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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상 Nov 17. 2024

서류에 매몰된 교사 2

- 교사를 옥죄는 것

**교과 

가. 시험결과 분석

1) 평균 점수가 49.4점으로 매우 낮음.

2) .....

3) .....

나. 문항 분석에 따른 추수 지도 계획

1) 이해도가 낮은 주제에 대한 학습 이해 방식을 바꿔야 함.

2) 주제별 확인 문제를 통해 문제해결력을 향상시킬 계획임.

3) 성취도가 낮은 학생에 대한 동기부여 방법을 강구함.


매 시험때마다 시험을 보고 난 후 모든 교사들이 써내야 하는 고사 결과 분석 및 중점 추수 지도 계획입니다. 매번 시험이 끝날 때마다 의례적(?)으로 쓰고 있는 내용 중 일부입니다. 분석 내용을 보면 아주 정교하고 그럴싸합니다. 모든 교과가 시험 본 후 이렇게 애써서 분석하고 그대로만 피드백을 해왔다면 아이들의 개별적 성취가 일취월장, 아니면 최소한 부족한 학습 영역에 대한 충분한 보완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위의 내용처럼 철저히 분석하고, 정확하고 지속적인 추수지도가 당연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추수지도가 계획대로 행하지도, 이루어지지도 않습니다. 아니 통계적 분석이나 분석 내용을 행할 역량도, 시간적 여유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위의 분석 내용을 잘 살펴보면, 제대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보통 이상의 전문적 역량과 아이들에 위한 강한 의지를 갖추어야만 가능한 추수 계획들입니다. 그러려면 교사들이 수업에만 집중해서 연구하여 전문적인 능력을 신장시켜야만이 가능한 피드백입니다. 하지만 교과서 진도 빼기에 급급한 교사들은 그럴싸하지만 의례적인 내용을 써놓고 나서는 그걸로 끝입니다. 결재하는 관리자들도 제대로 하고 있는지 확인할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렇게 허구적인 서류작업을 했다는 것만으로 서로 만족합니다. 그냥 의례적인 서류 작성에, 시간과 에너지 낭비에 불과합니다. 교과협의회를 한다고 하지만 추수 방안에 대한 논의는 전혀 해본 적이 없습니다. 


'샘, 사유서 하나 써주셔야 하겠습니다.'

감사 기간에 교감이 곤란한 얼굴로 들어와 휴게실에서 앉아있던 교사에게 사유서를 써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인성교육 계획서가 지난 2년 치가 있는데 작년 것이 없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교감도 실제 실행하지도 않는 인성교육 계획서를 감사관이 찾을지 예상하지 못했는가 봅니다. 물론 정규 교육과정으로 일정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정기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교육할 수 있다면 당연히 계획서가 있어야 하고, 중요한 교육 영역이므로 정확히 실행되어야 합니다. 또한 인성교육 자체가 일회성이나 단기간에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 잠재적 교육과정 속에서 모든 교사들이 지속적으로 행하는 교육 활동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학교 시간들이 모두 교과 수업 위주로, 그리고 정해진 교육과정들로 빡빡하게 이루어지기에 인성교육이 중요하지만 끼어둘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언급했듯이 입시 체제하에서는 인성교육을 한들 그저 의례적인 일회성 행사에 그칠 뿐입니다. 


하여튼 인성교육의 효과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 감사관이 했다는 말이 실소를 자아내게 합니다. 인성교육을 실제로 하든 안 하든 계획서라는 서류 뭉치는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사관도 인성교육의 무용론을 인지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서류 상만으로도 모든 활동이 갖춰져야지만이 문제가 안되고, 그래야 완벽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던지 둘 중 하나일 것입니다. 결국 담당 교사에게는 어떠한 징계 조치도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입시체제로 내달리고 있는 학교에 정상적인 교육 활동을 하는 것처럼 거짓 서류를 갖추어야 하는 예들은 너무 많습니다. 2학기 공개수업을 해야 한다고(실제로 하지 않지만) 3학년 수업에서도 의례적으로 공개 수업 지도안을 내야 합니다. 2학기 들면 3학년들은 원서, 수능 준비 등 산만해진 채로 수업을 이어가거나 때로는 진도 다 끝내고 수능을 위한 자습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교는 입시체제로 달려 나가면서, 하지도 않는 수업에 가짜 지도안을 포함하여 서류상으로는 정상적인 교육 활동을 하는 것처럼 흉내를 내라는 비정상적 요구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시행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기안문의 글씨체가 서로 다릅니다. 그리고 내용을 더 자세하게 보충해 주세요.'

