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 어린 위로
며칠 전 제가 살았던 곳
옛날의 추억은 한 폭의 그림이 되어
머릿속과 가슴 안에 저장
삶이라는 제목으로
유화 같은 물감으로
살아온 날들이 채색되어 그려진 그림
어릴 적 고향이지만 한 번으로 만족하는
남쪽나라 가고파의 본고향
본 고장에서
부고 소식을 들었습니다
8명의 자녀를 둔 92세의 외숙모
돈은 많아
고등학교 입학하기 전 사촌 언니의 말
우리 집 재산이 그 정도밖에 안 된다니
실망이라고 했던
70년도 당시 17억이면
지금의 돈 가치로 환산하면
10배 정도 올랐다고 해도 170억
100배 올랐다고 하면 1700억이 될 텐데
회원동을 지나가려면 외삼촌의
땅을 밟지 않고는 지나갈 수 없는
경주 최 씨의 부잣집처럼
그런 넓은 땅을 가지고 있었죠
마당이 몇 백 평인지 몇천 평인지 모르지만
외갓집에 가 보고는 놀라워했던 남편
어렸을 때부터 아무렇지 않게 보아왔던 거라
하나도 놀랄 게 없는데
제 친구도 외갓집을 따라가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라워하던
그게 더 놀라서 그 친구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봤었던
그 이후 그 친구는 울 사촌 오빠에게
엄청 관심을 가지고 안 하던 인사도 하며
가까이 가고 그랬는데
그때는 그게 뭔지도 몰랐고
참 바보 같은 저의 옛날이야기입니다
땅은 그저 밟고 다니는 흙인 줄만 알았던 땅
세상 물정 1도 몰랐기 때문에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친구는 집이 뭔지
우리나라에서는 땅은 무얼 의미하는지를
알았던 것 같습니다
저만 왜 몰랐을까요?...
마산 어시장 상가도 몇 개인지 모르지만
그 상가에서 나오는 월세로
조물주 위의 건물주라는 이름으로
그 자식들은 외삼촌의 상가를 하나씩 차지해
장사를 하고 왜 자식들이 하나같이
내 밑에서 그러고 사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얘기하셨던 울 외삼촌
학교에서 교편 즉 학교 선생님이셨는데
그런 분이 마산에서 땅부자가 되신 이유가 있었죠
98세이신 큰 이모와 작은 외삼촌
두 분은 일본에 살고 계시고
큰 외삼촌과 울 엄마
서울에 살고 계시는 막내 이모
이렇게 3분은 한국에 사셨죠
어렸을 때 들은 얘기로는
일본에 계시는 큰 이모부님이 빠징코인지 뭔지
사업을 하셔서
암튼 일본에서도 굉장히 부자 셨다는
부모님들의 소곤소곤 이야기에 의하면
여고생인 막내 이모에게 필요한 것 사주라고
보내준 돈
그 돈으로
울 외삼촌은 한국에서 땅을 사다
60년도 70년도
일본에서 보내온 돈으로 땅을 샀으니
삼성전자인지 뭔지 삼성 어쩌고 저쩌고
주식을 한 주 한 주 사다 놓고 마냥 기다리라는
죤리 님의 말씀처럼
야금야금 몰래몰래 주식을 사 모으듯
울 외삼촌은 한국에서 땅을 야금야금 사 모았던 거죠
참 기막힌 아이디어
굿 아이디어
부자들은 뭐가 달라도 달랐던 거죠
그렇게 부자 대열에 서서
가수 김수희 씨의 노래 가사처럼
♬그대 앞에만 서면~
왜 작아지는가~~♪♬
외삼촌 앞에 가면 그저 작아지는
카리스마 뿜뿜 내뿜는 그런 분의 아내인
외숙모가 하늘나라로 가신 것입니다
소위 부자들이 산다는 강남
사촌 언니 한 데서 전화가 옵니다
오늘 새벽 03시 20분에 엄마가 돌아가셨다며
찔찔 울면서 말을 하는데
지 고모인 우리 엄마 돌아가셨을 때는 당연하다는 듯
내려오지 않았고 부의금 보냈나?
위로한 번 안 하더니만 지금도
그 섭섭함은 남아 있는데
부모님 살아계시고
돈이 많은 사람들은
제가 이만큼 살아보니 대체적으로
돈 좀 있다는 사람들은 철이 좀 없는 듯했습니다
마음속으로 지 부모만 귀했지
지고모 귀한 줄 모르는 속으로 욕을 하면서
잘 다녀오라고 말을 하고선 내려가야 되나
하루 정도를 고민했죠
확진자 격리 해제 첫날이니
다른 사람에게 오미크론
옮길 수 있다면서 내려오지 말라는 동생의 말에
알겠다 하고 선 부의금만 보냈는데
어찌나 마음이 편하지 않는지
못 가는 사람의 마음이 불편했던
장례식 문화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철학자인 최진석 교수님이
요즘 저의 멘토이십니다
그분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른 얘기를 해 볼까 합니다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장례식 도중 외국에 중요한 볼일이 있어
아버지에게 의논했더니 상중임에도
불구하고 다녀오라는
허락을 받고 외국에 다녀와서
고인을 생각하며 가족들과
조용하게 애도하는 시간으로
7일장을 치렀다
장례식을 다 치른 다음
친척들과 주위 지인들에게 부고 소식을 알렸다
는 교수님의 말을 듣고 제가 큰 감동을 받았는데요
혼례문화도 예전과 비교해 지금은 많이 달라지고 있고
장례문화도 많이 바뀌어 가고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데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로 합니다
고인과의 추억을 되새기며 슬퍼하는
충분한 애도
그래서 조용한 시간이 필요한데요
지금의 장례문화는 결코 조용하게 보낼 수 없지요
진심 어린 위로의 말
가뜩이나 정신이 없고 큰 충격을 받았을 이에게
여러 말이나 질문보다는
편지나 카드, 문자메시지 등을 보내면
사별자에게 큰 위안과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차 후 마음을 추슬렀을 때
다시 보자는 말을 하면 됩니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언제라도 좋으니 마음을 전하는 것이 좋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난 뒤에 받는 편지는
뜻밖의 소식이라 더 반가울 것이며
서서히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겠지만
사별자에게 애도의 시간은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해선 안될 말
사별자에게 위로의 글을 쓸 때는
'고인께서 천수를 누리셨다'거나
'사랑을 못 받고 이별하는 것보다
사랑받고 이별하는 것이 낫다'등의
상투적 표현은 되도록 삼가고
오롯이 사별 자 자신을 위해 정성 들여
쓴 편지라는 느낌을 주는 게 좋습니다
식상한 문구는 사별자가 절절히 사랑했던
고인의 가치를 반감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망한 원인을 새삼스레 되짚거나
죽음이라는 운명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필요도 없습니다
사별자를 향한 애틋하고 따뜻한 마음이 담긴
내 일처럼 아파해주는 글이 되면 됩니다
-평생 어부바 신협에서 퍼 온 글 -
4년 전 이야기를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