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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상 Nov 16. 2024

서류에 매몰된 교사 1

- 교사를 옥죄는 것

안녕하세요 41조연수 담당 000입니다. 

10. 00 일 재량휴업일입니다.

1.나이스에서 41조 연수를 신청해 주세요 

2.연수 주제를 저에게 소통으로 알려주세요 

(ex. 수학 활동지 제작 및 수업연구)

3.연수 복무서를 작성해 주세요.

일시: 10.00. 8:20~16:20

사유 또는 용무: 근무지외 연수

4. 근무지외 연수 사유를 명기하실 때 담당 교과와 관련된 연수 주제를 구체적으로 기제 부탁드립니다. 

예) '수업연구' 가 아니고 ( )과 1학년 기악 모둠 프로젝트 수업 모형 연구 등...

5. 근무지 외 연수지 : '자택' 이 아니고 자택 주소를 정확히 기입 부탁합니다. 


위에 진술한 41조 연수 서류 작성은 우리  교사들이 흔히 하고 있는, 형식적이고 무의미한 서류 작업에 정교함까지 더해가며 시간을 낭비하는 아주 대표적인 예입니다. 교사들은 방학 때나 재량휴업일 등 근무를 안 하고 집에서 쉬게 될 때 온라인 업무 전산화 시스템인 나이스(Neis)에서 41조 연수라는 것을 기록하게 되어있습니다. 서울에서 근무할 때는 기록한 기억이 뚜렸하지 않은 것을 보니 모든 학교들이 꼭 하고 있는 작업도 아닌듯 합니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당연히 그냥 집에서 쉬거나, 개인적으로는 교과 관련 연구를 하기도 할 것입니다. 교사라는 직업이 방학을 가지고 있고, 다음 학기 교육 활동을 대비한 재충전을 위하여 방학 때 쉬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공무원이라는 신분으로 인해 그냥 논다고 할 수 없으니 교과 관련 연구활동만을 하는 것으로 기입하여 올리게 되어 있습니다. 즉 집에서 쉬면서 교재연구를 했다는 등 형식상의 의례적인 기재 사항일 뿐입니다. 지방 학교로 내려와보니 이 허위적이고 의례적인 서류 작성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었고, 아주 그럴싸하게 정교함까지 더 요구합니다. 더나아가 나이스에 올리는 것도 모자라 동일한 내용을 종이 서류로 ‘근무 복명서’라는 것을 다시 작성하여 내도록 하고 있습니다. 


형식상의 의례적인 서류에 정교하게 진술한 교과 관련 연수 주제로 기입해야 하고, 또다시 연수담당자에게 그 거짓 주제를 알려주어야 하고, 전산 시스템에 입력한 동일한 내용을 다시 종이 서류에 기입하여 연수 복무서까지 작성해야 하고, 담당자는 전 교사들의 의례적인 연수 주제들을 다시 정리하여 결재를 올려야 합니다. 거짓이고 의례적인 진술들을 모아 결재를 받는 어처구니없는 서류 작업을 자연스럽게 반복하고 있습니다. 단지 교사가 공무원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의미한 서류 작업에 시간들을 낭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사 업무량이 많아서 본업을 제대로 못하겠다고 난리인 와중에도 이러한 거짓 서류작업은 지속됩니다. 전체 교사들의 시간들을 합하면 얼마나 많은 시간들이 낭비하는 걸까요? 아주 적은 시간들이지만 이런 자투리 시간들을 모아서 진정한 자기 연구에 투자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기록된 서류 내용처럼 방학 때와 재량휴업일에 교과 연구만 했다면 이미 우리 교사들은 자기 교과의 전문가가 되어있었을 것입니다. 


한발 양보해서 아무 생각 없이 기록한다고 할지라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방학 때, 휴일 때 집에서 재택근무한다는 형식적인 보고가 무얼 그리 중요하길래 온라인으로 올리고, 다시 똑같은 내용을 서면으로까지 첨부하라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하도 답답하여 교육청 담당자에게 직접 연락을 해서 종이로 제출하는 연수 복무서의 무용성을 주장하고 폐지를 권유했습니다. 한 학기 지나고 나서야 전 학교에 폐지한다는 공문을 내려보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무용한 서류작업을 교사가 어렵게 건의해야지만이 교육청이 들여다보고 겨우 허락을 해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는 학교 현장의 관리자나 담당 교사의 마인드입니다. 종이 복무서 폐지 공문이 내려왔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또 요구합니다. 분명히 관리자들을 포함하여 이 업무와 관련된 교사들이 다 열람했을 텐데 아무도 폐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종이서류에 기입하는 복무서를 다시 요구합니다. 직접 따지면 서로 민망할 듯하여 교육청 담당자에게 다시 연락해 복무서 폐지가 언급된 교육청 공문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담당 부장교사에게 다시 메신저로 보냈습니다. 그제야 마지못해 관리자에게 보고하고 없애도록 상의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전체 교사에게 담당 부장이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냅니다.


‘교원인사과-00000에 의거, 복명서 제출을 더 이상 운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복무에 대해서 좀 더 신경 쓰셔서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당부드립니다.

저야 업무 하나가 줄어들어 좋기는 하지만, 혹 업무에 구멍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무의미한 종이서류 작업 하나를 없애고, 업무를 하나 줄여주었음에도 서류에 지나치게 충실한 담당 부장은 해야 할 것을 못 하게 한듯한 아쉬움을 담아 혹 불이익을 받을까 봐, 업무에 구멍이 생길까 걱정합니다. 교육청에서도 없애라고 하고, 학교교육에 필요하지도 않는 무용한 서류를 없애자는 것인데 복무 관련 불이익은 무엇이고, 업무에 구멍이 날까 걱정한다니 도대체 무슨 사고방식인지 깝깝하고 당황스럽기만 합니다. 


