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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호 Oct 04. 2024

시어머님이 좋아하는 호박떡

나는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

딸 집에 다녀오시면서 시어머님은 초록색 호박을 두덩이 들고 오셨다.

이미 전에 받은 늙은 호박도 한 덩이 있어 총 세 덩이의 호박이 베란다에 덩그러니 자리를 잡았다.


"어머님 호박 있는 데 왜 가지고 오셨어요?"

"센터 갈 때 가져가서 나누어 주려고"

"네 이걸 어떻게 나눠줘요?"

"아침에 조각조각 내서 들고 가면 된다. 가 귀찮겠지만 잘라만 라"

"그럼 내일 센터 가서 물어보고 하신다고 하면 가져가세요?"

"그래 알았다."


 며칠이 지났다 어머님은 호박을 잘라달라는 말씀이 없다. 안 가져가실 건가 싶어서 물어보았다

"어머님 센터 어르신들께 호박 물어보셨어요?"

"아니 안 물어봤다."

"왜 주신다면서 안 물어봤어요?"

"그냥 우리 다 먹자"

시어머님은 욕심이 좀 있으시다 당신이 드시지도 않으면서 만들어 먹으면 맛있다고 달라고 해서 다 챙겨 오신다.

이제 세 덩이나 되는 호박을 어떻게 할 건지 어머님의 처분만 기다리며 시간이 흘려간다.

초록이던 호박이 점점 노란색으로 변해가면서 늙은 호박이 되어가고 있었다.

저러다 호박이 썩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베란다를 지나다닐 때마다 늙은 호박들이 눈에 밟힌다.

한 달 가까이 시간이 흘렸다. 시어머님이 늙은 호박으로 떡을 해서 먹자고 하신다.

떡집에 물어보니 호박을 채 썰어 가져오면 떡을 해준다고 했다.

"호박떡 해놓으니 다 잘 먹데"

"네? 어머님 저는 결혼하고 한 번도 어머님이 해주신 호박떡을 먹어 본 적이 없는데요?"

"니 한 번도 안 먹어 봤다고?"

"네"

"큰집(큰아들집)에 있을 때 많이 해 먹었는 데 그 집에 애들이 잘 먹던 데 다 먹고 니는 안 줬나 보다"

시어머님은 큰아들이 잘 먹었던 걸 기억하시고는 우리 가족도 잘 먹었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남편도 어머님이 해주시는 호박떡을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나도 호박떡을 해 먹어 본 적이 없고 호박떡을 사 먹어 본 적도 없는 데 호박떡을 하신다니 누가 먹을까 싶어 걱정이 되기도 했다.

어머님께 호박떡 말고 호박즙을 내서 드시면 어떠냐고 물어보니 당신은 즙은 별로라 떡으로 꼭 해 드시고 싶다고 하셨다.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신 어머님은 늙은 호박을 채 썰겠다고 하셨다.

늙은 호박을 깨끗이 씻어 조각조각 내어 긁으시기 편하게 해 드렸다.

채칼로 껍질을 벗기고 하나씩 긁어나갔다.

한 덩이만 했어야 했는 데 놓아두면 뭐 하냐고 세 덩이다 하자는 시어머님의 말씀에 다했더니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양도 많았다.

"어머님 다음에는 호박즙으로 해요. 이건 손도 아프고 힘들어요"

"힘들면 하지 마라 내가 다 할게 아직 손도 안 아프다."

가만히 앉아 2시간을 꼼짝을 하지 않고 호박을 긁고 계셨다. 긁어지지 않는 호박은 모아두었다가 채를 썰었는 데 칼솜씨는 좋으셨다.

호박떡 할 거라고 긁고 계시는 어머님을 보니 누구를 먹이려고 꼼짝하지 않고 하고 계시는지 여전히 큰 아들 생각으로 가득하신지 우리 남편 생각도 조금 해 주시면 좋겠다.


늙은 호박을 지짐용과 떡용으로 나누어 놓고 떡집에 가져갔다.

떡을 대만 하려고 했는 데 호박을 3킬로나 가져가서 떡 대를 했다.

막상 떡을 해오니 내가 생각했던 떡 모양과 맛이 아니었다.

시어머님은  맛있다고 1개를 다 드셨는 데 남편과 아이들은 먹지 않는다고 했다.

떡을 다 어떡하지 동네 친구들에게 나누어 줘야 하나 하다가 도련님네가 생각이 나서 남편에게 전화해 보고 가져다주라고 했다.

그랬더니 어머님이 "형님은 형님이네 나누어 먹을 줄도 알고 고맙다 내가 생각 못했는 데 준다고 해서"

도련님은 호박떡이 호박지짐이라고 듣고 자기가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알고 주냐고 고맙다고 했는 데 받아보니 호박떡이네 했다고 한다.

호박떡은 모두 냉동실로 향했다 먹을 사람은 어머님뿐이라 넣어 두었다가 하나씩 거 내 드려야겠다. 우리 집은 절편이나 송편을 즐겨 먹는 편이라 호박떡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도 먹어보니 호박이 씹이면서 달달하니 맛은 있었다.

늙은 호박 세덩이
조각난 늙은 호박
호박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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