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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승일 Jul 30. 2024

경찰관이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만났을 때

딸들에게 빌린 돈 갚으려 대출받았다가 범죄 피해로 빚이 2배로 늘어나

지구대에서 근무할 때 일입니다. 지구대 내부에는 112 신고가 접수되면 신고 내용이 컴퓨터 모니터에 현출되고 신고 유형별로 알림음도 다르게 울립니다. 모터를 보지 않고 있더라도 소리를 듣고 어떤 유형의 신고인지를 알 수 있는 겁니다.


112신고 코드는 ‘코드0’부터 ‘코드4’까지 5가지 유형으로 분류됩니다. '코드0' 사건은 그야말로 긴급하고 중요한 사건으로 분류되며 '코드4'의 경우에는 대부분 전화 상담의 신고 유형입니다.


'코드0'의 알림음이 사무실 전체에 긴박하게 울립니다. 사무실에 있던 직원들은 순식간에 모니터 앞으로 모입니다. 신고 내용은 보이스피싱 신고입니다. 보이스피싱 신고는 당연히 '코드0' 사건입니다.


순찰 근무를 하고 있던 경찰관들도 현장으로 출동합니다. 사무실에서는 신고 내용에 대한 녹취 내용을 듣습니다.


“보이스피싱을 당한 것 같다. 저축은행에서 이자를 낮게 해준다고 해서 어제 시청 1층 로비에서 만났다. 그곳에서 현금 4천만 원을 줘 버렸어요. 오늘도 조금 전에 3천만 원을 또 줬는데 아무래도 보이스피싱 같다”라는 신고 내용이었습니다.


맞습니다. 이건 경우 무조건 보이스피싱입니다. 어느 은행이든지 외부에서 만나 고객으로부터 현금을 받는 금융권은 없기 때문입니다.


현장으로 출동한 순찰차가 신고 장소에 도착하고 피해자를 만났다는 문전이 들려옵니다. 이런 신고의 경우에는 팀장도 현장으로 출동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도 신고자가 있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60대 아주머니는 세상 잃은 표정으로 경찰관에게 하소연을 시작합니다. 현장에서 경찰관들은 보이스피싱 전달책에 대한 인상착의와 특징들을 파악하고 무전으로 전파합니다. 더 구체적인 초동 조치를 진행하는 과정은 수사의 목적상 언급할 수 없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속한 대응이 가장 중요합니다.


아주머니는 결국 눈물을 보였습니다. 그때 경찰관들의 역할 중 한 가지는 좌절한 피해자를 안심시키고 위로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남편이 다니는 회사가 코로나 이후에 어려워져서 퇴직했어요. 개인택시를 하려고 보니 1억 이상이 필요해 시집간 딸들이 대출받아 보태줬어요” 이후 말을 한참 동안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다시 말을 꺼냅니다. “올해 초 딸들에게 미안해 남편과 고민 끝에 카드론(장기 카드대출) 7천만 원을 받았어요. 그래서 비싼 이자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었는데 이자를 싸게 해준다고 해서….”


사실 이 정도만 들어도 최근 유사한 범죄가 잦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가끔은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도 이런 사연을 듣다 보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힘든 피해자들에게는 반드시 범인을 잡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하지만, 보이스피싱 범죄의 경우 범인이 검거 되더라도 피해 금액에 대한  회복이 녹녹하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더 답답합니다.


보이스피싱 조직이 다양한 장소에서 만나 현금을 인계받지만, 이번과 같이 시청 1층 로비에서 범죄를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요즘 보이스피싱은 그만큼 대범하고 다양하게 피해자들을 속이고 있습니다.


피해자는 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아 주변 지인들에게 현금 7천만 원을 빌리게 되었고 이제는 빚이 1억 4천만 원으로 처음보다 2배가 되었습니다.


한순간의 일이었습니다. 자녀들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대출했고 이자를 조금이라도 아껴보려던 노력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범죄 조직은 그 부분을 이용했습니다.


현장에 출동하는 경찰관들은 이런 사연을 접할 때마다 화가 나고 어르신들께 죄송한 마음이 들곤 합니다. 경찰관들도 집으로 돌아가면 한 가정의 가장이고 아들, 딸들이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누구나가 뉴스나 홍보 매체를 통해 은행은 절대로 직접 만나 현금을 교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끊이지 않고 피해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그놈(?)들의 범죄를 막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언제나 선량한 피해자가 더이상 나오지 않을까요. 지금 이순간에도 우리 주변 어디선가 피해를 보고 있을지 모릅니다. 주변을 잘 살펴주세요.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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