답답한 현실입니다. 쓸데없는 서류 하나 없애는데 이렇게 힘이 듭니다. 교사들이 이미 반복되는 서류 작업으로 인해 서류화에 무의식적으로 매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서류로 쌓아두지 않으면 업무가, 교육이 안되었다고 세뇌화되어 있는듯 합니다. 교육청도 문제지만 교사들, 특히 관리자들의 마인드가 더욱 문제입니다. 교육청이라면, 그리고 공문이라면 바이블처럼 떠받들고 추종하는 관리자들이 아주 사소한 서류이지만 그나마 교사의 업무 경감을 조금이라도 줄여줄 수 있는 공문은 왜 무시할 생각을 했는지, 그리고 굳이 무용한 서류를 유지하는 쪽으로 밀어붙이는 의도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교사들이 스스로 서류화에 집착하면서 잘못 성장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이러니 업무 경감은커녕 기존 서류는 쌓아지고 새로운 서류는 더 생기는, 교사들은 본업 대신 서류화에 끌려다니는 꼴이 되어 버립니다.  




'이래도 괜찮으려나? 퇴비 이름을 정확히 써야 하지 않을까요 ?'


아이들과 교육 활동을 하기 위해 필요한 관련 물품들을 사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품의서’ 작성한다고 합니다. 아이들과 텃밭 활동에 필요한 물품 요청을 위한 품의서를 작성하는데 한 경륜이 지긋한 부장 교사가 이렇게 걱정을 합니다. 나에게는 아주 ‘어이없는’ 걱정인지라 깜짝 놀랐습니다. 퇴비 몇 개라고 품의서를 작성하고 판매 매장에 가서 준비되어 있는 퇴비를 사면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는데, 사야 할 퇴비의 종류까지 조사해서 정확히 기입해야지만이 나중에 뒤탈이 없지 않겠느냐는 진지한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기안문이나 품의서 작성에 이골이 날 정도의 나이 지긋한 부장 교사의 입에서 나온 소리라 순간 나도 혼란스러워집니다. ‘진짜 그렇게 해야 되는 것인가?’. 아주아주 사소한 서류상 내용까지 교사들이 습관적으로 신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교사들에게 이미 무의미한 서류 작업의 정교함을 은연중에 습관화, 내재화 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싸한 느낌이 들면서 놀랍기만 합니다.


실제로 학교를 소개하는 학교 팸플릿을 담당하게 된 부장이 지독히 서류상으로 완벽주의를 주장하는 교사인지라 빈약한 공간들이 맘에 걸렸는지 빈칸들을 꽉꽉 채워 작성하는 수고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학부모들에게 굳이 알리지 않아도 되는 교사의 신상정보, 즉 정식교사인지, 계약 교사인지, 실무사인지, 심지어는 휴직 교사도 질병휴직이라는 개인 정보에 해당하는 지나치게 자세한 정보까지 게재하는 철저함(?)을 보임으로써 결국 탈을 내었습니다. 이미 서류화에 매몰되어 습관적으로 나타나는 행태일 것입니다.


덕분에 학교에서 생성되는 서류 내용들 대부분은 외형상 정말 완벽합니다. 교사들은 서류 작업에서 가끔가다 깜짝 놀랄 정도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의 완벽성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교육계획서로 최고의 상을 받은 학교에 실사(實査)를 나가보니 엉망이었더라는 어느 감독관의 한숨이 생각납니다. 옛날에, 지금도 그렇지만, 내부 결재서류나 공문 작성 시에 교감, 교장이 주로 하는 일이 글자 교정, 문장 칸 맞추기, 심지어는 마침표가 제대로 찍었나를 주로 검토할 정도로 서류작성에 공들이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납니다. 그래서 그런지 대부분의 교사들이 관리자의 지적을 사전에 방어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내용에 내용을 더 첨가하거나, 별것 아닌 양식에 머리를 쓰면서 스스로 진통을 겪기도 합니다. 그 시간에 '수업연구나 학생 밀착 지도에 투자했으면...'하는 아쉬움이 퍼뜩 밀려옵니다. 최근 들어 학교교육이 내실 없이 형식과 서류에만 매진하는듯한 모습이 더욱 심각하게 눈에 띕니다. 교사의 에너지와 시간이 속절없이 낭비된다는 안타까움이 듭니다.


교사 주 업무의 무게 중심이 수업과 학생생활지도에서 이미 서류, 행정 쪽으로 기운듯한 분위기입니다. 교사로서의 수업은 대충 할지라도 계획서부터 모든 서류 작성이 이상적일 정도로 행정적 무결점 주의를 지향하는 공무원의 특성, 그리고 지독한 감사 지적을 피하고자 하는 안전 우선주의가 행정기관도 아닌 교육현장의 교사들에게 여과 없이 그대로 강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아주 사소한, 별 의미도 없는 서류작업들에 대한 철저함이 교직사회의 주도적인 분위기로 형성되어 슬며시, 그리고 점진적으로 교사들의 능력이나 정체성을 왜곡시키고 변질시키는 이상한 기류가 학교 현장에 자리 잡고 있는 현실입니다. 교육의 목표 분류에서 강조하는 인지적(수업), 정의적 영역(인성발달)의 목표 성취를 위한 노력이 아니라 전혀 생뚱맞은 ‘행정적 영역’이라는 목표가 교사가 추구해야 할 더 중요한 영역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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