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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철수 Jul 04. 2024

102호에서 이별하기

어제는 힘이 들었다.

별것도 아닌데 괜히 힘이 들었다.

무엇 때문에 힘이 들었다고 딱 말하기 어려웠다. 당신 때문인지 나 때문인지.


마음이 너무 소란스러워서 얼른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이리저리 흩뿌려진 마음을 정리하는 것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필요한 감정과 생각을 남겨두고 그렇지 못한 것들은 최대한 멀리 보낸다. 보낸 줄 알았는데 어느새 곁으로 다가오는 것들과 다시 이별한다.

그리고 괜찮다는 자기 위로도 잊지 않는다. 괜찮다. 괜찮다.

모든 고통은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진다.     


그러다 웃음이 났다.

나는 이보다 더 어려운 상황도 많았다. 그때 난 지금과 같은 고민을 하며 살고 싶었다. 이런 고민으로 힘들다면 그건 아마도 행복하거나 적어도 평범한 상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문득 웃음이 났고, 문득 찾아온 그때의 나를 만났다. 민망한 웃음이었을까. 안심의 웃음이었을까.

난 잘 지내고 있다.     


오늘은 우연히 책을 갖게 되었고 우연한 곳에서 책을 읽게 되었다.

한 평도 되지 않는 작은 공간에 넓은 패브릭 소파와 그 높이에 맞는 나무 테이블이 있었다. 바로 앞에는 큰 창이 있었는데 반 정도는 흰색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고 나머지 반으로는 비스듬한 햇빛이 내 오른쪽 팔로 들어오고 있었다. 열람실의 102호였다.

소파에 눕듯 기대어서 가지고 온 책을 펼쳐보니 안에 끼워져 있던 출간도서 광고 카피가 툭 떨어졌다.     


“당신의 삶 주머니 속으로 침투한 괴로움이 당신의 삶 전체를 잠식하게 할 필요는 없다.”

-퀸시 존스     


그래, 그렇다.

어제 힘든 일 하나. 어쩌면 여러 개.

오늘 좋은 일 하나. 어쩌면 여러 개.     


이별은 만남보다 중요하다.

헤어짐이란 과업을 성실히 수행하는 일. 적당한 때와 장소에 꼭 필요한 이별을 하는 일. 충분히 슬퍼하거나 충분히 후련해 할 일.

새로운 만남이 들어오지 않아도 완전할 수 있도록 그 구멍을 꼼꼼하게 메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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