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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승일 Feb 27. 2024

10여년 만에 받아본 후배 경찰관의 손 편지

이별을 앞두고 남자 후배 경찰관의 손 편지를 받고 가슴이 먹먹

경찰관의 인사이동은 매우 잦습니다. 과거 고려시대부터 시작된 ‘상피제도’의 영향이 큰 듯합니다. ‘상피제도’는 관료체계의 원활한 운영과 공무원의 출신지역이나 특별한 연고가 있는 지역의 지방관으로 명하지 않는데서 시작되었습니다.   


근본적으로는 토착세력과의 결탁을 통한 비리를 막겠다는 근본 취지입니다. 그러다보니 경찰공무원은 계급에 관계없이 최소 1년에서 평균 2년 이상이 되면 무조건 다른 경찰서나 다른 지역으로 부서를 옮겨야 합니다.  

   

저 또한 그래왔습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 경찰관으로 근무하면서 최소 15회 가량의 인사이동이 있었습니다. 처음 서울중부경찰서에서 시작해 경찰청과 서울경찰청을 오갔고 최근에는 서울관악경찰서와 서울송파경찰서에서 근무했습니다.


더욱이 지난해 서울송파경찰서에서는 최일선이라고 말하는 지구대에서 1년 근무하고 또 발령을 받아 현재는 기동본부 기동단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기동대는 집회시위를 관리하는 부서입니다.

 

 

후배의 동의를 얻고 글을 게재합니다.

지난해에는 경찰서의 지구대와 파출소 중에서 가장 바쁜 곳에서 근무했습니다. 하루 평균 60건 이상 신고가 있는 곳으로 강력사건 또한 빈번하고 직원들의 평균 연령도 낮은 편이었습니다.


경찰관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수갑과 삼단봉이 있고 테이져건이 있고 권총도 있지만 무엇보다 현장에서 자기 자신을 지켜주는 것은 바로 옆에 있는 동료”라는 말입니다. 저 또한 그렇게 굳건하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옆에 있는 동료와 어느 직장보다 상호간에 관계가 끈끈하고 의리가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해에는 유난히도 그랬습니다. 그또한 직장생활을 하면서 큰 복 중에 하나입니다. 지난 2월 초 그렇게 정들었던 동료들과의 이별이 또 찾아왔습니다.


저는 현재 ‘경감’ 계급으로 경찰 계급에서 보면 중간관리자이며 ‘팀장’급 입니다. 20여년 경찰 생활을 했지만 항상 변하지 않으려는 한 가지가 있다면 ‘가족같은 직장 분위기’입니다. 그 부분을 지키고 있는 점에 있어서는 아직까지는 제 자신이 부끄럽지 않은 듯 합니다.


얼마 전 저를 위한 작은 송별회가 있었고 그 자리가 끝나갈 무렵 같이 근무하는 막내 경찰관이 헤어지기 전 인사를 나누다 제 호주머니에 손을 살며시 넣습니다. 저는 후배에게 “이놈아 뭐야?”라며 말했습니다. 사실 봉투에 담은 상품권으로 김칫국(?)을 마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청탁금지(김영란)법에 따라 상급자가 하급자에게는 얼마든지 선물을 할 수 있지만 상급자는 받을 수 없는 제도가 있습니다. 물론 그런 제도를 의식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후배에게 그것도 이제 1년여 근무한 후배에게 받는다는 것이 모양(?) 빠지는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후배 경찰관은 “아니에요.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혹시 뭐 선물 기대하신거에요? 조용히 집에 가서 읽어 보세요. 편지에요. 편지” 그랬습니다. 후배가 준 것은 직접 손으로 쓴 손 편지 였습니다. 그렇게 해프닝이 끝나고 집에와 후배가 직접 손으로 써준 손편지를 꺼내 읽어보고 가슴이 먹먹해 졌습니다.


사실 손편지를 그것도 남자한테 장문의 편지를 받아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최소 10년은 더된 일 인 듯합니다. 후배의 동의를 얻고 그 내용을 같이 공유합니다. 지난 1년은 이 편지 한통으로 모두 보상 받은 기분입니다. 또한 앞으로 남은 10여년의 직장 생활에도 큰 힘이 되어 줄 듯 합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분들도 올 한해 직장생활이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TO. Police officer Park


‘좋은 인연으로 만나 영광입니다.’...

제가 중앙경찰학교를 졸업하고 축하 선물과 함께 주셨던 말씀입니다. 어느덧 저는 시보도 끝나고 정근수당까지 받는 1년차 경찰이 되었습니다.


팀장님께서 보실 때는 그저 막내겠지만 제 밑에 멋진 후배들도 생겼네요. 이 종이 한 장에 저의 1년을 다 채우려 마음을 먹었지만, 결론적으로는 감사함 말고 더 나은 표현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경찰공무원’이라는 꿈을 이루고 그저 ‘공무원’으로 이 조직에서 생활 할 수 있었던 저에게 ‘경찰’로 생활하기 우ㅟ해 당근과 채찍을 아끼지 않으신 팀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둘이 있을 때 제가 팀장님께 맨 날 민원인한테 화내지 말라고 했지만 돌이켜보면 제가 위험에 있을 때 화를 내고 계셨더라고요(사실 돌이켜 안봐도ㅋㅋㅋ)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초임순경에게 ‘선배’, ‘동료’, ‘경찰’이라는 의미를 알려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더 나아가 저에게 인생과 사회에 대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중략)     


팀장님! 저 뿐만 아니라 다른 후배들에게 더 멋진 경찰로 남아 주세요. 팀장님의 멋진 앞날을 응원하고 저에게 뜻깊은 인연으로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4. 1월경

후배가 써준 손 편지(본인 동의 후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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