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장애 관찰일지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사람에게서 흔히 듣는 질문입니다. 잘 지내니? 잘 지내고 있니? 요즘엔 어떠니?
대부분의 경우 나는, 아임 파인땡큐 앤유의 미덕을 본받아 관습적으로 "그럼, 잘 지내지. 너는?"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는 비록 속 알맹이가 텅텅 비었다고 해도 너도 나도 마음이 편해지는 그 쉬운 대답을 차마 하지 못했습니다. '잘' 지낸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 건지 문득 정의 내리기 어려워졌습니다. 삼시세끼 잘 챙겨 먹고 월급이 따박 따박 나오면 잘 지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내적인 평안함에 달해야 잘 지내는 것인지.
'삼시 세 끼 잘 챙겨 먹고 월급도 따박따박 나오지만 불안 장애가 있어서 자낙스랑 인데놀을 먹고 있고, 잠이 너무 안 올 때는 수면제를 먹고 잠들어. 그래도 나름 사는 게 재미는 있는 것 같아.'라는 말을 구구절절하기엔 알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 강제적으로 알리는 듯해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 나는 그냥 '잘 지내려고 노력 중이야.'라는 알 수 없는 말로 얼버무렸습니다.
노력 중이란 말은 다시 말해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말로 들릴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어느 정도에 도달하지 못해서 도달하기 위해 노력을 하니까요. 전교 1등을 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승진을 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살을 빼기 위해 노력합니다. 반대로 어느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합니다. 전교 1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몸무게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직급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죠. 그러니까 나는 잘 지내지 않기 때문에 노력을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잘 지내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아마 나는, 잘 지내지 않기 때문에 노력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잘 지내고 싶습니다. 어느새 나에게 노크도 없이 찾아와 수년째 나를 괴롭히고 있는 불안장애가 사라졌으면 참 좋겠습니다. 약을 먹어도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이 세상 공기를 다 들이키려는 듯 숨을 크게 쉬어야만 호흡을 하는 사람처럼 숨을 크게 쉬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그냥 살기 위해 숨을 쉰 건데, 왜 한숨을 쉬냐는 말을 듣고 싶지 않습니다. 참, 이제야 이해가 되는 말입니다. 남들 눈엔 힘 빠지는 한숨으로 보일지 몰라도 작은 한숨 내뱉기도 어려운 하루를 보냈다는 말.
나는 참 잘 지내고 싶습니다. 잘 지내려고 노력 중입니다. 잘 지내냐는 말에, "나야 엄청 잘 지내지."라고 별생각 없이 가볍게 대답할 수 있는 날이 어서 온다면 나는 참 바랄 것 없이 행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