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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철수 Feb 03. 2024

내 전세보증금을 돌려줘-1

이 이야기가 오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음 고생하는 정원이와 몬난이, 그리고 나를 위해.          



<2024년 1월 5일의 기록>     


2018년, 결혼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결혼을 했다. 어떻게든 둘이 같이 살고 싶어 10평도 되지 않는 좁은 투룸에서 신혼을 보냈고 2년 전세 만기가 되어 20년 1월 이 곳으로 이사했다.     

여기는 20평대이지만 이전 집에 비하면 너무 넓어서 처음에는 무서울 정도였다. 우리는 이 빌라의 이름을 줄여 이초빌이라고 불렀다. 이초빌은 어느새 우리의 아늑한 보금자리가 되었다. 여유로운 화장실, 넓은 거실, 재택근무가 가능한 서재. 심지어 비 오는 날에 빗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도 좋았다. 이전에는 어떻게 그렇게 좁은 집에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우리는 이초빌에 익숙해졌다.

2년이라는 시간은 금방 지나게 되었고 우리는 2년 더 계약을 연장했다.     


그리고 2024년 1월.     

드디어 우리는 내 집 마련을 하기 위해 긴 계획을 세워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지난 23년 10월 임대인에게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카톡을 보냈고 회신을 받았다.

그리고 11월 아파트 계약을 했고 1월 19일을 잔금일로 했다.

임대인에게는 16일에 이사를 간다고 말했고 보증금을 부탁했다. 물론 회신도 받았다.

그 사이 우리는 인테리어 업체와 계약을 하고, 인테리어 기간 동안 지낼 작은 원룸을 단기로 계약했다.

순조로웠다.     


이대로라면 11일 단기 원룸으로 들어가고, 16일에 보관이사를 하고 보증금을 받은 다음 19일에 잔금을 지불하고 인테리어에 들어가면 되는 일이었다. 오래 계획한 만큼 자금도 충분했다.     

1월 3일 수요일 저녁, 몬난이 산책을 마치고 들어오는 길에 우체통에 꽂힌 우편물을 발견했다. <임대인이 임차인에게>라는 우편물이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A4 두 장에 걸쳐 쓰여 있는 구구절절한 내용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러했다.


“사업을 하다가 문제가 생겨 보증금 반환이 어려울 것 같다.”     


생각해보면 이전부터 징조가 있었다.     

2021년 어느 날, 이초빌 건물 전체가 임대인의 것이었는데 내가 살고 있는 601호를 제외하고 모든 호실을 매각했다. 지난 11월 이사 일정을 협의하는 과정에서도 임대인은 몸이 좋지 않다면 내 연락을 계속 피했고 16일이라는 날짜도 겨우 받아 내었다. 그리고 당시 이초빌을 소개해준 중개인도 임대인이 사기를 당해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아 충격으로 병원을 다닌다고 말했다. 이후로도 집을 내 놓았지만 아무도 집을 보러오지 않았다. 참고로 최근에 알게 되었지만 그 중개인은 공인중개사가 아닌 중개보조인이었다. 당시에는 자신을 소장이라고 소개했다.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임대인에게 바로 연락을 해보았지만 그래 역시, 받지 않았다. 그날 저녁 이후 우리 가족은 분개할 틈도 없었다. 당장 무엇부터 해야 할지 누구에게 물어봐야할지 사방에 짙은 안개가 낀 것처럼 막막했다. 집주인은 이후로도 계속 연락을 받지 않거나 통화 중이거나 아예 폰을 꺼 놓았다. 문자를 보내도 답이 없었고 중개인에게 연락해도 임대인과 직접 연락하라면 발을 뺐다.     


상황은 최악이었다.

근저당 선순위 설정이 은행으로 되어있었고 내가 후순위였다.

근저당 금액을 빼면 나에게 떨어질 돈은 거의 없는 수준이었고,

전세 보증 보험도 들어놓지 않았다.     

도움을 구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상황을 알렸다.

다들 왜 보증보험을 들지 않았냐고 물었다.

난 몰랐지. 이런 일이 나에게 생길 줄은. 정말 몰랐지.     


시비를 가릴 때가 아니다. 그렇다고 죽을 수는 없잖아. 해결할 방법이 필요했다.     

