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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좋아하는 호박떡

나는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

by 랑호

딸 집에 다녀오시면서 시어머님은 초록색 호박을 두덩이 들고 오셨다.

이미 전에 받은 늙은 호박도 한 덩이 있어 총 세 덩이의 호박이 베란다에 덩그러니 자리를 잡았다.


"어머님 호박 있는 데 왜 가지고 오셨어요?"

"센터 갈 때 가져가서 나누어 주려고"

"네 이걸 어떻게 나눠줘요?"

"아침에 조각조각 내서 들고 가면 된다. 니가 귀찮겠지만 잘라만 주라"

"그럼 내일 센터 가서 물어보고 하신다고 하면 가져가세요?"

"그래 알았다."


며칠이 지났다 어머님은 호박을 잘라달라는 말씀이 없다. 안 가져가실 건가 싶어서 물어보았다

"어머님 센터 어르신들께 호박 물어보셨어요?"

"아니 안 물어봤다."

"왜 주신다면서 안 물어봤어요?"

"그냥 우리 다 먹자"

시어머님은 욕심이 좀 있으시다 당신이 드시지도 않으면서 만들어 먹으면 맛있다고 달라고 해서 다 챙겨 오신다.

이제 세 덩이나 되는 호박을 어떻게 할 건지 어머님의 처분만 기다리며 시간이 흘려간다.

초록이던 호박이 점점 노란색으로 변해가면서 늙은 호박이 되어가고 있었다.

저러다 호박이 썩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베란다를 지나다닐 때마다 늙은 호박들이 눈에 밟힌다.

한 달 가까이 시간이 흘렸다. 시어머님이 늙은 호박으로 떡을 해서 먹자고 하신다.

떡집에 물어보니 호박을 채 썰어 가져오면 떡을 해준다고 했다.

"호박떡 해놓으니 다 잘 먹데"

"네? 어머님 저는 결혼하고 한 번도 어머님이 해주신 호박떡을 먹어 본 적이 없는데요?"

"니 한 번도 안 먹어 봤다고?"

"네"

"큰집(큰아들집)에 있을 때 많이 해 먹었는 데 그 집에 애들이 잘 먹던 데 다 먹고 니는 안 줬나 보다"

시어머님은 큰아들이 잘 먹었던 걸 기억하시고는 우리 가족도 잘 먹었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남편도 어머님이 해주시는 호박떡을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나도 호박떡을 해 먹어 본 적이 없고 호박떡을 사 먹어 본 적도 없는 데 호박떡을 하신다니 누가 먹을까 싶어 걱정이 되기도 했다.

어머님께 호박떡 말고 호박즙을 내서 드시면 어떠냐고 물어보니 당신은 즙은 별로라 떡으로 꼭 해 드시고 싶다고 하셨다.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신 어머님은 늙은 호박을 채 썰겠다고 하셨다.

늙은 호박을 깨끗이 씻어 조각조각 내어 긁으시기 편하게 해 드렸다.

채칼로 껍질을 벗기고 하나씩 긁어나갔다.

한 덩이만 했어야 했는 데 놓아두면 뭐 하냐고 세 덩이다 하자는 시어머님의 말씀에 다했더니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양도 많았다.

"어머님 다음에는 호박즙으로 해요. 이건 손도 아프고 힘들어요"

"힘들면 하지 마라 내가 다 할게 아직 손도 안 아프다."

가만히 앉아 2시간을 꼼짝을 하지 않고 호박을 긁고 계셨다. 긁어지지 않는 호박은 모아두었다가 채를 썰었는 데 칼솜씨는 좋으셨다.

호박떡 할 거라고 긁고 계시는 어머님을 보니 누구를 먹이려고 꼼짝하지 않고 하고 계시는지 여전히 큰 아들 생각으로 가득하신지 우리 남편 생각도 조금 해 주시면 좋겠다.


늙은 호박을 지짐용과 떡용으로 나누어 놓고 떡집에 가져갔다.

떡을 한대만 하려고 했는 데 호박을 3킬로나 가져가서 떡 두대를 했다.

막상 떡을 해오니 내가 생각했던 떡 모양과 맛이 아니었다.

시어머님은 맛있다고 1개를 다 드셨는 데 남편과 아이들은 먹지 않는다고 했다.

떡을 다 어떡하지 동네 친구들에게 나누어 줘야 하나 하다가 도련님네가 생각이 나서 남편에게 전화해 보고 가져다주라고 했다.

그랬더니 어머님이 "형님은 형님이네 나누어 먹을 줄도 알고 고맙다 내가 생각 못했는 데 준다고 해서"

도련님은 호박떡이 호박지짐이라고 듣고 자기가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알고 주냐고 고맙다고 했는 데 받아보니 호박떡이네 했다고 한다.

호박떡은 모두 냉동실로 향했다 먹을 사람은 어머님뿐이라 넣어 두었다가 하나씩 거 내 드려야겠다. 우리 집은 절편이나 송편을 즐겨 먹는 편이라 호박떡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도 먹어보니 호박이 씹이면서 달달하니 맛은 있었다.

늙은 호박 세덩이
조각난 늙은 호박
호박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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