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잠깐 조는 도중에 당신의 휴대전화가 울었다. 아내였다. 아들이 요즘 자꾸만 엇나간다고 한탄을 늘어놓는다. 자꾸만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 같다면서 말을 잇지 못한다. 당신은 이를 악물고 참아보려 하지만 자꾸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아내와 결혼을 한 것은 어디까지나 정략적인 부분이 있었다. 사업 초기, 처가의 도움이 없었다면 회사 키우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내로서 그녀는 거의 낙제점이었다. 할 줄 아는 것은 거의 없었다.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했다. 요리사를 사고, 가정 도우미를 사고, 집 안을 관리하는 알 수 없는 많은 사람이 들락거렸다. 당신이 잘나갈 때는 그 정도 많은 돈이 지출되더라도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그녀의 낭비벽은 방종할 수준을 넘고 말았다. 이혼이 아니더라도 손을 봐야만 했었다고 당신은 자조처럼 생각한다.
그때 부회장의 문자가 도착한다. 내일은 평소보다 30분 일찍 차를 대기시키라는 문자이다. 당신은 정성스럽게 대답을 전송한다. 운전 말고도 당신이 신경 써야 할 일은 무척 많았다. 부회장을 위해 차량에 아이스박스와 온장고를 잘 활용해서 음식물, 음료수 등을 보관했다가 줘야 한다. 마스크도 여벌로 여러 개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게다가 물건들은 시간에 맞춰서 내놨다가 다시 원위치 시켜야 한다. 휴대전화를 충전하는 것도 당신이 해야 할 일 중 하나이다. 이런 일을 능숙하게 하지 못하다면 당신은 주먹으로 머리를 맞거나 반성문을 써야 한다.
얼마 전, 당신은 휴대전화 때문에 반성문을 썼다. 반성문. 하늘 같으신 부회장님의 휴대전화관리를 잘하지 못하여 부회장님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을 통렬하게 반성합니다. 휴대전화 충전은 저의 본분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소홀히 하였습니다. 게다가 부회장님의 불편하신 심기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자꾸만 핑계를 대어 부회장님을 더욱 화나게 하였습니다. 이 모든 일에 대해 눈물로 반성하며,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로 반성문을 쓰지 않도록 명심 또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반성문을 썼던 날, 당신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자꾸만 올라오는 알 수 없는 감정에 어떤 이름표를 붙이기는 어려웠다. 분노의 감정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슬픔도 아니었고, 자포자기의 감정은 더더욱 아니었다. 조금은 낯설고, 조금은 외로운 그 무엇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