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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승일 Jul 01. 2024

“수백만 원의 현금 뭉치”를 주웠다는 경비원

현금 수백만 원을 발견하고 112신고한 현장에 출동했는데...

파출소에서 근무할 때의 사건입니다.


이른 아침 112신고가 접수되었습니다. 신고자는 “아파트 경비원인데 쓰레기 분리수거장에서 수백만 원이 신문지에 돌돌 말린 채로 폐지들 사이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라며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는 신고였습니다. 이럴 경우는 둘 중 하나입니다.


흔한 경우인데 장난감으로 쓰기 위해 만들어진 가짜 지폐인 경우이거나 어쩌다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진짜 지폐인 경우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가짜 지폐일 때가 훨씬 많았습니다. 제 경험은 그랬습니다.


한번은 비슷한 신고로 현장에 출동했는데 영화를 제작할 때 소품으로 쓰인 위폐였습니다. 흔히 말하는 007가방 안에 돈이 들어있다는 신고를 접수하고 출동했는데 실제 지폐와 너무 유사해 현장에서 엄청 해프닝을 벌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실 이번에도 ‘실제 지폐가 아닐 것아’라는 생각으로 현장에 출동했습니다. 현장에 도착해 보니 70대의 경비원 한 분이 허름한 모자를 쓰고 한 손에는 빗자루를 들고 비장한 모습으로 경찰관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치 나쁜 사람으로부터 지폐를 안전하게 사수하겠다는 강한 의지로 보초를 서고 있는 듯했습니다.


“처음에 어떻게 발견하시게 된 거죠?”


“근무 교대를 하고 아침 8시쯤 쓰레기 분리수거장 주변 낙엽을 쓸며 폐지들을 정리하려는데 신문지로 벽돌 같은 게 돌돌 말려 있어서 뭔가 이상해 신문지를 풀어 봤더니 돈뭉치였습니다. 그래서 바로 신고를 했습니다”


“그럼, 처음 확인하실 때 맨손으로 신문지를 여신 거죠?”, “네, 확인하려고….”


주변 사진을 여러 장 찍고 혹시 단서가 될 말한 다른 물건이 있는지 폐지 더미와 플라스틱 상자를 여러 차례 살펴봤습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은 이런 경우 범죄 혐의점이 있다고 의심될 때는 지문 감식과 형사과에도 지원 요청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특별한 범죄 혐의점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 정확한 금액도 확인하고 작성해야 할 서류도 있는데 파출소까지 함께 가실 수 있을까요?”


“여기서 하면 안 됩니까?”


“처음 목격하신 선생님께. 직접 보는 앞에서 얼마인지 확인시켜 드리려는 겁니다. 그래야 나중에 도움이 되세요. 법정 기간이 지난 후에는 선생님 소유가 될 수도 있거든요”


“내가 가져간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선생님께 모두 반환할 수도 있어요”


“그런 건 또 몰랐는데….”


70대 경비원분은 유실물법에서 정한 ‘소유권 취득’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습득물에 대해 민법 제253조에 규정한 기간 내(6개월)에 청구권자가 나타나지 않을 때 습득자가 그 소유권을 취득하게 되어 있다는 법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최초 발견자인 경비원분과 함께 파출소로 복귀했습니다. 도착해서 정확한 금액에 대해 서너 번을 교대로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경비원분께서도 확인하시고 ‘습득물 확인서’를 작성했습니다. 이때 경찰관이 소유권을 주장할 것인지를 묻게 되는데 주장할 때만 소유권이 인정됩니다. 그렇지 않고 포기하면 국고로 귀속됩니다.


당시에 발견된 현금에 대해서는 지금도 정확한 액수를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누군가 자신의 소유가 아니면서도 자신이라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5만 원권 다수와 일부의 1만 원권이 있었는데 총금액은 대략 5백만 원 이상 1천만 원 이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바로 경찰 ‘경찰청 유실물 센터(LOST112)’ 사이트에 등록합니다. 해당 사이트에 등록하면 누구나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다른 분실물에 대해서도 가능합니다. 경찰에 접수되는 모든 물건은 습득자가 발견한 시간과 장소, 습득한 물건의 특징이 상세하게 기록됩니다. 물론 일부 내용은 비공개로 경찰관만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 현금은 파출소 내에 귀중품 보관소에 일시 보관하다 다음 날 경찰서 생활질서계에 인계했습니다. 경찰서에는 별도의 습득물 금고가 있습니다. 일정 기간은 그곳에서 보관하게 됩니다.


당시 파출소에서는 행정절차와는 별개로 주인을 찾기 위한 수사와 탐문도 함께 합니다. 범죄 혐의점이 있는 경우에는 경찰서 형사과에서 직접 수사하지만 그렇지 않고 단순한 분실이나 착오에 의한 경우라고 판단될 때는 지구대나 파출소에서 주인을 찾기 위해 관내 주민들을 대상으로 탐문을 합니다.


그날 오후 내내 아파트 주민들을 대상으로 직접 묻기도 하고 아파트 관리사무실을 통해 방송도 했습니다. 그리고 외출한 주민들이 볼 수 있도록 전단도 제작했습니다.


‘주인을 찾고 있습니다. 현금 많은 금액을 습득해 기뻐하지 않고  '주인은 얼마나 마음 졸일까' 하는 마음으로 경찰에 신고되어 보관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보신 주민들께서는 이웃도 확인해 주세요. 특히, 어르신들만 거주하는 집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인사도 하시고 꼭 여쭤 주세요. 서울OO경찰서 OO 파출소’


아파트 엘리베이터 주변과 게시판 그리고 관내 양로원에도 부착했습니다. 그리고 순찰차 옆쪽에도 별도로 제작해 부착했습니다. 그때 경찰관들이 그렇게 적극적으로 한 이유가 있습니다.


대부분 5만 원권이었는데 상당히 오래된 지폐들이 다수였습니다. 그리고 많이 접힌 부분도 있고 한꺼번에 모아둔 게 아니라 최소한 십수 년은 모은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그 말은 나이 많은 어르신의 소유라는 생각이 들었고 폐지나 쓰레기와 함께 잘못 버려진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도 치매가 있는 어르신들이 소중한 물건이나 현금을 쓰레기로 착각해 버린 뒤에 가족이나 본인이 직접 나중에 경찰에 도난 신고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그 해 근무지를 옮기기 전까지는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아마 법적 기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 돈은 모두 최초 목격자인 경비원분께 돌아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때 신고 처리를 하면서 몇 년 전 어머니가 속상해하셨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드리는 용돈을 몇 년간 모아 봉투에 보관하셨는데 그 봉투를 어디에 두셨는지 몰라 며칠을 찾으셨습니다.


물론 엄청 큰돈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어머니께서는 분실한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자신이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자신이 점점 늙고 계신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속상해하셨습니다.


물론 자식들이 귀하게 준 용돈을 잃어버려 더욱 속상하셨을 겁니다. 지금까지도 그 돈 봉투를 어머니는 찾지 못하셨습니다. 그 봉투는 언제 어디서 나올지….


파출소에서 근무할 때도 속상해 하시던 어머니 생각에 더욱 열심히 주인을 찾으려고 했는지 모릅니다.

  

평생을 살면서 수백만 원의 현금을 길거리에서 주울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싶습니다. 아마도 로또에 당첨되는 것만큼이나 흔하지 않은 일이 아닐까요. 거기에 소유자가 없어 그 돈이 모두 습득자 본인의 소유가 되는 일까지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천운이 아닐까요.


그것은 행운일까요.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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