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급한 모양새, 알량한 동점심, 김밥
성급한 모양새
눈에 들어온 약간 삐뚤어진 선반
혼자 단단한 콘크리트 벽을 뚫을 능력도 없으면서
계속 바라보면 뚫릴 거란 믿음으로 응시한다.
작은 몸
작은 날개
내 큰 귀로는 듣기 어려운 날파리의 이동 동선이
마침내 시선을 훔친다.
단지 그 이유만으로 나는 내 뇌를 조종해 짧은 순간만에 어깨를 90도 정도 위로 올리고
팔꿈치를 몸의 안쪽으로 회전하여 손과 손을 마주 보게 몸을 조준한다.
짝
아슬아슬하게 오른쪽 새끼손가락의 두 번째 자리에 자리 잡은 그의 시체
아마 그가 조금만 더 날갯짓 빨리 했다면 죽음을 면했을 순간
붉은 기 없이 거무죽죽한 몸통 실보다 가는 다리 멀리서 보면 그냥 점 같은 존재
흐르는 물에 비누 거품과 함께 사라진 모습
알량한 동정심
건강을 위해
닭의 가슴살을 삶아
갈아
두부를 으깨고
계란을 풀어서
소금과 후추를
툭툭
모조리 섞어
달궈진 기름에
치이익
닭과 계란을 한 번에 먹다니
김밥
언젠가 독일로 떠날 너를 위해 기억에 남는 음식을 만들고 싶어
건강한 음식이었으면 좋겠고
무엇보다 한국음식이면 좋을 것 같아
또 나만의 특별한 걸 만들고 싶어
그래서 생각을 해 봤는데
김밥이 좋을 것 같았어
건강하고 맛있고 또 네가 좋아하잖아.
김밥 김은 시장에서 갓 구운 걸로 하고
밥은 약간 질게 왜냐면 그래야 김밥이 모양이 이쁘니까
아삭아삭하게 오이랑 단무지는 넣었으면 좋겠는데
단무지는 너무 달고 오이는 쉽게 무르니까 오이는 약간 소금에 절이고
단무지는 한 1시간 2시간 동안 물에 담가서 사용하자.
계란은 많이 들어가는 게 맛있으니까 미니 계란말이처럼 두툼하게 만들면 네가 좋아하겠지?
기름은 카놀라유 말고 건강하게 직접 방앗간에서 짠 들기름으로 계란을 부치자
당근은 채 썰어서 기름 없이 달달 덖고 깨소금만 살짝 해서 넣자.
시금치는 너무 오래 삶지 말고 액젓과 참기름 마늘을 넣고 조물조물 무쳐야지
자 다 만들었다!
맛 좀 봐볼래?
아 밥 먹고 왔는데요? 배불러요 다음에 먹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