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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상 Nov 23. 2024

수능의 모순 1

'어휴, 내가 애들한테 미안하네. 이런 문제들을 끙끙거리고 고민하게 만드니... 

언어유희를 했으면 재미있기나 하지.. 

완전 의미도 없는 말장난만 하고 있구먼. 

화가 난다. 화가.....'


수능 모의고사 날 시험감독을 들어갔다 나온 서울대 출신의 국어샘이 시험감독하면서 살펴본 국어 시험지에 대하여 혀를 끌끌 차며 화를 내듯이 한마디 합니다. 수능 문제가 그렇습니다. 수능의 문항들을 들여다보면 일단 내용을 알고 있어야 하겠지만, 내용을 알고 있을지라도 정답과 오답 간의 차이가 아주 미세한 차이, 즉 표현의 차이, 또는 해석의 차이에 불과한 문제 유형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나도 수능 문제를 볼 때마다 화가 납니다. 수능 대비 방과후 수업을 할 때 아이들과 출제자 의도가 뭔지, 풀이 단서가 어디에 있고, 함정을 깔아놓은 문항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두는 문제풀이 연습할 때 특히 더 그렇습니다. 


그래서 글쓰기로 유명하다는 작가, 시인이 수능 문제에 실린 자기 글에 관한 문제도 답을 찾지 못하고 틀리는 정체성 불명의 국어 문제들이 나옵니다. 오죽하면 어느 작가는 교과서에 자신의 글이 실리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역시 자신의 글이 출제된 다섯 문제 중 두 문제를 틀렸다고 합니다. 어느 시인도 본인 시를 가지고 낸 수능 모의고사 문제를 풀어봤는데 세 문제 모두 틀렸다고 합니다. 이런 웃지 못할 상황은 교과서에 실린 다른 작가들에게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작가의 의도를 묻는 문제를 작가 본인이 풀어서 틀립니다. 참 아이러니합니다. 가슴으로 감상해야 할 문학 작품을 한낱 문제풀이를 위한 분석 대상으로 전락시켜 글의 맛을 모르는 채 기계적인 해석만 훈련시키고 있으니 당연히 교과 본연의 문학수업이 이루어질 리가 없습니다. 국어 수업만 예를 들었지만, 다른 교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최근에도 나에게 익숙한 '생활과 윤리' 교과 문에서 동물 옹호론자로 유명한 석학 피터 싱어 주장에 관한 어이없는 논쟁이 발생했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피터 싱어 교수의 주요 메시지는 동물도 인간과 동일하게 고통을 느낀다는 점에서 동물도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싱어는 동물실험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를 정답으로 밀어붙이는 교사에 한 학생이 '대부분', 또는 '일부'라는 조건 없이 '무조건 동물 실험을 없애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반박하며, 직접 피터 싱어 교수에게 이를 확인하였습니다. 참 웃픈 현상입니다. 교과서를 통한 수박 겉 핥기의 얕은 지식에, 그것도 아주 지엽적인 표현 여부를 가지고 석학의 주장을 정밀 재단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계적인 석학과의 메일을 보내 확인할 정도의 똑똑하고 열의 있는 아이들의 에너지가 겨우 표현의 차이에 불과한 정답 확인을 위해 낭비되고 있습니다. 피터 싱어의 동물에 대한 철학을 이해하는데 '대부분'이든지 '무조건'이든지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차라리 이러한 논쟁보다는 ‘동물해방’이라는 피터 싱어 교수의 책을 직접 읽으며 확인하고, 토론하고, 깨달음을 얻는 수업이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입니다. 피터 싱어 교수도 이러한 질문까지 받아보고 참 놀라워했을 것입니다. 동시에 객관식 문항 자체에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 있는 교수의 입장에서 한국의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하여튼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열심히 매달리는 객관식 문제풀이가 이러한 무의미하고  미세한 차이에 의해 정답이  결정되는 오묘한(?) 문제들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국어를 잘 하는 것과 국어 문제를 잘 푸는 것, 영어를 잘 하는 것과 영어 문제를 잘 푸는 것이 서로 다른 능력입니다. 즉, 모든 교과가 추구하는 본연의 능력과 문제 푸는 능력은 완전히 다른 차원입니다. 동일한 내용을 바탕으로 출제된 다양한 문제들을 풀어보면 알고 있는 내용인데 틀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정한 학습과 문제풀이는 별개임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객관식 문제풀이 능력을 학력, 즉 수학 능력의 판단 기준으로 본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입니다. 오죽하면 몇 십 년의 경력 교사들도 수능 문제집 수업 시간 전에 가르칠 문제들을 살펴보고 답을 맞혀보는 공부를 합니다. 경력 교사들도 답을 미리 보고 맞혀보지 않는다면 아이들에게 왜 정답인지를 정확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답에 설명을 맞추는 꼴입니다. 흔히 말하는 킬러 문항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 교과를 가르치는 교사들도 이럴진대, 아이들은 더 힘듭니다. 한 과목 당  참고서를 여러 권 사서 풀어보는 훈련을 반복해야 합니다. 내용에 대한 학습을 넘어서 그저 문제풀이 연습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압축하면 우리 고등학교 수업은 교과 자체가 추구하는 능력 신장이 아니라 단순히 문제를 잘 푸는 훈련으로 변질된 상태입니다. 더 심하게 말하면 말장난의 차이를 극복하게 하는 훈련입니다. 시험 만점자가 많이 나오면 안 되고, 줄 세우기가 가능해야 하니 오직 변별력에만 온 신경을 쓰고 있는 수능 시험지의 실태입니다. 하긴 수능 시험제도가 시작된 지 어언 20여 년이 되어가고 있으니 출제자들도 문제 내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기출문제와 유사한 문제를 출제하면 안 되고, 문제를 낼 수 있는 유의미한 내용 영역은 거의 한정되어 있으니 출제자들도 머리를 쥐어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아이들은 최고의 교사들과 교수들이 억지로 쥐어짠 문제들을 풀어내야 하니 엄청난 고역을 치러야 합니다. 


