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진도 나가시죠.’
고 3학년 수업 시간에 교과서 내용을 설명하다 관련된 현상들을 언급하는 와중에 아이에게 받은 질책(?)입니다. 이 아이의 관점에서 내가 교과서 내용과 관련하여 언급하는 내용들이 시험에 나오는 교과서 내용과는 거리가 먼, 더 정확히는 수능 시험에는 전혀 나오지 않을 내용으로 불필요한 시간 낭비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아이가 참다못해 용기 있게 대표로 말했을 뿐이지 아마도 수업을 듣는 아이들이 모두들 같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학습해야 할 양이 한참 남았는데 교과서에도 없는 쓸데없는(?) 소리를 떠들고 있으니 얼마나 초조했을 것인가? 나도 순간 멍하니 그 아이를 바라보다 수능 시험을 앞두고 있는 아이들의 초초한 심정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기에 멋쩍은 표정으로 ‘미안’하고 받으며 교과서 내용만을 계속 이어 나갔습니다. 그나마 수업을 들어주는 아이의 반응이라는 점에서도 고맙게 받아들이고 수업을 끝냅니다.
한편으로 서글픈 마음이 들어 수업을 끝내고 축 처져 자리에 앉아있는데 다행히 그 아이를 포함해 서너 명이 쫓아왔습니다. 그나마 아이들 중 누군가 그 아이의 지적이 지나치다는 조언을 했고, 그 조언이 타당했다고 생각했는지 무례해서 죄송하다는 사과를 하러 온 것입니다. 사과하러 온 아이가 그저 고맙기만 합니다. 무례함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는 정상적인 아이들 조차 초초함을 이기지 못하고 반사적으로 무례함을 저지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단지 지식 위주의 시험 대처 수업이 식견 확장과 지적 능력 신장을 위한 교사들의 정상적인 수업을 방해하고 옥죄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무례(?)를 저지른 그 아이가 잘못했다고 할 수 있는지, 아니면 교과서 내용 이외의 쓸데없는(?) 설명에 에너지를 쏟아버린 내가 잘못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30년 전 교사 임용고사에 합격하고 처음 모인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초청된 교장이 ‘수능과 상관없는 수업을 하길래 혼을 냈습니다.’라고 하길래 초임교사의 입장에서도 ‘머 저런 소리를 하는 교장을 초청 강사로 부르나.’하고 어이없어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교실에서는 아이들을 통해 그 교장의 질책을 실감합니다. 아이들이 교사 수업을 더 확실하게 감독합니다. 그 초초한 마음, 난들 모르겠습니까? 수능 1점 차로 등급이 나눠지고, 그 등급으로 인해 대학이, 아니 인생의 질이 결정되는 사회에 살고 있는데 누굴 탓하겠습니까?
수능을 위한 교과 수업은 지식 습득을 위해 가장 유리하고 쉬운 방법을 필요로 하며, 이는 결국 짧은 시간에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기를 요구하는 강의식 수업을 합리화하는 중요한 원인이 됩니다. 더 나아가 시험에 적응하는 훈련을 필요로 함으로써 문제풀이식 수업을 반복할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즉, 교사에 의하여 교과서 진도 빼기에 급급한 와중에 내용 요약 및 해설에 집중하고, 아이들은 반복학습을 통한 암기와 문제풀이식 수업에 쫓겨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아이들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겠죠. 시험에 나오는 내용들을 빨리 알아야 하고, 반복 암기해야 하고, 그다음 문제 풀이까지 연습해 봐야 하는데 담당교사가 수업 시간에 시험에 나오는 내용과는 상관없는 내용을 떠들고 있으니 속이 타들어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사유’가 없는 기계적 학습이 반복돼야 하는 현실에서 시험에 도움이 안 되는 내용은 들을 가치가 없어집니다. 지쳐서 자거나, 자신이 풀고 있던 문제집만 집중하는 아이들에게도 머라 할 수가 없습니다. 내 선택과목이 아닌 수업, 그리고 시험에 나오지 않을 내용은 배울 필요성 자체가 없는 내용이라는 인식이 이미 아이들 의식 속에 깊게, 강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선생님, 한문 샘 좀 어떻게 수업 안 하도록 해봐요!!’
