에서 생활하다보면 어느 정도는 권태롭기도하고, 새로운 것은 떠오르지도 않고, 현재 생활에 안주하게 되면서 변화는 두렵고, 열정은 식고, 월급날만 기다려지는 것. 최소한 필자는 그렇다.

최근에 그리기 시작한 초상화(어머니)

그러다 요즘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업무는 물론이고 일상생활 자체가 바뀌기 시작했다. 미술관련 책을 읽고 미술관련 다큐 프로그램을 찾아보고 미술교습소를 가는 날이 즐겁다. 그렇게 세달째가 되었다.


2024년도 벌써 한 달의 반이 지났다. 올해는 무엇인가 새로운 일을 도전해보려는 직장들에게 권한다.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전혀 관계없는 취미를 한번 가져보라고 말이다. 시작이 어렵지 막상 도전해 보면 자신이 몰랐던 새로운 것을 찾을지도 모른다. 늦지 않았다. 지금 바로 문을 두드려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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