3수를 하던 제자가 수능성적 발표 후 울상을 지으며 찾아왔습니다. 서울권 대학에 지원해볼려고 3수까지 했는데 성적이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입니다. 졸업 후 2년동안 기숙사 학원에서 죽어라고 문제풀이를 한 참담한 결과입니다. 그나마 서울 중상위권 한 대학에 논술 시험을 볼 수 있는 수능 최저점수는 맞춰졌다고 하면서 마지막 불씨를 살려본다고 이미 다른 학교로 이동한 나를 찾아왔습니다. 해서 일주일동안 집중 훈련을 통해 다행히 합격했습니다. 어찌보면 지적 능력신장에 도움도 되지않고, 시험끝나면 잊어버리는 객관식 문제풀이에 2년이라는 아까운 시간을 낭비한 꼴입니다. 또한 아이들이 기피할 정도로 어렵다는 논술로 합격할 수 있는 아이가 문제풀이 수능에서는 전혀 진전을 이루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문제풀이는 이래저래 접근하기가 까다롭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1주일간의 집중훈련이라 하지만 논술을 펼쳐낼 수 있는 또 다른 능력은 그동안 사장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문제풀이 능력이 그렇게 우리 아이들을 힘들게 하면서 길러줘야 하는 중요한 능력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처럼 교육열이 강한 나라도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교육열을 제대로 된 교육으로 승화시켰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적 능력 개발이니 고등의 사고능력 개발이니 하는 소리는 다 수능 합리화를 위한 억지 변명일 뿐입니다. 오직 변별력을 통한 줄 세우기만이 지상목표가 되어버린 시험이 수능입니다. 올해도 여지없이 수능 문제에 대한 이의신청이 200여건이 넘었다고 합니다. 예전에도 그러했듯이 수능 문제 오류 및 채점 번복이 매번 발생하고, 그로 인하여 아이들의 입시 결과가 좌지우지되는 참 아이러니한 현실입니다. 이러한 불만과 문제점을 인식하면서도 학교 현장의 교사들은 이 억지 시험 방식을 따라가느라 방과 후 보충수업까지 해가면서 문제풀이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비루한 수업에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달려있으니까요.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제공해 주지 못하면서 그나마 남은 에너지를 문제풀이 학습으로 몰아가고 있음이 안타깝습니다. 사유 없는 기계적 학습의 반복이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독일의 졸업시험 아비투어(Abitur)처럼 논술형 문제를 주고 5시간 동안 분석해서 써내는 고생(?)을 강요했더라면 훨씬 위안이 되었을 것입니다. 한 가지  주제에  관해서 다양한 분석을 통한 논리적 진술을 2시간 이상 쓴다는 것은 문제풀이를 위한 단순한 지식 암기가 아닌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과 엄청난 독서를 통해 쌓아진 식견이 전제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시험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선진국들은 아이들에게 고생을 시키더라도 아이들의 제대로된 성장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교육 관련 언급에서 항상 강조하고 있는, 미래를 대비한 창의적 인간, 융합적 인간 양성은 결단코 문제풀이 능력으로 신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미래사회에, 아니 현대 사회에서도 절대적으로 요구된다고 역설하는 창의적 능력 신장은 우리 교육 어디에서 길러지고 있는 것인지 갑갑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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