한 무리의 아이들이 내가 있는 3학년부 교무실에 우르르 몰려왔습니다. 일종의 수능 탐구영역에서의 비선택 과목 수업입니다. 한문 수업은 3학년 아이들 입시나 수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수업인데, 한문 교사가 매시간을 꿋꿋이 정성스럽게 수업을 다 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부족한 주요 과목 성적에 쫓기는 아이들에게 고지식하게(?) 다른 교과 공부를 금지하고 한문 수업을 열심히 들으라고 강요하고 있다고 아이들이 참다못해 쫓아왔습니다. 교사가 수업을 제대로 하려고 해도 문제가 되는 판국입니다.
진학과 관계없는 과목은 도외시되고 입시와 직결된 국, 영, 수, 사, 과 등 소위 중요과목 중심으로 정규 시간 외에 방과 후 학교라는 이름으로 보충수업까지, 그것도 모자라 야간 자기주도 학습까지 실시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어떤 아이들은 한문 수업 때문에 죽겠다고 야단이고, 문과 우수생들 일부는 특목고 아이들과 경쟁하려면 점수 따는데 유리하다고 한문 과목을 보충학습 신청하여 듣습니다. 참 웃픈 현실입니다. 아이들에게는 오직 입시에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가 유일한 기준입니다.
고3 교실을 제외한 내 수업은 수업 자체가 수행평가로서, 교과성적의 70%에 해당하는 큰 비중으로 진행합니다. 수업 시간이 허락하는 한 1차 발표 시도에서 만족할 만한 점수를 받지 못했으면 재시도를 원하는 아이들에게 3,4차 시도까지 허용합니다. 반복되는 수업과정에서 다른 친구들이 발표 한 자료들과 자신의 자료 및 발표와 비교하며 배우고, 교과 담당 교사의 지도가 쌓이면서 더 나은 발전을 보인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제 선정부터 자료 탐색 및 구성까지 일일이 지도를 해보지만 교사의 의도나 노력에 아이들이 비례하여 반응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국, 영, 수 주요 과목에 지친 아이들이 기회를 많이 준들 내가 하는 교과까지 열심히 해보려고 하는 아이들은 거의 드뭅니다. 거기에 교사들이 다 설명해 주는 강의식 수업방식에 익숙한 탓에 자기 주도적 수업형태는 담당교사의 지도를 받지만 모든 과정을 스스로 해나가야 한다는 것이 귀찮다는 것이죠. 하다못해 다양한 교수-학습 활동을 전개하고자 하는 교사의 수업에서도 이런 류의 학생들이 ‘발표하지 않겠다, 참여하지 않겠다.’ 하면 수업에 참여시킬 대책이 없습니다. 문제 풀이에 익숙해진 상위권 아이들 중에는 수행평가 70%의 점수를 포기하고 아예 발표조차 하지 않으려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도, 내신 성적을 안 받아도 수능으로 대학 가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중학교 수업과 고등학교 수업이 너무 달라요. 그래서 재미가 없어요.’
중학교에서 수업을 하다가 내가 있는 고등학교로 오게 된 교사의 말입니다. 중학교에서는 좀 더 수업이 자유롭고 경험적으로 할 수 있는데, 고등학교에 오니 교과서 위주로 가르쳐야 하는 현실에 적응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과학적 현상에 대한 미세한 현상들을 과학실에서 직접 실험하면서 경험할 수 있어야 하는데 고등학교에서는 진도에 쫓기다 보니 칠판이나 그림으로 간략하게 가르치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시험문제 출제하는 것도 교과서 범위 내에서 정확한 표현으로 객관식 문항들을 만들어내야 하니 까다로움을 넘어 답답하다는 토로입니다.
교사도 재미없고 힘들지만 입시 체제하에서의 아이들에게 가장 큰, 그리고 근본적인 문제는 입시에 맞혀 진도에 쫓기고 문제 풀이만을 요구하는 학교 시험, 수능 등으로 인해 ‘배움’ 자체에 대한 흥미를 잃어 장기적으로 배우는 즐거움을 앗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수능의 주요 교과들은 가뜩이나 학습량도 많은데 대부분 3학년 1학기까지 미리 당겨서 교과서 진도를 끝내고 문제 풀이로 들어가야 합니다. 지친 아이들을 채찍질하면서 몰아가는 꼴입니다.
결과적으로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들은 많은데 수업을 즐거워하는 아이들은 없습니다. 공부가 즐거워야 대학 가서,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공부하고 발전할 수 있는데 우리 아이들은 힘들지만 지금 당장만 버티면 된다는 희망으로 지친 몸을 끌고 다닙니다. 교사들도 흔히 농담 삼아 뱉어내는 ‘총량 불변의 법칙’, 즉 아무리 많은 업무를 요구해도 수업을 적당히 하든지 해서 그날의 에너지를 적절히 배분하며 쓴다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도 이미 평생 써야 할 학습 에너지를 중·고등학교 시절에 다 쓰고 진이 빠집니다. 대학 가서 제대로 공부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제도로 인하여 아이들은 점점 더 힘들어하고, 지쳐 떨어지고 대부분은 방치됩니다.
