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자 연대 2

응원을 위한 연대

by 이탈자 연대

그럼 이탈자가 되었으니 사회에서 규정한대로 패배자처럼 살아야 하는 건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밖에서 말하는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이유를 굳이 멋드러진 문장으로 정리할 필요가 없다. 우리 내면의 목소리가 계속 절규하며 외치고 있으니까 말이다.


당장 회사를 그만두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는 사람이나, 꾹꾹 참고 회사를 계속 다니는 수많은 사람 모두 각자가 원하는 무언가가 있다. 용기를 내어 이를 드러내고 인생의 목표 삼아 달려 나가느냐, 당장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때를 기다리면서 참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고, 생산적이거나 사회적으로 도움이 될 여지가 있다면, 우리가 마음속에서 키웠던 작은 소망이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꿈을 키워나가는 건 개인의 자유이며 권리다. 바보 같아 보인다고 비웃는 사람들에게, 무슨 권리로 타인의 삶에 대해 평가하며, 평가하는 기준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묻고 싶다. 올바르다는 사회적 기준이 과연 절대적이라 말할 수 있느냐 말이다. 결국 생각의 차이이고, 다수의 생각이기에 사회적 기준이라 불리는 게 아닌가. 그 다수의 생각은 항상 절대적이라 여길 수도 없을뿐더러, 때에 따라 다수의 의견이 잘못된 결과를 일으킬 가능성도 있는데 말이다.


한국 사회는 이탈을 부정적으로 보았다. 그러나 사실 어디선가 이탈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개인의 성장 과정에서도 가족과 떨어져 나오는 순간이 있고, 친구를 사귀고 헤어지는 과정은 늘 반복된다. 오히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으로 건강하지 않은 결속을 억지로 이어가며, 이탈을 막았던 과거의 모습이 지금 돌아보면 어색하고 부자연스럽기 짝이 없다.


필연적인 수많은 이탈의 과정에서, 우리 모두 건강한 사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깨닫고 있다. 지금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생각에는 다들 동의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면, 그때부터 사람마다 대답이 다르다. 서로 반대되는 의견도 있다 보니 만나서 이야기 하다가는 말싸움 나기 쉽다. 그렇다면 한쪽의 이야기만 들어야 할까? ‘흑백논리’라는 말을 들어봤을 거다. 하나만 맞고 나머진 다 틀렸다는 식의 주장은 사고의 흐름을 지워 더 깊이 생각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미 우리는 알고 있다. 이런 논리로 가면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거의 없다는 걸 말이다.


지금 이대로 안된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수많은 가능성을 찾아보는 게 우선이 아닐까. 당장 눈에 보이는 해답만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 선택의 코너에 몰린 경우가 아니라면 아직 떠올리지 못한 게 더 있을 수도 있다.


이제 고정관념에서 이탈해 삶의 가능성을 탐색하자. 서로의 꿈을 응원하고 존중하자. 그리고 우리 각자가 가진 작은 꿈을 지키기 위해 서로 연대하자. 그것이 우리 이탈자들이 상처를 주고받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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