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속 엔트로피 심리
옛날 과학 교과서에 부록 페이지가 있었던 게 기억난다. 시험에 나오지도 않고 고작 한 페이지씩만 있다 보니 그런 게 있었는지도 기억 못 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나도 그 부록의 상당수를 잊어버렸지만 유일하게 하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바로 ‘엔트로피’. 아쉽게도 설명 글은 전부 잊어버렸다. 지금 아무리 인터넷을 뒤져봐도 그때 봤던 그 느낌으로 설명하는 곳은 없다. 학생이 대상이라 글이 눈높이를 맞춰준 걸까. 당시 글에서는 연금술 관련해서 어쩌고저쩌고했다고 느낌만 기억할 뿐이다.
일단 지금 찾아볼 수 있는 정보로는, 위키백과의 설명에 따라 엔트로피(entropy)는 열역학과 통계역학에서 '평형 상태로의 이동 정도' 또는 '유효하게 이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감소 정도'나 '무효 에너지의 증가 정도'를 뜻한다고 한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우주의 모든 과정은 결국 더 무질서하고 에너지를 사용할 수 없는 상태로 나아간다는 것이 엔트로피 개념의 최종적인 해석이었다. 과학계에선 이 개념을 통해 이미 여러 난제를 해결하고 이론을 정립한 걸로 알고 있다. 최근에는 경제학이나 여러 응용 학문에서도 개념을 차용한다고 나온다.
솔직히 나한테는 불편한 느낌이 더 많이 들었다. 만물의 움직임이 무질서해진다는 말은 내 본래 성향과는 정반대인 느낌이었다. 결국 모든 게 무용지물이 된다는 느낌이랄까. 그러면 무엇 때문에 그토록 열심히 살았을까 싶어 허망하기만 했다. 대학은 왜 나왔으며, 뭐를 위해서 스펙을 쌓고 고생하며 발버둥을 쳤단 말인가. 극한의 허무함이 몰려올 때면 ‘엔트로피’라는 단어가 점점 머리에 각인되는 기분마저 들었다.
요즘은 어딜 가더라도 뭐든 쉽지 않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시스템은 점점 복잡해져서 겉핥기식으로 체험해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고도화된 사회와 문명을 다른 측면에서 보면 너무나 복잡하고 치밀하게 설계된 탓에 100%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아니, 시작조차 불가능하다고 느낄 정도로 당최 받아들일 수 없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럼에도 이런 사회에서 태어난 마당에, 살아가려면 차라리 순응하고 뭐라 하면 그저 고개를 숙이는 게 편한 느낌이다.
이제서야 그 의미가 뭘 말하는 건지 알 거 같다. 젊은 시절에 한껏 열정을 불태웠던 것은 에너지를 소진하고 의욕까지 태워 없앤 것이었다. 인간에게 무효 에너지란 움직이지 않고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굴려본들 현실에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망상이었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이러고 있으면 탁상공론이 되는 거였다. 이런 것에만 심취해서 현실을 외면하고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하는 것이었다.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게 만드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피곤한 감정이 엔트로피의 사회적 정의인 셈이다.
열정을 함부로 비판할 수는 없다. 성장과 진화의 시작이 더 나은 자신과 세상을 위한 열정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하지만 열정이 현실을 외면할 때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지, 우리는 그 참혹한 현장을 너무 많이 봐왔다. 작게는 개인의 어긋난 욕심부터, 크게는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부조리까지, 이미 우리는 그 원인을 본능으로 기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