어느 방송에서 ‘잠자는 교실’이라는 제목으로 우리의 고등학교 교실 모습을 방송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근무했을 때보다 요새 아이들이 더욱 당당하게 잠자는 모습을 보입니다. 수업이 재미가 없어서, 내가 좋아하는 과목이 아니라, 공부가 의미가 없어서... 다양한 이유를 당당하게 댑니다. 이 중 가장 특이한 이유는 ‘자는 것도 전략이다.’라면서 잠을 청할 수업 시간을 미리 체크해 놓은 아이도 있었습니다. 입시 도움 여부에 근거한 과감하고, 당당하게 거부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인식하고 있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잠자는 아이들을 향한 교사의 고민도 진지하지만, 많은 교과서 양으로 인해 울며 겨자 먹기로 강의식 수업을 할 수밖에 없다는 교사의 안타까움도 이해됩니다. 모두 입시라는 틀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그래서 희생양이 되어버린 아이들과 교사들의 모습입니다. 결국 교수와 수업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게임까지 도입하여 학생 참여형 수업으로 고쳐보고자 합니다. 아이들이 그나마 참여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그 장면을 보면서도 바람직한 수업 모습이라고 판단되지만 현실적으로 ‘저런 수업이 계속적으로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하는 의문이 듭니다. 과연 그렇게 해서 교과서 양을 다 소화해 낼 수 있을 것이며, 수능 준비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의문입니다. 바람직한 수업이 어떤 것인지를 알면서도 입시를 전제로 한 고등학교에서의 어쩔 수 없는 고민입니다.
공교육의 내실화, 공염불에 불과합니다. 학교 수업을 재단하는 외적평가가 존재하는 한 학교교육은 무력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즉, 고등학교 수업에서 가장 큰 장애점은 교사의 능력 이외에 외적 평가인 수능이라는 변수입니다. 학종 위주의 전형방식이 있다고는 하지만 수능을 대비한 수업을 배제할 수 없기에 대부분의 교사들이 수능대비 수업을 기본 수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결국 수업혁신보다는 오로지 수능에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진 교과 중심의 지식 위주 수업에 매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수능 위주로 가고자 하는 학생들에게는 학교교육이, 교사들이 별 의미가 없는 존재로 인식도기도 합니다. 수능만을 위한 공부를 한다면 자기 학교의 교사들보다 훨씬 유능한 인터넷 강의를 선택하여 반복학습하면 되고, 거기에 맞춰 나 홀로 문제집 풀이만 열심히 반복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학교교육이나 교사들과 상관없이 ‘My way’를 외치며 학교생활을 하게 될 때 담임교사나 교과 교사의 지도 밖에 위치하게 되며, 교사의 간섭이나 지시에 불복종 및 저항을 마다하지 않고 교사들과 갈등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는 경우가 많아지게 됩니다. 이래저래 아이들이 교실 수업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Wag the dog’.
개의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는 미국 속담입니다. 한마디로 ‘주객전도’입니다. 마치 우리 교육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다양한 전형 방식 중 한 가지 대입 전형 방식에 불과한 문제풀이 수능 시험이 학교교육 전체를 뒤흔듭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말이 ‘수학 능력’이지 지식 활용 등의 고등사고능력 신장과는 전혀 무관한, 교육학을 전공한 내가 보기로는 현실감 1도 없는 ‘죽은 지식들’에 대한 단순 암기를 바탕으로 문제집들을 몇 권씩 풀어봐야지만이 겨우 대처해 낼 수 있는 시험일뿐입니다. 인간적 성장이라는 교육 본질적 가치에 대한 강조가 아니라 대학을 보내기 위한 문제풀이라는 부수적 가치에 더 몰입해야 합니다. 시험만을 대처하기 위한 수업이 교사들의 교과서 위주 강의식 수업을 완벽하게 합리화시키고, 수업혁신을 위한 노력들을 무력화시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수업과 멀어져 갑니다. 본말전도입니다. 입시라는 틀에 갇혀 있는 한 단기적인 수업 변화는 끌어낼 수 있겠지만, 지식 전달을 위한 수업의 틀은 절대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