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사 전문성
저는 오늘 아침 가슴이 뻥 뚫렸습니다.
노랫말처럼, 총 맞은 것처럼~ 구멍 난 가슴~ 같았습니다.
왜 그랬냐고요? 교원평가 글을 보았기 때문이에요.
‘활동 중심의 수업도 너무 좋지만 강의식 수업도 조금 더 비중 있게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새겨야지요.
‘열정이 너무 과도하시다.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뭐 이것도 그냥 넘길 만합니다.
‘수행평가 좀 우리 수준에 맞는 거 내주세요. 여긴 특목고가 아니에요. 무슨 학교 문제를 해결해요. 그건 선생님들이나 하세요. 아무래도 사회 수행평가 비중이 높은데, 해결하고 발표에 보고서까지 써오라 하세요. 진짜 이런 거 싫습니다.‘
뭐 이건 귀엽더라고요. 얼마나 힘들었으면~ ㅎㅎ
‘경행이라는 사이비를 끌고 와 자신의 수업 시간에도 홍보를 하는 모습이 매우 보기 안 좋고 사이비에 빠진 선생이 우리를 가르친다는 것이 매우 이해할 수가 없다.’
우와, 저 졸지에 사이비 선생이 되고 말았네요. 올해 2학기부터 브레인 액티비티를 하고 있는데.. 아마 안 하는 아이가.. 잘 모르고 이런 얘기를 한 것 같아요. 저 비과학을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이런 의견은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예의도 바르고, 할 말도 하고~.
‘쌤 정말 좋습니다. 그런데 제가 바라는 점은 일단 교과 내용에 더 충실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사회라는 과목이 비중이 있다 보니 강의식 수업이라도 교과서 위주로 더 깊이 있는 수업을 듣고 싶습니다. 경행 파이팅!
샘들은 어떠신가요?
이00샘이나 김00샘은 ‘아예 안 본다’고 하시고요.
양00샘은 ‘보고서 흘려 넘긴다’고 하시고요.
송00샘은 ‘한 번 보고 나면 2주 동안 반성 & 멘붕’이었는데 ‘올해는 안 볼 예정’이라고 합니다.
샘은 어떤 타입이세요?
오늘 아침 수업 들어가서.. 아이들한테 이런 이야기 있었다고 그냥 나누었어요.
그러고 나니까.. 오히려 맘이 더 편해지네요.
이제 그냥 지나가질 것 같아요. 더 생각 안 날 것 같고요.
혼자 앓는 것보단 터놓는 게 더 나은가 봐요. 제 경우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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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교사들 간에 나름 최고의 교사라고 인정받는 교사가 어느 날 아침 교사에 대한 학생평가란에서 아이들이 쓴 글들을 모아 소감을 달고, 메신저로 전교사에게 보내온 내용입니다. 아이들에게 인정받는 교사답게 대부분의 교사가 아예 보질 않거나, 말 그대로 흘려 보는 것에 불과한 아이들 평가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고, 이에 대하여 아이들과 다시 얘기를 시도하며 피드백을 제공하고, 대부분의 교사들이 회피하는 학생들의 평가 내용을 과감히 전교사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의미 있는 시도입니다. 모든 교사들에게 인정받는 최고의 교사가 받은 평가 내용이 이 정도니 다른 교사들이 받았을 내용들은 과연 어떠했을까 하는 끔찍한 생각이 듭니다. 동시에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교사들이 대충 보고 그냥 넘겨버리는 내용을 꼼꼼히 챙겨봄으로써 학생 평가의 의미를 교사들에게 깨우쳐 주는 의미 있는 메시지입니다.
