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적이지 않은 인생의 진화
세상은 나에게만 엄격했다. 이러면 안 돼. 저러면 안 돼. 왜 시키는 대로 안 해? 몽둥이 어딨어?!! 어릴 때의 추억을 아무리 떠올려보려고 해도 제일 먼저 기억나는 건 윽박지르는 부모와 회초리뿐이다.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물건 몇 번 망가뜨리거나, 가만히 있으라는데 딴청을 부리거나, 왜 혼자 이상한 행동을 하느냐 거나 중의 하나였겠지. 싫어서 몇 번 싫다고 했더니 그러면 먹지 말라며 눈앞에서 통째로 음식을 회수당했던 기억도 이제 어렴풋이 떠오른다. 이런 아동기를 거쳐 가며 청소년기도 어정쩡하게, 꿈꾸는 방법을 모르는 상태로 보냈다.
그런 환경 치고는 공부 머리가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고3 1년 동안에 사람들이 말하는 '정신 차린' 상태가 되어 하루 종일 책상에만 붙어있었다. 단과반 학원이 유행이었지만 집에서 학원비 한 푼 안 대주니 꿈도 꾸지 못했다. 그래도 운이 좋게 추가 5차 합격으로 서울권 대학에 턱걸이 합격했다. 이때부터 세상은 본격적으로 압력을 넣었다. 군대 가야 돼. 취업해야 해. 가족을 보살펴야 해. 장남이니까. 적어도 대학생 시절에는 가족, 친척들 모두가 뭔가 해주기를 기대한다고 느꼈다. 소중한 가족과 친척이니까 그 기대를 보답해야 한다고 그땐 생각했다.
인서울 타이틀은 영광스러운 자격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족쇄였다. 모든 컴공과가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모든 전공수업에서 개학과 동시에 코딩과제가 있었다. 심지어 중간 기말고사와는 별도로 과제가 2~3주 간격으로 학기 내내 있어서 머리를 쥐어짜야 했다. 그 와중에 평일에는 근로장학생으로, 주말에는 편의점 알바로,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운이 좋게 대기업 전산 계열사에 입사했다. 이제는 최소한 숨 돌릴 틈이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근데 2절이 시작했다. 빨리 결혼해서 자식을 낳고 가정을 꾸려야 하고, 회사에서는 직급이라는 위계질서에 따라 시키는 대로 '상식적으로' 행동해야 했다.
난 그러지 못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그렇게 하는 법을 몰랐고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이 말하는 '상식적인' 언행들이 나에겐 불합리, 불평등, 강압적으로 보였다. 대부분의 사람은 사회가 원래 이런 거라며 참고 다닌다. 나는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그럼에도 전공은 포기할 수 없다는 자격지심이 있어서 취업 준비를 다시 하겠다는 뜬구름 잡는 사유를 대며 1년 반 만에 퇴사했다.
마지막으로 운이 닿아서 유명 포탈 회사에 합격했다. 이번에는 업무 난이도가 너무 높았다. 팀에 배치받자마자 처리해야 할 CS가 수백 건이 있었다. 당장 일을 해야 하는데 자바 JVM 설치부터 에러의 연속이었다. 맥북을 이때 처음 써보는 탓에 어떻게 진행할지 몰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결국 수습 기간만료로 계약 종료 처리. 왜 소통을 안 하고 일을 진행하지 못하냐고 팀장한테 꾸지람을 엄청나게 들었다. 그때는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그 이후로는 방황과 잦은 이직의 반복이었다. 꿈도 목표도 없고 가진 건 컴공과 졸업장 하나. '인서울' 프리미엄은 잦은 이직 앞에서 그 가치를 잃었다. 학자금 대출을 겨우 다 갚고 나니 카드값에 허덕였고, 소비를 줄이지 못해 생활비 대출을 추가로 받아야 했다. 돈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속도만큼 마음도 무너졌다. 가족은 내 꼴을 보면서 잔소리하다가 결국 분노를 드러냈다.
초기에는 참았다. 당장의 내 꼴이 말이 아니었으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친가족임에도 선을 넘는 간섭과 멸시가 강하게 다가와서 참을 수 없었다, 나중엔 가족 생각만 해도 몸이 부르르 떨리고 이가 갈리는 지경이 되었다.
결국 또다시 이직하고는 지방 파견근무라는 핑계로 확실하게 집을 나와 버렸다. 그럼에도 한동안 계속 전산 하도급업체 몇 군데에서 근무했다. 자기들이 고객이라며 항상 촉박하고 숨 돌릴 틈 없는 개발 일정만 요구하는 상황에 대응하다가 지쳤고, 같은 개발자들에게는 나름 잘하는 거 같은데 성격이 이상한 녀석으로 취급받았다.
커리어가 바닥까지 내려가는 게 눈에 훤히 보임에도 ‘개발자’라는 타이틀을 포기하기까지 수년이 걸렸다. 중간에 1년 이상 쉴 때는 보조출연, 행사 진행요원, 백화점 명품관 보안 알바 등을 하다가 쿠팡 물류 알바까지 해봤다. 잦은 이동이 필요하거나 힘이 많이 필요한 일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하루 하고 나면 며칠을 이유도 없이 앓아누웠다. 자기 계발을 해야겠다며 이런저런 모임을 다녀봤지만, 대부분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근데 단 하나, 글 쓰는 작업만큼은 애정이 붙으면서 실력 향상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글쓰기 모임에서도 점점 내 글을 인정받았다. 독서 모임으로 시작한 인문학 공부가, 사색을 문장으로 표현하는 스킬로 발전했다. 아직 개선할 점이야 많겠지만 글의 분량을 채우는 건 촉박한 시간을 요구하는 경우만 아니면 어떻게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과거를 정리한다. 눈에 보이는 건 없어도, 수많은 사람들과 별의별 일이 다 있었다고 느끼며 상당한 경험의 양을 쌓았음을 깨닫는다. 인생 경험이라는 무형의 자신을 에세이와 소설이라는 문학작품으로 발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