원래라면 다음날 대출신청으로 은행방문이 필요했기 때문에 나와 정원이 모두 연차 신청을 해두었다. 이제 어쩌지.     


그래도 최최악은 아니다.     

고맙게도? 임대인이 16일 이전에 미리 알려줘서 대비를 할 수 있었다.

부산 시청에 가까이 거주하고 있어서 법률자문센터와 인접해 있다.

시청에는 부산 전세피해 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보증금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이사를 가지 않고 이초빌에 계속 머물 수도 있지만 그건 일을 더 키우는 쪽이었다. 우리의 경우에는 이미 계약한 아파트 매매와 인테리어 계약까지 있었기 때문에 그 계약 파기로 인한 비용 지불이 더 컸다. 그리고 이초빌에 더 있기도 싫고.     


보증금 반환이 당장 어려우니 대출을 내어서 잔금을 처리하고 이후 소송을 통해 보증금을 반환받는 방법으로 계획을 세웠다. 금리는 높았지만 어쩔 수 없이 신용대출을 내었다. 보관 이사 때문에 계약했던 원룸은 계약을 파기했다. 보증금은 회수했지만 미리 보내둔 한 달 분의 월세는 돌려받지 못했다. 아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 전문가를 통한 상담이 절실했다. 물론 인터넷 블로그도 큰 도움이 되었다.     


연차를 낸 4일 우리는 전세피해 지원센터를 먼저 방문했다. 인터넷에 나와 있는 번호로 여러 번 연락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시청의 ‘바로콜센터’로 연락해보니 다른 번호를 알려줬고 그 번호로 겨우 연결되었다.

예약은 따로 필요 없고, 전세계약서가 필요했다. 


지하철과 연결되는 1층 대강당, 저 구석으로 쭉 들어가면 지원 센터가 있었다.

문을 여니 시끌벅적했다.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

부스별로 법무사, 공인중개사, 심리치료사 등이 앉아 있었다. 말이 좋아 부스지 사실 그냥 좁은 책상에 낮은 파티션을 세워두고 있어서 옆 사람 이야기가 다 들렸다.

내가 이야기할 때 여러 전문가가 같이 들을 수 있어서 동네 시장마냥 한마디 씩 말을 보태기도 했다. 좋은 점이라면 좋은 점이었다.     

먼저 법무사를 찾았다. 계약서와 임대인에게 받은 우편물, 그리고 우리의 사정을 이야기했지만 반만 듣고 이야기해줬다. 그래서 나에게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조언들도 있었다. 짧은 시간에 장황한 설명을 듣다보니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어떤 단계로 조치를 해야 할지 가닥을 잡는 것에는 도움이 되었다. 또 공인중개사가 따로 있기 때문에 법률자문, 부동산 공인중개 쪽 자문을 따로 받을 수 있는 것도 좋았다.     


다음날 거제역 근처 대한법률구조공단이라는 곳에서도 무료로 법률 자문을 받았다.

예약하지 않으면 5분 정도 짧은 내용만 자문할 수 있고 예약하면 20분 동안 상담 받을 수 있었다. 당일 예약은 되지 않았다.

예약한 시간이 되어서 안쪽으로 들어가니 또 책상과 파티션. 그래도 여기는 두 명이 앉을 수 있었다. 시청지원센터는 한사람만 앉을 수 있어서 한명은 뒤에 서있어야 했다.     

과장이라는 직급의 사람이었는데 뭐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다. 우리의 사정을 미리 전달했지만 읽어보지는 않았던 것 같고. 묻는 말에 대답을 해주기는 했지만 역시나 필요 없는 말이 길었다. 20분 안에 다 물어봐야한다는 압박 때문에 계속해서 시계를 보게 되었다. 20분이 되자 칼 같이 시간이 다 되었다고 알려줬다. 하나 같이 친절이라고는 없었다. 하루 종일 좁은 책상에 앉아서 대면 상담을 하려면 그래, 친절할 수가 없겠지. 아쉬운 건 나니까 시발.     


그래도 여러 군데 도움을 받는 것을 추천한다. HUG에도 무료 상담이 가능하지만 거기서는 계약 만료일이 지나야하고, 보증금 반환이 되지 않았다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우리처럼 아직 계약 기간은 남았지만 보증금을 못 받을 것? 같은 상황에서는 상담이 안 된다.     


