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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호 Feb 01. 2024

남이 해준 밥의 행복

늘 고마워요

오늘부터 아들이 학교에 걸어가기로 약속한 날이다. 평소 보다 일찍 아들을 깨워서 학교에 보내야 한다. 봄부터 지금껏 자동차로 태워줬는데 아들이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 더 이상 호의를 베풀지 않기로 했다.


비가 와서인지 어머님도 늦잠을 주무신다. 어머님께 아침 드리시라 깨우며 베란다 문을 열어 보았다.

‘비가 많이 온다더니 아직은 괜찮네. 바람이 좀 불기는 하지만’ 이러다 또 태워 준다고 내 입으로 말할 것 같아서  입을 꾹 다물고 식사 준비를 했다.


준비를 끝낸 아들은 아무 말 없이 “다녀오겠습니다.” 하며 집을 나섰다. 비 오니 우산 가져가라는 말을 하고 어머님께 밥과 국을 드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무슨 일이지?  


“엄마 바람이 불어서 우산이 부서졌어.”  

“바람 별로 안 부는데”

“무슨 소리야! 엄청 불어 지금 옷도 다 젖었어, 우산 가지고 나와줘”

“지금 어딘데?”

“경비실 앞이야”


부랴부랴 우산을 챙겨 차를 몰고 아들에게 향했다. 부서진 우산을 쓰고 있는 아들을 보니 바람이 많이 불기는 했다.

어린 시절의 나 같았으면 부서진 채로 쓰고 갔을 텐데 꼭 아들은 전화한다. 얼떨결에 아들을 학교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왔다.


이젠 막내를 깨워서 학교에 보내야 한다. 그사이 식사를 끝낸 어머님을 주간 보호센터에 가는 준비로 바쁘시다. 학교 갈 준비를 끝낸 막내가 집을 나서는 데 어머님이

“야도 데려다줘야 하는 거 아니가? 바람이 너무 불어 아 날아갈라”

 우리 집이 높은 곳에 있어서 바람이 더 부는 것일 것으로 생각했다. 밑에만 내려가면 안 불겠지.

 “그래 너도 데려다줄까?”  

"응"

아들을 데려다줄 때 보다 바람이 더 불었다. 그 순간 안전문자가 호우, 강풍이 예상되니 조심하라고 왔다. 바람이 우리 집만 부는 게 아니구나!

딸의 등굣길에는 우산이 뒤집힌 아이, 우산이 부서진 아이 여럿이 보였다. 우리 아이도 자립심이 강한 아이로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어머님은 주간 보호센터에 가서야 한다. 비가 오니 지팡이를 짚고 우산을 쓸 수 없어 차 타는 곳까지 우산을 씌워 드렸다. 그렇게 다 보내고 나니 힘이 빠졌다.

빨래를 널면서 챙겨야 하는 사람은 많고 나는 하나고 나는 누가 챙겨 주나 하는 생각에 슬퍼졌다. 그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서둘러야 한다.

9시에 아침 식사 초대를 받았다. 지인이 쉬는 날이라 얼굴 보자고 자기 집으로 초대를 했다. 9시까지 오지 않으면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고 해서 서둘러 가야 한다.


불과 30분 전까지 치던 비바람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하다. 마치 조찬모임을 잘 다녀오라는 듯이 도착하니 이미 다른 일행은 도착했고 내가 제일 늦었다.

초대에 빈손으로 갈 수 없어 거봉송이를 들고 가서 인사를 했다.

“식사에 초대해 줘서 감사합니다.”


상에는 어묵 볶음, 무생채, 호박나물, 계란말이, 미역 줄기 볶음, 오이소박이, 메추리알 장조림, 김치 여덟 가지 반찬과 동태 수제비가 차려져 있었다.

남이 해주는 밥이 가장 맛있다고 했던가. 어디서 이런 상차림을 받아보겠는가. 친정 엄마가 없는 나는 더욱 다른 사람이 차려주는 밥을 먹기가 지 않다.


아침에 정신없었던 모든 일이 사라지고 갑자기 행복해졌다. 이런 초대도 받고 나는 정말 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 솜씨가 좋은 지인은 자기도 남이 해주는 밥을 먹싶다는 말을 한다.

“어휴, 누가 그대를 초대하겠어. 이렇게 솜씨가 좋은데 성이나 차겠어”모두 즐겁게 웃었다.

늘 고맙다. 내가 솜씨는 없지만 어느 날씨  좋은 날 꼭 남이 차린 밥을 먹게 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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