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깊이6

by 정동주

부회장을 집에 내려주고, 차고에 차를 입고하는 것으로 당신의 힘들었던 하루도 끝이 난다. 출근 시간이나 차량 대기 지연으로 인해 받은 벌점이 없었다는 사실에 당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누적된 벌점이 50점이면 짐을 싸야 하겠지만, 아직 누적된 벌점은 40점에 불과하다. 그래서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인 것이다.

당신은 집에 들어가기에 앞서 단골 식당으로 향한다. 따뜻한 저녁이야말로 열심히 일한 당신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식당은 그런대로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당신은 텔레비전 앞자리에 자리를 잡는다. TV에서는 당신에게 월급을 주고 있는 회사의 광고가 한창이다. 가족과 같은 회사. 그들은 그렇게 떠들고 있지만, 당신만은 그 가족의 구성원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 식당은 다른 식당에 비해 음식값이 저렴하다. 다른 식당이 다 값을 올렸음에도 이 집은 몇 년째 백반값으로 3,000원을 고수하고 있다. 다른 곳에서 먹는 것보다는 몇천 원이 절약된다. 이렇게 궁상을 떨 때마다 당신의 뇌리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바로 박 이사다. 그를 조금만 덜 믿었더라도 이렇게까지 비참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당신은 생각한다. 회사가 부도났을 때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것은 숨겨둔 20억이라는 비자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박 이사가 그 비자금을 가지고 하루아침에 잠적할 줄 당신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은행에 가서 잔고가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당신은 자살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는 돈을 찾아서 중국으로 도피했을 것이다. 김 비서도 그를 조심하라고 여러 번 조언했으나 당신은 무시했다. 그의 조언을 한 번만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면 지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물론 다 지나간 일이지만 말이다.

자리를 잡고 당신은 국밥을 시킨다. 오 분도 되지 않아 음식이 나온다. 국물을 떠서 삼키는 순간, 속이 녹으면서 몸이 나른해진다. 다시 한 숟가락을 뜨려는데 뭔가 낯선 것이 눈에 들어온다. 나비 애벌레다. 당신은 벌레를 숟가락으로 건져서 빈 접시에 덜어 놓는다. 너도 나름대로 꿈이 있었을 텐데, 나비로 자라지 못한, 냉동 채소에서 마지막을 맞이한, 털이 보송보송한 애벌레를 보며 당신은 연민의 정을 느낀다. 이럴 때 예전 같았으면 당신은 당장 주인을 불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생각이 추호도 없다. 당신은 측은한 마음으로 건진 애벌레를 한참 동안 쳐다본다.

정말 죄송합니다. 주인이 급히 당신에게 다가와서 고개를 조아린다. 어쩌면 주인은 당신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오늘 식사비는 받지 않겠습니다. 따뜻한 것으로 다시 내오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있는 당신에게 생각지도 않은 일이 벌어진다. 주책스럽게도 눈앞이 침침해지면서 갑자기 목이 멘 것이다. 최근 누군가로부터 따뜻한 말을 들어본 지 오래여서 그런 모양이었다.

눈물을 감추려고 무심코 시선을 돌리던 당신은 창밖에 있는 사람과 눈이 마주친다. 교복을 입은 앳된 얼굴이다. 중학생이나 잘해야 고등학생 정도로 보인다. 당신과 눈이 마주친 녀석의 얼굴이 찌푸려진다. 녀석은 가래침을 거칠게 뱉는 것 같더니 이어서 담배를 피워 댄다. 너무 어리다는 생각에 안 보려고 해도 자꾸만 눈길이 간다. 그러다 보니 녀석과 다시 눈이 마주친다. 외면을 했지만 녀석이 당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것만 같아서 당신은 조금 불안해진다. 귓가에 녀석의 숨소리가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쳐다봤다는 이유로 시비를 거는 경우도 종종 있기에 마음이 조금 초조해진다.

그런데 얼굴이 어디서 본 얼굴이다. 어디서 봤더라. 당신은 그가 당신의 아들 친구였다는 것을 떠올린다. 언젠가 둘이서 걸어가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는 기억이 난다. 그가 친구라면 아마도 아들이 저 무리에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신은 이내 고개를 젓는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당신은 애써 외면하고 만다.

그 순간, 언제 나갔는지 국밥집 남자 사장이 녀석들과 가벼운 실랑이를 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 모습을 보던 여자 사장이 다급하게 전화를 건다. 두 사람의 실랑이는 한참 동안 이어진다. 마침내 경찰이 도착한다. 경찰이 중재하는 것 같고, 녀석은 잠시 까딱하니 고개를 숙이더니 사라지는 것 같았다. 녀석의 사과하는 태도가 그다지 공손하지는 않았으나 빨리 해결되어 다행이라고 당신은 생각한다. 무슨 일 있습니까? 가게로 들어온 사장에게 당신은 묻는다. 담배 피우고 담에 마구 오줌 싸고 그래서 점잖게 타일렀습니다. 쟤들은 아직 촉법소년이어서. 건들면 안 돼요. 법이 보호해 준다는 걸 알고 있어서 무서울 게 없는 애들이랍니다. 이 사회가 어찌 되려는지, 쯧쯧. 남자 사장이 혀를 차는 소리가 길게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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