내가 더 중요시하는 하는 점은 평가를 받은 후 아이들에 대한 이 교사의 자세입니다. 입시 덕분에(?) 교사가 아무리 활동중심, 문제해결 중심 등의 바람직한 수업 모형을 실시하려고 해도 아이들은 그저 시험을 위한 지식 중심 수업을 바라고 있음을 언급했듯이 여기에서도 동일한 바람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의견이라고 무시하지 않고, 이를 다시 점검하고 자신의 수업에 반영하고자 하는 진정한 교사다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메시지를 보며 교사 평가의 핵심이 수업에서의 전문성 향상이라고 본다면, 직접적으로 수업 장면에서 대면하는 아이들의 평가, 또는 불만을 받아보는 학생 평가가 그나마 현행 교사 평가 제도 중 유일하게 유의미하고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아직 판단력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학생들의 평가에 대한 불신, 우려가 존재할 수는 있습니다. 학생이 교사를 평가한다는 발상 자체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교사들도 많고, 학생이 교사를 평가할 수 있느냐는 판단 능력에 대한 의구심, 그리고 최근에는 온라인 교사 평가란에 교사에 대한 성희롱 등 부작용도 없지 않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입시 위주의 학교교육에서 입시 위주의 교육을 하는 교사나 학생들의 인기에 영합하는 교사가 높은 평가를 받게 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업무 위주와 개인적이고 편파적인 관리자의 왜곡된 평가보다는 교사의 수업 활동에 대한 아이들로부터 직접적인 평가 내용은 교사 입장에서 잘 거르고 소화해 낸다면 나름 나 자신의 수업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훨씬 효과적일 것입니다. 더 나아가 교사들이 지금과 같이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교과협의록을 기록하는 교과협의회에서 탈피하여, 아이들 평가 내용에 대한 동일 교과군 교사들 간 진지한 공유와 협의회를 갖는다면 학생 평가가 가질 수 있는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상당히 유용한 접근이 될 것입니다.
핀란드에서도 교사들이 연수받은 후 선생님의 수업 방식이 만족스럽게 바뀌었는지에 대한 학생들의 평가를 받도록 되어 있으며, 학생들의 평가는 교사 연수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다시 활용된다고 언급했습니다. 중국에서도 학생 평가가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서울시 교육청의 프로젝트로 중국 학교를 방문했을 때에도 수업 시간을 통한 학생의 교사 평가가 교사 선발부터 교사의 성과급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합니다. 교사 선발도 교육청에 허가를 구한 후 학교 자체적으로 선발하며, 1년 근무 후 학생들, 동료 교사들 평가를 거쳐 최종 채용됩니다. 이 평가에서 학생 평가가 무려 60 % 비중을 차지합니다. 미국에 있을 때 딸아이의 학교에서 ‘Parent’s night’라는 공개수업 행사를 참관한 적이 있습니다. 방과 후 학부모들을 초청해서 각 교사들이 자신의 수업에 대한 계획, 학습 주안점, 평가 등을 직접 부모들에게 설명하고 수업방법 및 평가 방식에 대하여 의견 교환을 하는 학년초 정기적인 행사였습니다. 이날의 수업시연 및 학부모들과의 토론은 일 년 동안 진행될 교사의 수업을 미리 관찰하고 평가하기에 매우 중요하고 유의미한 실질적인 행사입니다. 교사의 수업 및 평가 계획에 대한 학부모들의 진지한 토론, 논쟁을 보니 학부모의 평가도 이런 방식이라면 효과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우리의 경우 현행 근평과 같은 학교장 중심의 편파적 평가에 대해 반발하는 교사들을 고려한다면 아이들과 제대로 된 학부모 평가가 현행 교사 평가 제도 중 유일하게, 그리고 가장 교사에게 유의미하고, 약이 될 수 있는 제도일 것입니다.
우리 교사들은 일 년에 한 번 온라인으로 동료 교사의 평가, 그리고 학생 및 학부모의 평가를 받습니다. 앞에서 매년 관리자가 주도하는 왜곡된 평가가 교사들에게 어떤 해악을 가져오는지를 충분히 언급했습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교사를 공정하게 평가한다고 도입된 방식이 교원 다면 평가입니다. 하지만 역시나 교사의 전문성 신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유익한 피드백은 거의 없고, 무의미한 서류 작업들만 추가되었을 뿐입니다. 그중 동료 교사에 의한 다면 평가는 겨우 얼굴만 알고 지내는, 또는 대화 한 번 안 해본 교사들 간에 강요되는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평가이기에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동료 교사를 포함한 다면 평가는 일종의 구색 맞추기입니다. 아마 기존의 관리자들이 주도하던 근무평정이 민망했던지 동료 교사들의 평가를 포함시켜 허울뿐인 근평의 정당성을 근근이 마련, 비판을 무마하고 기존의 허울 좋은 근무평정을 유지하겠다는 것입니다.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교장을 그만큼 신뢰하지 못하고 있음을 스스로 반증하는 것입니다.
