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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적 교장에서 벗어나자 2

- 교장이 변하면 학교가 살아난다

by 무상

심리학에서 권위에 짓눌려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을 ‘캡티니티스(Captainitis)’ 현상이라 합니다. 권위 있는 사람이 하는 말을 논리적 사고 없이 맹신하는 현상입니다. 수많은 항공기 사고가 기장의 잘못된 판단에도 기장의 권위에 눌린 부기장들이 맞서 제대로 직언하지 못함으로써 발생한다는 분석에서 나온 개념입니다. 베이컨(F. Bacon)이 인간이 올바른 지식을 획득하기 위해서 버려야 한다고 한 어리석은 생각들 중 '극장의 우상', 즉 전문가나 권위적 위치에 있는 사람의 말을 무조건 믿고 따르는 어리석음과 같습니다. 결국 지배하고 군림하려고 하는 관리자들이 있기 때문에 복종해야 하는 교사들이 있다기보다는,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교사들의 속성이 있어 교장의 지배 욕구 충족이 가능한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교장이 교복 안 입은 아이들을 교문에서 돌려보내라는 지시에 교육적으로 부당함 여부를 고려하지 못하고, 단지 교장의 지시라는 이유로 교육적 고려 없이 아이들을 돌려보내는 교사들이 더 큰 문제입니다. 교장의 독불장군식 리더십으로 인하여 캡티니티스를 초래할 수도, 그리고 이러한 교장 밑에서 교사들이 보이는 절대 순응으로 인하여 비교육적 행위를 당연한 듯이 행하는 현상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장의 일방적이고 권위적인 학교 운영에는 교장의 군림을 당연한 듯이 받아주고 순응하는 교사들의 자세도 한몫합니다. ‘처지가 의식을 규정한다’라는 명제처럼 우리들은 제도 교육을 통하여 정해진 규칙을 잘 따르고, 통일된 표준 답안을 찾아내는 교육을 계속 받아왔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쉽게 규범에 구속되고, 정해진 체제에 무조건 순응하고자 하는 성향이 길러진 듯합니다. 또한 개혁과 생산성보다는 적절한 관리와 현행 유지를 강조하는 현행 교육제도 하에서는 학교는 위에서 지시하는 대로 잘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학교 내에서도 교장의 지시나 의도를 거스르지 않고, 개인적인 능력 발휘보다는 말 잘 들으면서 주어진 지시에 충실할 수 있는 교사를 더욱 필요로 합니다. 결국 교사는 수동적 입장으로 전락하게 되었고 그 결과 교육정책이나 교육 활동에 적극적,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행하고자 하는 의식이나 자세가 점차 약해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범생이 교사들에게는 그 성향이 너무 뚜렷합니다.


물론 제도적 모순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서울의 교사들보다는 특히 지방의 교사들이 지배하고 군림하려는 관리자들의 패권적, 제왕적 속성을 비난하면서도 순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승진뿐 아니라 지방간 전보에도 근무평정 점수가 결정적이기 때문에 서울과 달리 원하는 지방으로 이동하기 위해서 교사들은 근무평정권을 쥐고 있는 교감, 교장의 지시와 명령에 순종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초등학교는 더 심한가 봅니다. 1박 2일 연수를 다녀온 동료 교사가 연수 룸메이트였던 초등학교 교사 왈, 교장 결제하러 들어갔더니 결재받는 교사가 무릎 꿇고 서류를 살펴보는 교장을 기다리더라는 소리를 합니다. 그런 교사의 자세를 요구했거나, 그대로 두고 서류를 살펴보는 교장이 당연히 잘못된 것이지만, 그런 자세를 유지하는 교사도 문제입니다. 지방의 어느 초등학교에서는 교사들이 매주 월요일 1교시 시작 전 교장실을 찾아 한 사람씩 차례로 교장에게 문안 인사를 올린 뒤 업무를 시작했다는 기사도 있습니다. 교사들은 스스로 ‘군림’을 당하는 것이 학교의 당연한 분위기로 인식되고 있는 듯합니다. 비교육적, 지시의 부당함에 상관없이 마비된 감각으로 스스로 그 통제를 익숙하게 받아들이거나 순응하는 자세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교사들입니다. 교장이 제왕적 지위임을 교사들 스스로 인정하는 현상으로서, 흔히 말하는, ‘관성의 족쇄’에 물들어 있음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서울에서 혁신학교에 근무할 때 부장과 부원들 간 발생할 수 있는 자그마한 위화감이라도 없애기 위해 교무실의 관리형 자리 배치를 모두 일자형으로 배치하자는 의견으로 일치하여 실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까짓 자리 배치가 먼 의미가 있겠냐 하고 아주 사소한 일인 듯 보일 수 있지만 교사들 간 관료적이고 위계적 구조에 대한 인식이 배어있는 상황에서는 '모두가 평등한 교육 동반자'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아주 큰 획을 긋는 작은 변화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혁신학교 창립멤버가 떠나간 후에는 기존의 관리 형태의 자리 배치로 원위치되었다 합니다. 작은 시도를 통한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인정하려 하지 않는 교사들의 의식 수준일 것입니다.




