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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은 Jul 22. 2022

벌레가 벌레에 대해 쓰는 글


 요즘 내 차 안에는 날벌레가 산다. 한 마리인지 두 마리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두 마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리 날개가 달렸다한들 그렇게 빨리 움직일 수는 없을 테니까.


 이 골칫거리를 처음으로 발견한 건 글쎄, 아마 한 2주쯤 전이었다. 생김새는 일단 머리인지 가슴인지가 아주 좁쌀보다도 작고 배는 마름모꼴로 꽤나 통통하고 그 윗부분에 비해서는 큰 편이다. 더듬이도 길게 뻗어있다. 그런 행위를 '난다'라고 표현해도 되는지는 의문이지만 공중을 짧고도 낮게 비행하다 다시 제자리에 앉는 행동을 반복한다. 색깔은 검정보다는 붉은 갈색에 가깝고 아주 작은 벌레이다. 인간이 이 벌레에게 붙인 이름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파리라거나 벌, 모기 이런 흔한 이름은 아닐듯하다.


 나는 이 이름 모를 곤충을 여러 번 제거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처음 발견했을 때에는 하필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이어서 관용을 베풀어주자 하는 마음에 창문을 열지 않았고, 두 번째로 발견했을 때에는 네 개의 창문을 활짝 열었으나 다소 끈기가 있는 편이었는지 차 창 밖으로 나가지 않고 버텼다. 그래서 세 번째로 발견했을 때에는 기필코 이것을 검지 손가락으로 짓눌러 없애버려야겠다고 생각했지만, 하필이면 차 안에 수북이 쌓여있던 카라멜 껍질이나 껌종이 같은 것들을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깔끔히 치운 뒤라 행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맨손으로 어떤 체액이 나올지 모르는 이름 모를 벌레를 짓이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 다음에 다시 이 벌레를 발견하거든 껌통이든 휴대폰이든 아니면 심지어 맨손이더라도 기필코 저것을 터뜨려서 차 창 밖으로 탈탈 털어버리겠다 다짐했다.


 불자는 아니지만서도 굳이 살생을 즐겨하지는 않아 웬만하면 살려두고 싶지만 또 굳이 없애버리겠다 마음을 먹은 데에는 그 벌레가 계속 내 신경을 자극한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다. 그 벌레는 희한하게 창문도 참 많고 매달릴 곳도 많은 내 자그마한 차 안에서도 특히나 운전석 앞쪽 유리를 좋아한다. 아마 그곳으로 향하면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 아닐까. 사실 그 문은 절대 열리지 않는데. 내가 아무리 창문으로 가라고 손을 휘저어도 그 말은 들은 체도 않고. 바보같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도 작디작은 차 안에서 앞 유리에만 집착하는 바보 같은 날벌레가 아닐까. 분명 내 인생에도 탈출구는 있을 터인데 앞만 볼 줄 알아서 계속 위협 근처에서 맴도는 바보 같은 날벌레. 나는 그 벌레를 죽이고 싶은 게 맞을까. 맞다면 그까짓 벌레 검지 손가락을 쭉 뻗어 꾹 눌러버리면 그만인데 그까짓 일 하지 못하고 이 고독하고도 소중한 야밤에 벌레에 대한 글을 이렇게나 쓰다니. 어쩌면 나는 그 작은 벌레랑 같이 살고 싶은 큰 벌레인가 보다.


 어쨌든 벌레는 어느 순간 죽을 것이다. 죽지 않으면 차 창 밖으로 언젠가 깨달음을 얻어 빠져나가겠지. 벌레는 어느 순간 사라질 것이다. 그게 제 명이겠지. 내가 관용으로 살려주었다 생각하는 요 며칠도 사실은 다 제 명대로 사는 것이겠지. 그 벌레는 내일 죽을 수도. 오늘 죽을 수도. 어제 죽었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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