온라인상의 교사 평가를 앞두고 한 교사가 자신의 수업과 관련하여 나이스(온라인 교육행정 시스템)에 올린 자기소개 글은 ‘본교는...’부터 시작하여 최고의 명문고를 소개하는 것 같은 내용들로 가득 찬 3쪽 이상 되는 소개문을 올려놓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참 잘 썼다.’라는 생각보다 ‘의미 없는 제도로 인하여 긴 글을 쓰느라고 참 고생 많이 했겠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는 게 서글픕니다. 관리자 누군가 지시를 내렸으니 담당교사가 거부하지 못하고 담임으로서 그 바쁜 와중에도 장시간 할애하여 썼을 것입니다. 의례적인 서류 작업에 또다시 교사의 에너지가 낭비됩니다.
교사들도 관리자의 평가나 동료 교사의 평가 결과에 대하여 궁금해하지도 않습니다. 교사 평가의 근본 목적인 자신의 수업을 되돌아보게 하는, 또는 교사의 전문성을 신장하기 위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결국 학교에, 그리고 교사들에게 또 하나의 무의미하고 번거로운 업무만 추가된 셈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형식적이다 못해 거짓 구색을 맞추기 위한 제도들에 교사들은 야단을 떨어야 합니다.
우리 교사들도 잡무로부터 해방해 주고, 수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라면, 그리고 수업역량과 학생지도 능력 등 본업에 충실한 교사 평가라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교원평가 제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업만을 열심히 하면 되는 선진국의 교사들과는 달리 우리 학교에서는 수업보다는 행정업무의 능숙함과 관리적 기능을 더 중시하고 있기에 교사 평가 자체가 난센스입니다. 정작 교사들의 주요 능력이어야 할 수업역량과 학생지도 능력, 아이들과의 상호작용 등에 대한 평가는 아예 접근조차 하지 못하는 교사 평가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의 경우 현재와 같이 교사에 대한 근무 평정 권한이 학교장에게 집중되어 있는 구조 속에서는 교장의 권위와 권한을 거스르면 직접적으로 교사의 근무 점수와 인사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있습니다. 교육청은 교장을 평가합니다. 먹이 사슬과 같은 관계입니다. 어디에서든지 자율이나 책임이 자리 잡을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니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학교장의 성희롱 사실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제보한 모 중학교 교사를 교육청이 ‘공무원의 품위손상’ 등을 이유로 경고 조치하고, 이로 인한 강제전보와 승급 등의 인사상 불이익 등을 통보할 수 있는 상급기관, 또는 상급자의 횡포가 가능한 것입니다. 과연 이런 억지스러운 제도 속에서 교사에 대한 적절하고 공정한 평가가 가능할까요? 현재의 교사 평가, 승진 체제하에서, 그리고 전문가가 부재한 학교 현장에서는 관료주의적이고 실적 위주의 전시행정적 교육 활동, 관리적이고 순종적인 교사 자세만을 길러낼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라도 지금의 교원평가가 교원의 능력 개발에 정말 기여했는지, 학교 교육력 제고에 기여했는지를 제대로 고려해 보아야 합니다. 당연히 교원평가의 핵심은 교사의 수업역량과 학생지도 능력 등 전문성 향상에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교사 제도에는 이러한 핵심 역량을 평가하는 질적 접근 장치가 전무합니다. 오히려 교사의 결제기안이 몇 회인가와 같은 부수적이거나 부질없는 평가준거를 적용하여 정확하고 공정한 평가를 한답시고 교감이 전체교사들 한 명 한 명의 기안 횟수를 일일이 체크하고 있는 웃픈 장면을 연출합니다. 애초에 정량적 평가가 불가능한 영역에 정량적 잣대를 들이대는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교원평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제대로 된 정당한 평가 시스템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교사들을 둘러싼 지금의 모든 제도, 장치들을 다 뜯어고쳐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의 실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의 평가는 그나마 일종의 실질적 피드백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특히 교사의 수업역량과 학생지도 능력 등을 직접적으로 대면하고 있는 학생들의 평가 및 피드백은 적실하고 가능한 대안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