‘사전 신청하지 않은 초과근무 신청, 그리고 오전 7시 10분 이전 시간은 초과근무 명령을 한 바가 없으므로 결재할 수 없습니다.’


'초과근무 신청 관련'하여 사후 신청은 모두 반려됨을 안내해 드렸습니다.

초과 근무를 하시는데 행정실에 알아보니 수당 지급이 안 되는 일이 빈번하여 안내드린 내용인데 마음이 상하신 선생님들이 많으실 줄 압니다.

행정부에서 정한 규정이므로 저희가 자의로 할 수 있는 여지가 적어졌습니다.

최대한 사전 신청을 하여 수당을 꼭 좀 챙겨주시길 바랍니다.'


두 메시지는 모두 초과 근무 관련하여 나랑 같이 근무하다 떠났던 교장들이 교사들에게 전달한 메시지입니다. 교사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만 보아도 교장의 권위적 여부를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메시지가 교사들에게 설득적으로 다가올까요? 교사들이, 그리고 관리자들이 내가 미국 학교를 방문했을 때 직접 나와 신분 확인을 하는 교장이나, 학교 공식행사에 교장이 먼저 나서서 안내하고, 마이크를 설치하는 등의 모습을 보았다면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요? 영국에서 아이를 교육한 어느 학부모는 교장이 매일 방과 후에 아이들을 지도하고 뒷정리까지 모두 혼자 하는 모습, 체육대회를 할 때 교장이 육상 출발선에서 출발 신호를 하는 모습 등을 보고 놀랐다는 기사 내용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도 아주 드물지만 변화의 모습을 보이곤 있습니다. 최근 기사에서 교장실을 아이들의 보드게임 방으로 같이 활용하는 교장의 이야기가 눈에 들어옵니다. 도의원 하고 이야기 중인데도 아이들이 교장실에 스스럼없이 들어와 보드게임을 하고, 교장은 손님 왔다고 말릴 수도 있으련만 전혀 방해하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아이들과도 일체화되어 있는 교장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교장이라면 교사들에게도 절대 권위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교사들이 교장들에게 바라는 것은 별게 아닙니다. 단지 ‘교장’이라는 권위의식을 버리고 하나의 목표를 향한 공동체 구성원이라는 인식하에 서로 배려하고 존중받는 분위기를 기본적으로 형성해 달라는 것입니다. 교장은 단지 역할만 다른 사람이라는 인식, 교장이나 교사들 모두 다 수평적인 관계이고, 각자의 일들이 따로 있다는 인식, 즉 교육 동반자로서의 인식이 필요합니다. 교육 동반자로서 최소한의 존중과 배려만으로도 교사들은 힘이 납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더 열심히 가르치고 지도하려고 할 것입니다.


또한, 지금과 같이 위만 바라보는 위계적 구조를 강조하는 승진제도 하에서는 교장이나 교사들의 인식 변화를 기대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누이 강조하지만 승진제도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합니다. 승진하는 과정이 정당해야지만이 다른 교사들에게 미안함과 함께 교사들과의 동참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단위 학교 자체적으로 엄격한 심사를 통해 교육 전문가를 초빙하거나, 학교 내에서 교사들 간 존경받거나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을 교장으로 추대하고, 일정 기간 근무하다 다시 평교사로 내려오는 선순환 과정을 유도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합니다. 이런 제도 하에서는 상급기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고, 당사자도 다시 평교사로 일할 수밖에 없는 실정인지라 교사들을 지배하려는 권위주의 인식보다는 동료 교사들과 이해도를 높이고 배려하고, 동참하고자 하는 자세를 당연히 가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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