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깊이 4

by 정동주

창문 열어! 부회장이 고함친다. 이제나저제나 내려질 호통을 숨죽이고 기다렸던 당신은 정신이 번쩍 든다. 창문 열라니까. 부회장이 다시 소리친다. 당신은 서둘러 차창을 내린다. 백미러가 없으니 그의 표정을 살필 수도 없다. 그런데 분위기가 조금은 이상하다. 너무나 조용한 것이다. 이게 해고하기 전 폭풍전야인가? 당신이 먼저 죄송하다고 고해성사하기를 기다려 주는 마지막 자비인 건가?

당신은 사과하려다가 작금의 상황을 기억 속에서 복기해 본다. 방귀가 당신의 항문을 빠져나간 것은 팩트이다. 귀로 들은 소리 역시 팩트이다. 그런데 당신이 마지막 들었던 긴 방귀 소리는 환청인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뭔가 착각한 것인지도 모른다. 냉정함을 되찾은 당신은 마지막 방귀는 당신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렇다면?

당신은 피식 웃음을 흘린다. 그렇다. 당신은 뭔가 착각을 했다. 마지막 소리는 당신의 것이 아니라 부회장의 것이다. 일단 이렇게 생각하자 당신의 추리에 확신이 더해지고, 그 확신으로 인해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생긴다. 열린 차창을 통해 냄새가 풀어지는 동안 당신의 죄책감도 같이 희석되면서 당신은 당신의 추론에 조금씩 확신하게 된다.

한참 동안 말이 없던 부회장이 이번에는 다시 창문을 닫으라고 소리친다. 그러나 당신은 방심했다. 위기를 잘 모면했다고 당신이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동안, 창문을 닫았음에도 이미 들어온 찬 기운으로 조금은 한기를 느끼는 동안, 오늘은 운이 따른다고 입술 끝에 회심의 미소가 피어날 즈음 당신의 항문에서 두 번째 방귀가 기세도 당당하게 터져 나온 것이다. 잠깐 긴장을 늦춘 순간에 사건이 터지고 만 것이다. 당신의 사업 역시 그랬다. 몇 번의 사업 확장이 성공하자 당신은 자만했고, 방심했다. 그렇게 무리하게 사업을 키우다가 뜻밖에 당신은 복병을 만났던 것이다. 이제는 부회장의 처분을 다시 기다려야 한다. 행운이 두 번 반복된다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세워. 부회장이 조금은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소리친다. 네? 귀가 포경(包莖)이야, 왜 이리 말귀를 못 알아들어. 길옆에 차 붙이란 말이야. 백미러가 없어서 표정을 볼 수는 없으나 이번에는 행운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당신은 직감으로 느낀다. 그냥 넘어가지 않을 기세이다.

어떤 벌이 내려질까 상상하며 당신은 공포에 사로잡힌다. 비록 몸은 당신의 것이지만, 떨고 있는 당신의 몸은 통제가 어려운 상황이다. 그 이유를 당신은 알고 있다. 이게 말로만 듣던 마지막 근무가 되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해고당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동안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이제 당신의 순번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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