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거인 스토리의 숨겨진 교훈
약육강식의 논리를 다루는 작품 중에 유명한 애니메이션이 있다. 바로 ‘진격의 거인’. 상당히 흉측한 비주얼과 더불어 사람 신체가 갈가리 찢기는 잔혹함 때문에 호불호가 매우 갈린다. 대신 정주행을 마친 사람들은 앞의 분위기와 다르게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 작품을 먼저 정주행 하느라 수 일을 폐인처럼 보낸 사실은 약간 민망하지만.
앞의 오징어 게임과 다르게 여기는 4개의 시즌과 시즌 3이 파트 1, 2, 파이널 시즌이 파트 1~3으로 나뉘어 총 7개로 스토리가 구분된다. 넷플릭스 기준으로 총 87화에 각 화의 플레이 타임이 평균 25분 정도이니.. 집에서 하루 종일 잠자고 밥 먹는 시간 말고는 전부 애니만 본다고 가정해도 3일 이상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플레이 타임이 너무 길다 보니 안 봤다는 사람들에게 선뜻 추천하기는 고민이 되기도 한다.
줄임말로 ‘진격거’라 불리는 이 작품은 1화부터 초대형 거인과 갑옷 거인에게 마을을 지키던 방벽이 뚫리고, 거인들이 난입하면서 주인공의 마을이 초토화되는 전개로 시작한다. 한순간에 모든 걸 잃은 어린 주인공이 눈깔이 돌면서 모든 거인을 구축해 버리겠다 다짐하며 1화가 끝난다. 조사병단에 입단하여 벽 너머의 진실을 파헤치는 데 성공해 감춰져 있던 인류의 진실을 깨닫게 된다. 시즌 1이 주인공 에렌이 조사병단에 들어가기까지의 과정이고, 시즌 2~3은 조사병단이 거인과의 사투를 벌이며 세계의 진실을 찾는 과정으로 정리할 수 있다. 여기까지 보면 인류 대 거인 딱 이 정도이다. 아마 라스트 시즌이 공개되기 전까지는 모두들 이렇게 끝날 거라 예상했을 거 같다. 그리고 마지막 시즌에서 반전의 연속과 함께 인간을 향한 심오한 메시지를 남기며 진격거의 스토리가 마무리된다.
정주행을 마치고 진격거 후기 및 분석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어떤 리뷰 유튜브 채널의 멘트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눈깔이 돌아’. 주인공 에런부터 시작해서 진격거의 등장인물 거의 모두가 이런 상태로 나온다. 가족이나 소중한 사람들이 자기 눈앞에서 죽는 걸 본 자들 거의가 이를 바득바득 갈며 똑같이 갚아주겠다 마음먹는다. 분노에서 증오로 감정이 확산되는 순간에 인간은 눈깔이 돌아버리고 만다.
이런 상태에선 이성적으로 생각하기가 너무 어렵다. 왜 눈깔이 돌았다 말하겠는가? 증오에 마음이 잠식당해서 모든 게 적대적으로 보이기 시작하니 진정하려고 해도 진정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진격거에선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저들이 나를 죽이러 오는 상황이 유독 많다. 거인들이 그랬고 파라디 섬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한때 같은 편이었던 사람들까지도 서로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생긴다. 라스트 시즌에선 거인대전은 피날레로 나오고 거의 모든 전개가 파라디 섬과 마레 제국의 역사적 갈등으로 인한 보복과 ‘증오의 연쇄’로 진행된다.
진격거를 마지막까지 봤다면 사샤의 아버지가 칼을 거두며 하는 대화를 봤을 거다. 이 세계는 원한과 증오에 사로 잡혀 살육을 반복하는 거대한 숲 속이었다며, 숲에서 나가야 살 수 있다고, 그러니 과거의 죄와 증오를 더 이상 아이들에게 물려주지 말자고 말이다. 잔인한 장면만 계속 연출되는 플롯 안에서 이 장면이 더욱 의미가 있다. 결국 용서하지 않으면 악감정이 연쇄되어 나한테 돌아온다는 말이니까.
여기서는 ‘증오의 연쇄’로 정의되는데,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감정 자체가 연쇄적으로 작용하는 성질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상관없이 한번 감정이 생기면 반전의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마음을 진정하기 어렵다. 게다가 상황이 대체로 부정적으로 흘러갈수록 연쇄적으로 악감정이 더해지면서 내면의 증오가 커지다 못해 터지기까지 한다. 생각은 결국 말이 되고, 말은 행동으로 드러나기 마련인데, 이런 악순환에서의 행동은 속된 말로 피를 볼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악감정에 휘말리고 결국 확산된다. 감정이 연쇄적으로 나타나 결과로 드러나는 거다.
나는 이걸 ‘감정의 숲’이라 부르고 싶다. 우리 내면, 즉 깊은 마음속 목소리가 자기 외부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집을 부려 자기모순과 파괴적인 언행으로 변하는 상황 말이다. 자기감정 안에, 특히 부정적인 감정에 갇혀서 스스로를 안 좋게 몰아넣는 모습은, 마치 감정이라는 거대한 숲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길을 잃는 꼴이 아닌가. 필요하다면 우리 마음이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갈 필요도 있고, 방향을 잃었다면 다시 찾아야 뭐든 숲을 빠져나오기 시작할 수 있다. 더 이상 감정의 연쇄 작용에 휘둘려 스스로 고통받는 짓은 멈추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