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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승일 Sep 30. 2024

남의 시련을 보고 안도하는 나, "이기적인 것일까?"

뉴스나 책 그리고, ‘브런치스토리’에 소개되는 개인의 이야기를 읽고 보면서 사람들의 가슴 아픈 사연에 같이 공감하면서 가슴 아플 때가 종종 있습니다. 더 솔직히 말하면 그걸 보면서 ‘내가 아니라 다행이다’라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그런 인간입니다.


제 주변에도 그런 아픔을 겪고 있는 후배가 있습니다. 글을 쓰기 전까지 많이 고민했습니다. 당사자인 후배의 동의를 얻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설령 저같이 조금은 이기적이고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던 분들도 상관 없습니다. ‘조금은 이기적이라도 괜찮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후배가 서너 달 전에 제가 근무하는 곳으로 찾아 왔었습니다.


“저는 팀장님께서 쓰는 글을 보면서 가끔 위로받습니다. 전에 ‘다들 큰 아픔 하나씩은 지니고 살잖아요’라는 글이 특히 그랬습니다”


“진짜? 나야 그러면 정말 고맙지. 솔직히 그런 말 한마디가 내가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되어주거든. 정말 고맙다.”


별말도 아니었던 말들이 제게는 큰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작년, 지구대에서 근무할 때 있었던 일로 동료들과 고민이 생겼습니다. 잘 마무리될 것이라 믿고 있지만 신경이 쓰이는 게 사실입니다. 최근에는 어머니의 건강도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즘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버겁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들었던 말이라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 후배는 작년에 같이 근무하다 올해 각자 다른 부서로 옮겼습니다. 저는 경찰관 기동대로 발령이 났고 후배는 다른 지구대로 발령이 났습니다.


그런데 후배가 새로 바뀐 지구대에서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끔 전화 통화로 위로해 주곤 했습니다.


그러다 지난 8월,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겼습니다. 후배가 암에 걸렸다는 겁니다. 처음에 너무 놀랐습니다. 그는 이제 30대 초반입니다. 겁이 나고 무서웠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초기에 발견되어 수술만 잘하면 충분히 완쾌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렇게 후배는 치료를 시작했고 수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잘 되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9월 7일. 후배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그것도 암 판정을 받고 3주 만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후배의 아버지 연세는 고희(古稀)가 채 되지 않았습니다. 너무 충격이었습니다. 특히나 걱정되는 건 후배였습니다. 장례가 끝나고 3일 뒤에 수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부고 소식을 듣고 야간 당직 근무가 끝나고 바로 장례식장인 포항으로 향했습니다. 도착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후배는 너무도 초췌한 모습으로 상복을 입고 앉아 있었습니다.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한들 위로가 될까’ 싶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있었던 예닐곱 시간 동안 수도 없이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무슨 말로 위로를 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서울로 올라오는 내내 후회했습니다. 조금 더 진정성 있는 말을 해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3일이 지나 후배는 수술했습니다. 다음 달부터는 항암치료도 한다고 합니다. 너무도 씩씩하게 잘 이겨내고 있는 것 같아 다행스럽습니다.


요즘은 그 후배를 보면서 제가 위로받고 안도하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처한 일들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라고요.


그런데 문뜩문뜩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후배가 그렇게 힘들고 아픈데 나는 그걸 보면서 안도해도 되는 걸까? 내가 너무 이기적인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 말입니다.


하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저는 분명 그 후배가 걱정되고 겉으로는 위로하고 있지만 제 마음속 깊이에서는 ‘후배보다는 내가 조금 나은 것 같다. 다행이다.’라며 안도하고 위로받고 있습니다.


저는 이래도 되는 걸까요?




후배로부터 며칠 전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포항까지 와주시고 위로해 줘서 고맙습니다. 조만간에 저녁을 한번 대접하고 싶습니다”라고 해서 흔쾌히 그러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제저녁에, 장례식장에 함께 갔던 다른 후배와 같이 셋이 만났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요즘 ‘너의 힘든 상황을 보면서 내가 더 안도하는 것 같다. 미안하다’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끝내 말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안 했습니다.


헤어질 때 후배는 카드 편지 한 통을 제게 내밀었습니다. 그러면서 “팀장님 집에 가서 읽어 보세요. 여기선 안 됩니다”라며 크게 웃었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편지를 펼쳐 봤습니다. 그 후배가 한 글자 한 글자 눌러가며 쓴 글씨가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수술하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힘들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픈 후배가 병원에서 써준 손편지입니다.



저 ○○입니다.
팀장님께서 제게 보여주신 말과 행동들에 감사함이 마음속 깊게 자리 잡았습니다. 어떠한 일을 맞닥뜨렸을 때 헤쳐 나갈 수 있는 용기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알려주셨습니다.
미성숙하고 불안전한 저에게 넘치는 배려, 아낌없는 조언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포항에서 말씀하셨던 “하루 만에 퇴원해라”라는 문장이 어머니에게는 위로가 되었고, 가족에게는 저에 대한 믿음이 되며 온 가족이 제 수술과 입원 기간 견디는 힘이 되었습니다.
저에게 해주신 말씀 한마디 한마디 기억하고 제 삶에 적용하며 올바른 방향으로 잘 살아가겠습니다. 제 인생 한 부분에 팀장님과 인연이 닿았다는 점이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2024. 9. 17.


저는 이제 후배에게 미안해하지 않을 겁니다. 그냥 지금처럼 이기적으로 저 자신이 안도하면서 살겠습니다. 남의 시련을 보면서 스스로 위로받는 그런 저로 살겠습니다. 지금 제가 후배로부터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위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후배가 위로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으로 빚을 갚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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