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이 끝내 혹평받은 이유에 대해
최근에 오징어 게임 전편을 정주행 했다. 확실히 왜 혹평을 받았는지 알겠다. 가장 능력이 없었던 성기훈이 1편에서 우승을 하는 전개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만큼, 사람들은 2편과 3편에서도 현실을 극복하는 반전 스토리를 원했다. 그리고 그 기대는 완전히 좌절되었다. 약육강식의 논리는 절대적이고 깨질 수 없었다. 쌓여가는 상금 앞에서 욕심을 내려놓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은 탈락통보와 함께 목숨값으로 빚을 치렀다.
진행요원들의 총을 빼앗아 쿠데타를 시도한 성기훈과 게임 반대파들이었으나 현실처럼 무리수로 끝나버렸다. 꿈도 희망도 없을뿐더러 나중에는 참가자들마저 서로를 죽이는데 거리낌이 없어졌다. 마지막을 코앞에 두고 겨우 살아난 성기훈은 같은 편이 남겼던 갓난아이를 앞에 두고 자기의 목숨을 포기했다. 현실은 전혀 이상적이지 않으며 약자로 몰릴수록 삶은 한없이 잔인해진다는 불편한 진실을 드라마 작품에서 전체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쉬려고 접속한 넷플릭스에서 현실보다 더 암울한 전개라니. 오 마이 갓.
참가자가 많이 희생되며 드러난 벽면에는 ‘HODIE MIHI’, ‘CRAS TIBI’라는 문장이 적혀있었다. 찾아보니 라틴어로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라는 뜻이다. 아쉽게도 시청하는 입장에선 1편의 영향인지 다음 게임을 예측하기 바빠서 이 문장을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 나도 정주행을 마치고 나서야 번역을 보고 식겁했다. 오늘 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해 앞에 걸리적거리는 다른 참가자들을 제치고 밀어 넘어뜨리며 탈락시켰는데, 다음 게임에선 본인이 당한다는 말이니까. 실제로 극 중에서 그렇게 수많은 참가자들이 탈락하지 않는가. 최후의 1인이 되기 전에는 그 누구든 눈이 뒤집힐 정도로 생존 경쟁을 해야만 한다.
이렇듯 서바이벌 방식은 참으로 잔인하다. 탈락하기 싫은 자는 악착같이 버티면서 다른 놈들에게 그렇게 싫은 탈락을 떠넘겨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매우 높은 확률로 본인이 탈락한다. 슬픈 사실은 이런 식의 서바이벌 게임을 굴리는 놈들은 여유롭게 앉아서 놀이를 구경하듯 즐긴다는 사실이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밖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탓에 눈에 보이는 나 말고 다른 인간들에게 다시 분노를 전가할 수밖에 없다.
동양에도 비슷한 의미를 가진 단어가 있다. ‘업보’라는 단어로 보통 불교에서 많이 들린다. 예전에는 어른들이 많이 쓰던 말이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거 같다. 타인을 괴롭히는 언행이 결국 자신한테 돌아온다는 말인데, 다들 상식처럼 알지만 막상 실천으로 옮기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현실이 팍팍해서 당장 내 살길 찾기 바쁘니 마음의 그릇이 좁아지는 탓이다. 오징어게임 2편부터 등장하는 OX 선택지 중에서 X를 선택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이걸 깨달아서 멈추려고 했다. O를 고르는 눈이 뒤집힌 사람들의 영향력이 훨씬 강한 탓에 계속할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