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예은 Jul 11. 2022

완벽한 일요일을 보내는 방법에 관하여

 생각보다 주말을 완벽하게 보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주중에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잡아놓은 약속들에 떠밀려 더한 피로를 얻을 수도 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쉬어야지하는 마음에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가 덜컥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에 후회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일요일을 완벽히 보내는 지극히 개인적인 방법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일단 첫 번째 준비물은, 그간 내 마음만큼이나 어지러웠던 더러운 방구석입니다. 빨래는 빨랫대에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빠싹 말라있어야 하며, 이곳이 미용실인가 나의 집인가 헷갈릴 정도로 머리카락이 발에 차여야 합니다. 허리춤까지 올 만큼 쌓여있는 재활용 쓰레기나 자연스레 헛구역질이 나올 만큼 냄새나는 음식물 쓰레기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제 창문을 활짝 열고 방 청소를 시작합니다. 발바닥에 버석버석 밟히는 먼지가 싹 사라지도록 평소엔 하지 않던 걸레질까지 합니다. 분리수거도 하고, 숨을 참으며 음식물 쓰레기도 처리합니다.


 다음은 목욕재계 시간입니다. 마치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쓸데없는 생각들을 다 씻어낸다는 생각으로 깔끔히 씻습니다. 샴푸를 두 번하는 것도 좋은 생각입니다. 계절에 맞게 스킨케어를 산뜻하게 끝내고, 두어 개 올라와버린 뾰루지에게는 그럴 수 있어-라고 다독여준 뒤 해질 무렵에 맞추어 저녁을 준비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고구마니 닭가슴살이니 컵누들 요거트니 뭐니 하는 나를 옥죄는 것들은 다 제외합니다. 새로 나온 컵라면-아무래도 오뚜기 것이 좋습니다. 비닐을 뜯으려 뒤집었을 때 '항상 당신을 응원합니다.'와 같은 글귀를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처럼 아무런 생각 없이 자극적이고 속세적인 맛으로 배를 채울 수 있는 간단한 음식이 좋습니다. 이럴 때만큼 '다이어트는 내일부터'라는 세계적인 슬랭이 반가운 순간은 없는 듯합니다.


 다음으로 나를 조금 더 나른하게 만들어줄 만큼의 알콜을 준비합니다. 알코올 펄슨이 아니라면 좋아하는 과채음료 정도도 괜찮겠습니다. 이때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내 주량을 소개할 때의 그 주량, 그러니까 약간의 허세가 더해진 주량의 2/3 정도로 알코올을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과도한 음주는 건강에 해롭기 때문입니다.


 식사 장소는 평소와는 조금 다른 곳으로 정하는 곳이 좋습니다. 마치 여행 온 듯한 기분을 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집은 남서향이라 해 지는 걸 볼 수 있어-라며 자랑할 때 말고는 딱히 쳐다본 적 없었던 창가를 바라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콕! 콕! 콕! 마요 짜장볶이 같은 이름의 음식을 해치우고 난 뒤에는 마음이 편해지는 음악을 한 곡 반복으로 설정해 놓고 알코올로 마음속을 헹구어 냅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그간 고생했을 마음을 토닥토닥 잠재웁니다. 이때는 내일에 대한 걱정도, 또는 그보다 먼 미래에 대한 걱정이나 과거에 대한 후회도 내려놓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오늘은 생각을 깊이 하지 않도록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 지는 창가를 바라보다 졸음이 밀려올 때쯤 양치만 한 뒤 눈을 폭 감고 잠자리에 들면 비로소 완벽한 일요일이 완성됩니다.


 그러니까, 행복이 별 거겠어요. 이렇게나 쉬운 걸 말이에요. 불행하지 않아 행복하고 망칠 것이 없어 완벽한 일요일을 보냈으니 나는 얼마나 행운아인 걸까요.

작가의 이전글 인연의 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