이후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부동산 전문 변호사에게 또 상담을 받았다.

메일로 먼저 자료 보내고 내용을 설명했다. 이후 문자를 보내면 연락이 와서 통화로 상담을 해줬다.

전화 상담 비용은 무료였고 전에 받았던 대면 상담보다 더 적극적으로 상담해주셨다. 물론 이분은 나중에 선임하게 되면 또 내가 고객이 되는 거니까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총 세 번의 상담과 인터넷의 다양한 사례를 종합해서 내용을 정리해보면     

1) 임대인이 연락을 두절하고 보증금 반환이 어려울 것 같은 상황이니 미리 내용증명을 보내라. 내용증명은 인터넷으로도 쉽게 보낼 수 있다.     

2) 보증금 반환은 소송이 유일한 길이다. 소송은 계약 만료 전부터 준비하는 것이 좋다.     

3) 계약이 만료되고 보증금 반환이 되지 않으면 짐을 빼지 말고 임차권 등기 명령을 신청해라. 역시 법원이나 온라인으로 직접할 수 있다. 임차권등기명령이 신청되고 승인까지 2주 이상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 동안 다른 곳으로 전입신고나 짐을 먼저 빼서는 안 된다.     

4) 임차권 등기 명령이 설정되면 이후에 모든 짐을 빼고 집을 비워라. 도어락 비번도 임대인에게 공유해라. 그때부터 보증금에 대한 12% 이자를 소송으로 받아낼 수 있다.     

5) 전세보증금을 계획대로 반환 받지 못해 생기는 피해들-신용대출, 단기 원룸 월세 등-은 소송을 통해도 받기 어렵다. 대부분은 12% 이자로 피해보상이 된다.     

현재로는 이 정도이다.     

당연히 받아야할 내 피 같은 돈을 못 받는 상황이라 어처구니가 없지만

무엇을 준비해야할지 막막한 나와 같은 피해자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드리고 싶다.

앞으로도 언제 끝이 날지 모르는 진행과정을 계속 공유하겠다.          



<2024년 1월 14일의 기록>     


계약 만료일이 이틀 남았다.

물론 그동안 임대인에게 수차례 연락했지만 카톡, 문자, 전화 모두 되지 않았다.

소송을 빨리 준비하기 위해 변호사를 먼저 선임했다. 선임비용과 초기 소송비용을 합하면 대략 500만원이 넘을 것 같다. 이렇게라도 해서 받을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지난 금요일 인터넷으로 부산 전세 사기 기사를 접했다.

우리 이야기였다.

우리와 같은 우편물을 받은 다른 세입자들이 신고를 해서 일이 알려졌다.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피해자가 많을 줄이야. 소송을 해도, 경매를 해도, 추심을 해도 우리에게 보증금이 돌아올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그냥 포기할 수는 없었다. 결과가 어떻게 되던, 보증금뿐 아니라 소송비까지 다 날린다고 해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혹시라도 16일에 보증금을 돌려줄지도 모른다는 헛된 희망을 이제는 완전히 버릴 수 있었다. 이때까지 임대인에게 연락했을 때 통화 중이었던 것은 여러 임차인들이 한꺼번에 전화를 해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출국금지명령을 내렸다고는 하지만, 이미 떠나고 없는 것은 아닐까. 콩밥을 먹여야하나 일을 시켜서 빨리 빚을 갚게 해야 하나. 괜찮아진 것 같았는데 문득 긴 한숨이 나왔다.     


새벽까지 잠이 오지 않아 블로그를 더 찾아보니 HUG에서 만든 안심전세라는 어플이 있었다. 나쁜 임대인들의 목록도 볼 수 있고, 건물 시세와 보증금 및 근저당을 확인해서 안전한 곳인지도 확인해볼 수 있었다. 하루에 한번 법률자문도 무료로 가능하다.     

돌아오는 평일에 할 일을 정리했다.     

지원센터도 다시 가보고, 경찰서도 가보고.

다음 주 평일은 아주 바쁠 것 같다.


자책하지 말자. 자책해도 좋아질 것이 없다. 원망보다는 해결을 위해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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