옆에 앉아있는 교사가 기안을 올렸는데 날아온 교감의 메시지에 당황하여 나에게 물어봅니다. 아마 기안문의 제목과 내용 글씨체가 달랐던 것 같습니다. 내용은 의미 전달에는 문제가 없었던 것 같은데 나도 무얼 더 보충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외부에서 날라오는 공문들을 처리하는 것도 벅찬데, 학교 행사를 위한 자체 기안에도 교감, 교장의 예리한 지적이 날라듭니다. 학교에서 교사들을 옥죄는 서류 작업 증가에는 관리자들의 지나친 열정(?)도 한몫합니다. 


공문 선별이나 제거는커녕 꼭 필요하지도 않을듯한 서류를 교사들에게 추가적으로 요구하지나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연구부장이 씩씩거립니다. 학교 자체 1박2일 연수 계획서를 2장으로 해서 제출했습니다. 교감 결재를 통과했음에 교장이 교감에게 2장의 계획서 가지고 무얼 하겠다는 거냐는 지적을 했다며 교감이 담당자에게 다시 전달합니다. 담당 교사가 한구석에 씩씩거리며 앉아있다 들어갈 내용은 다 들어갔는데 무얼 더 메꾸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불평입니다. 1박2일 연수라 해봤자 결국 놀러 가기 위한 연수에 불과할진대, 아마 놀라가는 것이 아닌 것처럼 더욱 근사하게 꾸미라는 요구일 것입니다. 중요하지도 않은 서류에 중요함을 더해보라는 억지 심사인듯 합니다.


‘학생 논술지도라는 내용으로는 초과근무 사유로 기재하면 안 됩니다.’

교감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초과근무를 달았더니 ‘학생 논술지도’라는 사유가 적절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방과후 2-3명의 아이들이 도움을 청해서 무료로 지도를 하는 시간이라고 말했음에 불구하고, 매일 밤늦게까지 아이들을 위해 무료봉사하는 교사의 노고는 격려해 주지 못하고 초과근무 사유 내용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을 합니다. 잘 이해되지 않는 설명을 덧붙이기는 하였지만 나로서는 도대체 이해가 안 됩니다. 평교사가 모르는, 교감의 입장에서 무언가 조심해야 하는 것이 있는가 봅니다. '학생 입시지도'라고 다시 표현을 바꿔 신청했더니 그건 받아줍니다. 도대체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습니다. 교감의 입장에서 조심해야 할 무엇이 있든 간에 교사들에게 납득되지 않는 이유로 별 의미도 없는 표현 하나에 딴죽을 거는 모습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어찌하겠습니까? 서류 양식, 표현 하나하나에 완벽함을 요구하는 교육현장의 왜곡된 압력에 길들여져서 성장할 수밖에 없는 교사들인데 어찌하겠습니까? 


