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댈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
세상에는 수 많은 종교가 존재한다.
기독교, 가톨릭, 불교, 이슬람, 그 외 가지를 치고 파생된 수 많은 종교들.
혹자는 한국이 종교의 다양성이 보여지는 나라라고 한다.
세계에서 손 꼽히는 기독교 신자를 가지고 있으며, 유래 없는 가톨릭 역사를 가지고 있다. 긴 역사를 딛고 일어선 불교가 있고 세월을 거슬러 들어온 이민자들에 의해 다양한 종교가 커지고 있지 않는가.
프란체스코 교황의 선종 뉴스가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것 또한 그 이유일 것이다.
염세적으로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 종교 지도자의 선종이라는 것은 남 일로 느껴질 수 있으나, 종교인을 떠나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한 의인으로 생각한다면 종교 지도자만큼 사회와 인류에 헌신한 사람이 없으리라.
나는 뼛 속 까지 무교다. 종교의 특정 부분은 좋아하지만 삶에 있어서 내가 추구하고 이뤄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기에 어떠한 종교의 교리나 가르침이 나의 인생에 큰 영향력을 끼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살아오면서, 그리고 사회의 여러 사람을 만나오면서 종교라는 것이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것 쯤은 체감하면서 커왔다. 예컨데 큰 고통을 겪은 사람이 종교에 귀의함으로서 얻는 위안이라던가, 종교 지도자가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를 통해 전쟁, 사회 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는 것 등이다.
내가 겪은 첫 종교는 기독교였다. 종교인의 대부분이 기독교인 한국에서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릴 적 인형이나 간식, 체험학습 등을 제공하는 교회는 일종의 공공복지기관이나 다름없었다. 집이 어려워서, 가정이 무관심해서 남들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을 얻지 못하는 어린이들에게 일종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교회였다. 결국에는 포교를 목적으로 한 활동이었겠지만, 친구의 소개를 받고 따라간 활동이나 이모 손을 잡고 하게 된 어린이 성가대 경험은 돌이켜보면 꽤나 값진 경험이었을지도 모른다.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유튜브가 하나의 교과서가 되었다. 사제 서품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나, 이역만리 해외로 넘어 와 평생을 타지에서 보낸 외국인 신부의 이야기를 심심치않게 볼 수 있었다. 알고리즘으로 우연치 않게 접한 봉쇄 수도원의 이야기는 일종의 충격이었다. 어떤 생각과 가르침, 깨달음을 얻었기에 종교에 심취하고 맹신하며 믿음을 이어갈 수 있는가? 누군가는 그 것이 의미 없는 일이라고 얘기하겠지만, 나는 달랐다. 내가 무교임에도 하나의 가치를 위해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다웠기에.
성인이 되어서는 신자가 아님에도 종종 절에 방문했다. 외부인도 쉽게 출입이 가능하며 종교시설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좋았다. 향의 냄새를 맡고, 역사가 담긴 소박한 절의 구조를 돌아보는 것이 좋았다. 어딘가에 기부되는 시주를 하기 위해 쌀이나 초를 사서 올리는 것도 싫지 않았다. 절을 올리는 방법을 자세히 알지는 못했지만 어설프게라도 부처님 상 앞에서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이 좋았다.
"신자가 아니더라도, 기대고 갈 수 있다"
라고 이야기 하는 것만 같았다.
전 세계 사람들이 모두 가톨릭을 믿는 것이 아님에도 교황의 선종 뉴스가 속보로 뜨는 것은, 어쩌면 종교라는 것이 믿음을 넘어서 지구촌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메시지를 던지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전쟁을 만류하고 화합을 강조하고,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계속 한다는 것은 종교 지도자로서 해야 할 사명이 아니었을까.
프란체스코 교황의 기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말은 '진정한 성인', '가장 낮춘 자'였다,. 가톨릭의 전통적인 관념에 맞서 동성애, 난민, 낙태 등에 대한 이슈에도 진보적인 성향을 보였고 교황에 선출된 이후에도 평신부들과 같은 숙소에 머물렀다. 해외 의전을 갈 때에도 고급 차량이 아닌 일반 차를 타고 "고통 앞에는 중립이 없다"라며 세월호 뱃지를 차고 방한하지 않았던가.
존경받는 지도자라는 것은 무엇인가. 단순히 한 나라, 사회를 잘 살게 만드는 것 만은 아닐 것이다. 독재를 꿈 꿨던 박정희가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뤘음에도 죽어서까지 갑론을박에 오르고 민주주의를 해친 인물 중의 하나로 손 꼽히는 것은 성과를 덮을 정도로 큰 과오가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가장 주요한 가치를 훼손하려 했기에 어떠한 성과를 이룩했다 할지라도 끝 없이 비판하는 사람이 나오는 것이겠지.
이 쯤에서 인간이 어떠한 가치를 가지고 목표를 이뤄나갈 것인가는 명확해진다. 인간과 사회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모두가 평등하게, 노력한 만큼, 차별 없이, 관대와 사랑으로 사회를 이뤄 나가는 것. 경제든 사회 질서든 이 것을 무시하고 이뤄낸 것은 결코 찬사받지 못한다. 결국에 좋은 세상은 돈이나 서열 등으로 나눠지는 것이 아니기에. 인간이 사회를 이루는 이유는 더불어 살아가야 올바른 정신을 지속해서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니까.
그런 이유에서 종교는 앞으로도 이렇게 나아가야만 한다. 고리타분한 교리에 갇혀 사회의 흐름을 역행하지 말 것, 결국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것, 더 나아가 타 종교, 타 국가도 포용하여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 다는 것을 유념하고 존경받는 종교가 되기 위해서, 사랑 받는 종교가 되기 위해서 부던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