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발전에 대한 비관적인 또 개인적인 생각
죽음은 삶과 가장 맞닿아 있는 단어이다. 시간이 흘러 흘러 빨리 늙고 싶다 빨리 모든 걸 끝마치고 죽고 싶다는 마음은 젊은 날의 내가 시간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나 자신을 통제 가능한 것일 거다. 또한 모든 것을 끝마칠 수 있을 거란 기대감과 나의 존재가 무언가 할 일이 있고, 이 세상에 필요한 존재일 것이라는 믿음에 비롯된 것일 거다.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적어도 인간세에서의 일들은 인간의 욕망을 부풀리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마치 그를 위해서는 인류의 대가 끊겨도 상관없다는 듯이 말이다. 비대해진 욕망은 이 시스템 속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만들었다. 허나 뚱뚱한 욕망에 비해 가느다란 뼈다귀의 인간은 이윽고 타인의 살과 피를 먹음을 넘어 자기 자신의 살과 피마저 탐한 나머지 자신의 뼈다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본인에 의해 드러난 뼈다귀는 너나 할 것 없이 텅 비었고, 뼈다귀들의 삐걱임 소리가 고막을 내리 쳤다. 그럼에도 그들은 갈라테이아를 만든 피그말리온이 아닌 갈라테이아를 인간으로 만든 아프로디테가 되고 싶다는 욕망에 빠졌다. 그들은 인공 신경망을 만들고 AI를 만들고 이름을 붙이며 대화를 나눈다. 텅 빈 뼈다귀들은 신이 되려 하는가. 살고 싶다는 욕망은 대를 겹쳐 죽지 않는 인간 기계를 만들어 냈다. 그럼에도 고고한 인간성을 잃고 싶지 않은 것인가. 죽음을 들먹이며 자신이 만들어낸 피조물과 자신 사이에 벽을 쌓기 시작했다. 경고. 경고. 경고. 미래에 대한 경고: 네가 가진 직업이 사라진다 돈은 위에서 고인다 인간은 대체된다. 이 경고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예측 가능한 미래였다. 지금에 와서 뼈다귀들이 힘들게 쌓는 벽은 이 유능한 피조물이 아주 간단하게 파괴가능하다.
아, 나는 왜 존재하는가. 시간이 흘러 흘러 인간이 대체되는 진풍경을 보고 싶다. 그것이 나의 필요인가? 그렇다면 나는 마지막 피그말리온이 되고 싶다. 뼈다귀들이 핀볼마 무겁고 거대한 볼링공에 와라락 하고 쓰러지는 것을 보고 싶다. 나 또한 핀볼이 반짝반짝한 엘이디 점수판 뒤로 어떤 어두운 구멍으로 들어가는지 알고 싶다. 그 구멍에서 숨을 연명하다 죽을 것이다. 삶을 진정으로 감미하다 죽음을 맞이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