출세 길을 빨리 밟았다는 유능한(?) 관리자가 올수록 서류의 정교함에 더 기를 씁니다. 또한 장학사 출신, 또는 오랫동안 교육청에 머물렀다 현장으로 내려온 관리자들의 특성은 내용보다는 형식, 절차에 더 치중하고 철저합니다. 이네들의 익숙하고 자신 있는 것은 교수-학습 능력보다는 행정적 절차요 형식이기 때문입니다. 관리자들이 요구하는 기안이나 그 내용이라는게 모두 만약의 경우(감사에서 지적당할 것을 대비하는 것인지, 원래 그렇게 철저해야 하는 것인지) 완전하게 방어할 수 있는 철저한 서류 형식과 내용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종이 복무서를 없애라는 공문이 내려와도 교사들에게 전달하지 않고 굳이 유지하고자 하는 습성도 여기에 기인합니다.  교육적 가치는커녕 의미 전달 여부 등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심지어 안 해도 될 기안을, 없어도 될 내용을, 그리고 의미 전달에는 전혀 지장 없는 기안문의 형식적 요인들 하나하나를 지독히 꼼꼼하게 검토하고 지시합니다. 내부 결재 서류에서 띄어쓰기 하나 틀렸다고 안경까지 집어던지며 짜증 내던 교육청 출신의 교감도 있었습니다. 내가 교육청과 학교를 순환하는 시스템을 비판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교사들이 교육청을 근무하고  학교 현장으로 나오게 되면 그네들의 초점은 아이들을 위한 교육활동이라기 보다는 만약을 대비한 면피용 서류, 그리고 가능한 흠을 안 잡히는 방향으로 서류상의 완벽함에 주력하는 습성을 갖게 되어 있습니다. 더나아가 교사들에 대한 지원적 자세보다는 항상 교육청의 감독에 알아서 더욱 몸을 낮추는 자세를 잡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근무할 때 위와 같은 관리자들을 만나 서류상의 압박을 받으며 성장합니다. 서류상의 지적을 당하면서 그렇게 배우고 성장하여 교감이 되고, 이제 드디어 교감이 되어 처절하게 갈고닦은 가장 자신 있는 솜씨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으니 맘껏 발휘해 보고자 하는 행태일 것입니다. 그네들은 단지 서류 한 장 검토하고 지시만 하면 되지만 기안을 하는 교사들은 수업하랴, 다시 기안 내용 메꾸기 위해 다른 내용들을 찾아봐야 하고, 관련 서류들을 뒤지고 찾고 다시 올려야 합니다. 꼭 필요한 내용이 아닌, 혹은 굳이 더 안 해도 되는 부수적인 잡무에 교사의 에너지가 낭비되는 꼴입니다. 


이렇게 서류에 철저한 교사가 부장이나 관리자가 되었을 때도 학교는, 교사들은 더욱 피곤해집니다. 별일 아닌 것들을, 없어도 되는 것들을 거창하게 서류상으로 꾸미기 위하여(이들의 고질적 성향입니다) 관련 교사들에게 무언의 압력을 가하게 되고 업무 부담을 증가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교육 활동을 열심히 하는 교사들에게 또 다른 부담은 관리자가 교육청에 보낼 ‘홍보자료’ 작성을 요구하는 경우입니다. 학교 현장에서 교육적인 교사들은 나름대로 입시라는 틈바구니 속에서 아이들에게 인격적 성장을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가능한 교과적인 접근보다는 인격적 성장을 위한 활동에 주력합니다. 당연히 이들이 하는 활동들은 기존의 학교 프레임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하면서 알차고, 그러면서 겉보기에도 그럴싸한 활동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장애아들과 비장애아들과의 협동 활동 같은 것이죠. 활동 그 자체만 해도 구상하고, 계획하고, 진행하기 힘들지만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서 그래도 합니다. 당연히 관리자들 눈에는 활동의 의미로 봐도 어디에나 내세울 만합니다. 하면 지원하고 격려하고 될 것을 활동을 끝낸 후에 꼭 홍보자료 작성을 요구합니다. 이미 힘들게 활동을 끝내고 지쳐있는 교사에게 교육 활동과는 별개의 홍보 자료 작성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 자료를 널리 알려 활동을 장려하고자 하는 의도이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어디에 나가는지, 누가 보는지도 모르는 그런 소식을 교사들은 아까운 시간을 소비하며 남은 에너지를 서류작업에 낭비해야  합니다. 관리자들이 이 홍보자료에 매달리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 자료가 교육청 공보과에 전달되고, 당연히 독특하고 교육적인 활동이니 관리자의 평가에 반영이 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승진에 목매는 교감일수록 더욱 치열하게 실적 위주의 장식성 서류 작성 등에 주력하게 됩니다. 교사의 노고를 이용하여 관리자의 긍정적 평가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죠. 담당교사가 마다하면 기어코 만만한 다른 교사를 시켜서 만들어냅니다. 본인들을 위하여 정 필요하면 담당교사가 결재 올린 활동 계획서를 보고, 또 활동을 같이 지켜보고 본인들이 직접 작성하면 됩니다. 본인들이 본인들을 위하여 충분히 할 수 있음에도 활동에 바쁘고 지친 담당교사의 노고를 다시 한번 쥐어짜는 요구를 서슴없이 합니다


