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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은 Aug 20. 2022

늦여름, 여유로움

 정오가 훌쩍 넘도록 잠에 취해 몽롱하게 지내다가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는 귀찮은 메이크업은 다 생략하고 편한 옷만 걸치고 만날 수 있는 오래된 친구를 만나는 그런 날.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져가는 도심 속 공원에서 이름 모를 밴드가 부르는 유명한 노래를 들을 때의 여유로움. 당신이 누구인지 저는 상관없어요, 오히려 노래를 부르는 당신이 누구인지 몰라 저는 더 자유로울지도요. 달달한 스파클링 와인에 나도 모르게 취해서는 그 유명한 멜로디를 따라 흥얼거리는 기분 좋은 저녁. 저 멀리 무대에서 비춰오는 조명에 반짝반짝 빛나는 누가 보냈는지 모를 비눗방울이 언뜻 구름처럼 진주처럼 떠다니는 그림 같은 풍경. 한낮에 흘린 땀방울을 말려주는 시원한 늦여름의 바람.

 그럴 때는요, 내가 무얼 해야 하는지 또 무얼 하면 안 되는지 그런 내가 만든 쓸모없는 제약들은 다 물거품이 되어버려요. 내 혈관에 스며든 스파클링 와인 속 기포들처럼 사르륵 사라져요. 아마도 딱 그 정도의 밀도를 가지고 있었나 봐요.

 나는 그냥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하니까 그런 쓸데없는 규제들은 다 날 스쳐가기를. 익숙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창가에 머리를 기대고는 편안히 눈을 감아 이어폰에서 들려오는 쿨 재즈에 귀 기울일 수 있는 편안한 나의 밤을 이대로 두고 다 떠나가기를. 더 이상 날 괴롭히지 않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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