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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승일 Aug 05. 2024

남자의 불법 촬영과 여학생의 현명한 대처

여자화장실 내 불법 촬영을 시도하던 남성을 보고 112신고했던 사건입니다

카메라가 진화하면서 불법 촬영에 대한 범죄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불과 10년 전까만 해도 청소년은 물론이고 4~50대 직장인들까지 흔히 말하는 ‘디카’ (디지털카메라) 한 대씩은 다들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휴대전화의 카메라 성능이 디지털카메라 만큼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근 10년 사이 디지털카메라는 어느 순간 사라졌고 그 자리를 휴대전화가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이용한 불법 촬영 범죄도 많이 늘었습니다.


지구대에서 근무할 때 있었던 사건입니다. 당시 제가 근무하던 지구대 관내에는 서울의 유명 대학교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 대학교에서 112신고가 접수되었습니다.


오후 3시가 조금 넘은 시간 ‘코드0’ 신고가 접수되었습니다.


휴대전호를 이용한 불법촬영 범죄가 늘고 있습니다.


“OO대학교 중앙 도서관 3층 화장실에 남자가 들어와서 저를 촬영했어요”라는 다급한 목소리였습니다. ‘코드0’의 경우에는 신고지를 담당하는 순찰차뿐만 아니라 발생한 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순찰차들도 모두 현장으로 출동합니다. 출동하는 순찰차에 따라 임무가 각각 다르게 주어집니다.


예를 들어 도주할 장소를 파악하고 먼저 예상 도주로를 차단하는 임무,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한 현장 주변 탐문, 피해자를 바로 만나 세부 피해 내용을 듣는 것 등 다양하게 임무가 주어집니다. 저는 당시 피해자를 만나 피해 내용을 듣고 출동하는 다른 경찰관들에게 범인의 인상착의를 무전으로 전파하는 임무였습니다.


현장에 도착해 피해자의 위치를 확인하고 바로 만났습니다. 그곳은 피해자가 이용한 화장실 바로 앞이었고 피해자 이외에도 서너 명의 여학생들과 두 명의 남학생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누가 봐도 범죄자라고 예상되는 남자를 두 명의 남학생이 양팔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신고하신 분이세요?”, “네, 제가 신고했어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세하게 설명해 주시겠어요? 그리고, 남학생들이 붙잡고 있는 저 남자와 관련이 있는 건가요?”


“네, 맞아요. 저 남자가 여자 화장실에 들어와서 내가 들어간 옆 칸 위쪽에서 촬영하려고 했어요”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은 20대 초반의 남자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선생님, 여자 화장실에 들어간 거 인정하시죠?”


“네, 들어가긴 했는데 촬영은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다소 왜소한 체격의 남자의 인적 사항을 확인한 결과 그 대학에 다니는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촬영한 것을 말한 게 아니고 여자 화장실에 들어간 사실이 있는지를 묻어본 겁니다. 그건 인정하신 거죠?”     

“네….”


“물론 거기가 여자 화장실인 것도 알고 있었죠” 가끔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이 함께 붙어 있어 혼동하는 때도 있지만 그곳은 남자 화장실과 떨어진 곳이라 모르고 들어가긴 쉽지 않았습니다. 남자들은 대부분 들어가면서부터 소변기가 있는 것을 보게 되는 데 없으면 저부터 잘못 들어온 게 아닌지 확인하게 됩니다.


“네, 잘못했습니다”라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선생님은 무단으로 여자 화장실에 들어갔습니다. 성적목적다중이용장소침입죄에 해당합니다. 지금부터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변명의 기회가 있으며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고, 불리한 진술은 거부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구속 체포적부심을 청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범죄자들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미란다 원칙’ 고지입니다.


출동한 경찰관들이 그 남성을 순찰차에 태워 지구대로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현장에서는 피해자로부터 더 구체적인 진술을 청취했습니다.


피해자는 “제가 화장실에 들어가서 볼일을 보려고 하는데 위쪽에 움직이는 그림자가 바닥에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제 휴대전화 액정을 통해 위를 봤는데 사람 손과 휴대전화가 보였어요. 그래서 그냥 아무 말 없이 바로 밖으로 나온 뒤에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어요”


사실 위급한 상황에서 이렇게 침착하게 대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순간 당황하고 놀라서 소리를 지르거나 황급히 뛰쳐나오기가 쉬운데 정말 대응을 잘해줘서 현장에서 범인도 쉽게 검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범인을 검거한 남학생 두 명에게도 추가로 진술을 청취하고 목격자 진술서를 한 장씩 작성했습니다.      

“친구랑 같이 복도를 지나고 있는데 저분이 밖으로 나오면서 도와달라고 했어요. 화장실에 남자가 자신을 몰카로 찍는 거 같다고요” 그리고 앞에 서 있는데 조금 전 그 남자가 나와 잡았어요.


“고맙습니다. 학생들 아니었으면 범인은 도주했을 거고 그럼 피해자분은 더 불안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함께 도와줘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저는 피해자를 대신해 감사 인사를 해줬습니다.


당시 20대 초반의 남자는 이미 두 차례의 동일 전과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압수한 휴대전화에는 당일 촬영한 영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디지털 포렌식을 통해 확인한 결과 그때 말고도 다른 곳에서 불법 촬영한 영상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번 사건은 무엇보다 피해 여학생의 현명한 대처 덕분에 범인을 검거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위급하고 다급한 상황과 맞닥뜨리게 되면 주변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자신만의 안정법을 찾는 것도 중요합니다. 저는 눈을 감고 호흡을 길게 하면서 숫자를 셉니다. 나름의 효과가 있습니다. 한 번씩 활용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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