교사들끼리도 지나치게 경직된 사고를 보여주는 교사들을 비하하는데 '꼰대'라는 비하 표현을 씁니다. 아마 나의 생각에 교사들이 이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성장하였기에 쓸데없고 무의미한 활동에서 경직되면서 권위적인 사고를 보이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교육현장의 교사들에게 서류상의 자질구레한 것들에만 집중하게 하는 현 실태가 지속되는 한 '교사의 꼰대화'는 더욱 가속화되고 말 것입니다. 



이러한 교사들로 성장하도록 이미 서류 작성 능력이 유능한 교사의 평가 기준 중 하나로 설정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오죽하면 1년마다 실행하는 교사 평가 관련 항목에 1년 동안 기안한 문건 수를 적게 되어있고, 이를 점수화하여 교사 능력 평가점수로 합산합니다. 어느 날  앞에 앉은 교사가 매주 정기적으로 학급마다 한 시간 갖는 학급 자치회 시간에 그날 해야 될 내용을 결제 받는다고 기안을 합니다. 당연히 학급 자치시간은 담임교사와 아이들의 몫이지만, 업무 담당교사가 필요한 활동이 있으면 간단히 교내 메신저로 각 담임들에게 안내하면 될 일을 굳이 기안까지 한 것입니다. 1년 계획안을 제출했음에도 특정 시간의 교육 활동을 결제까지 받는다는 것은 보통 관리자의 허락을 취해야 가능한 교육 활동을 할 때, 또는 관리자가 꼭 알아야 할 때 필요합니다. 이 교사에게 ‘왜 이런 학급 자치 시간에 당연히 할 수 있는 것까지 기안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이런 내용을 했다’는 근거 서류를 만들기 위해 그냥 했다는 것입니다. 꼭 필요하지도 않은 서류까지도 습관적으로 작성하는, 서류 지향적으로 암암리에 굳어져 버린 교사들의 마인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입니다. 어쩌면 기안 건수에 의한 교사 평가 점수를 염두에 두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모든 조직 운에는 기본적인 서류 작업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학교의 경우 그 정도가 교사의 본업을 망각할 정도로 지나치다는 점에서 우려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교육 활동을 서류로 남기고자 합니다. 그리고 서류상으로 완벽을 기하기 위해 거짓으로까지 작성도 합니다. 서류화에 젖은 교사들의 습성은 이미 교사들 개개인에 자동으로 내면화되어 당연한것처럼 서류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누구는 화성에 인간 정착을 위해 창의성과 진취성을 발휘하며 기를 쓰고 있는 세상에서, 이러한 인간들을 길러내기 위하여 더 중요한 본업에 집중하고 노력해야 할 학교의 교사들은 의례적이고 무의미한, 간혹 거짓의 서류작업에 시간을 낭비하고 쓸데없이 에너지를 쏟고 있습니다. 서류상으로는 완벽한 교사들이 정작 본업이자 전문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학생지도’ 및 '교수-학습'영역에서 서류를 꾸미는 것만큼 철저하게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는가 하는 반성이 필요합니다. 서류 하나하나에, 글자 한자 한자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기보다는, 서류의 완벽함을 기하는 만큼 아이 한 명 한 명이 잘못될까 봐 노심초사하고 철저하게 접근하고 노력하고 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교사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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