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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슴 Jul 12. 2024

미지의 팀원과 일하는 중입니다①

우리 팀은 두 명이 전부다. 업무가 들어오면 ‘나 아니면 쟤’가 한다. 지난 5년간 함께 일했던 팀원이 퇴사했다. 퇴사 선배로서,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는 팀원을 잡을 수 없었기에 (나는 퇴사 3년 후, 재입사했다) 나는 곧 새로운 팀원을 맞았다.      


신입은 절대 안 된다는 마음으로, 최소 주임급 업무를 맡아줄 사람을 뽑기로 다짐했다. 그런데 기획자 구하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공고를 올리고 한 달이 지났다. 마침내 같은 분야 회사에서 1년 10개월 동안 경력을 쌓았다는 지원자를 뽑았다.      


가장 처음으로 카탈로그 원고 수정을 맡겨보기로 했다. 2년 차니까, 가볍게 워밍업으로 맡긴 업무였다. 크게 설명할 부분도 없는 일반적인 기업 카탈로그. 이미 원고 초안은 전임자가 작성해둔 상태였다. 한참 뒤, 나에게 다시 찾아와 자신의 역량이 부족해 수정을 못 하겠다고 했다. 리플렛이나 카탈로그 원고, 이전 회사에서 써보지 않았나요? 안 써봤는데요. 2년 동안 안 써봤다고? 그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조금씩 펼쳐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를 미지 씨라고 부르겠다.      



미지 씨가 건넨 원고를 처음 읽었을 때, 내 눈을 의심했다. 2년 차라고 하기에는 문장의 기본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비문이 넘쳤다. 한 문장에 똑같은 단어를 두세 번씩 사용했다. 왜 이런 문장을 쓰는 거지? 미지 씨는 말하듯이 문장을 썼는데, 자연스럽게 읽힌다는 의미가 아니라 즉석 인터뷰를 요청당한 시민처럼 의식의 흐름대로 지면을 채웠다. 원고를 다 쓰고 한 번 읽어봤냐고 미지 씨에게 물었다. 미지 씨는 읽어봤다고 대답했다. 읽어봤다고? 다시 읽고도 이상한 문장들을 남겨둔 미지 씨를 이해할 수 없었다.      


원고에서 수정할 부분을 알려 주고, 자리를 파하기 전에 회사는 좀 어떤 것 같냐고 물었다. 스몰토크 중에 미지 씨가 내게 말했다. 기대하지 않아 주시면 좋겠어요. 실망을 하시니까요. 아차, 원고를 읽을 때 나도 모르게 표정에서 드러난 실망감을 미지 씨가 알아차린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엄청난 걸 기대했던가. 무난한 수준의 원고 구성력과 한 번씩 실수로 쓸 수 있는 몇몇 비문과 대체로 깔끔한 문장 정도랄까. 2년 가까이 월급 받으며 글 썼다면 능히 해낼 수 있는 그 정도. 나는 별말 없이 웃으며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연초부터 다양한 프로젝트가 생겨 눈코 뜰 새 없이 일해야 했다. 이상하다, 작년에는 이렇게 바쁘지 않았는데. 야근을 시작했다. 2개월 동안, 간간이 정시퇴근하고 익숙하게 야근했다. 내가 고군분투하는 동안 미지 씨는 꾸준히 6시가 되면 짐을 챙겨 일어났다. 미지 씨가 한 번 야근하는 동안, 나는 스무날을 회사에 홀로 남아 키보드를 두들겼다. 

    

아무리 일해도 일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정시퇴근을 체념하니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어느 일 하나 쉽게 끝내주지 않는 클라이언트. 어느 일 하나 쉽게 맡아주지 않는 팀원. 사방이 막힌 방에 갇힌 것처럼 막막한 마음으로 야근할 때면, 내 안에서 여러 명의 김과장이 깨어난다. 또 나 혼자 남았군. 그래, 야근 횟수가 중요한 건 아니지. 대체 그 기사는 언제 마무리할 셈이지. 이번에도 엉망이겠지. 근데 말이야, 2년 차라면 어느 정도 기사를 혼자서 쳐내야 하지 않나. 내가 2년 차 때는 하루에 기사 하나씩은 쳤는데. 뭐, 라떼는? 세월 참. 이렇게 꼰대가 되어가는구나. 밤이 늦어갈수록 분열은 심해졌다.      



어쩌다 일찍 퇴근하거나 주말이 되면 책을 찾아 읽었다. 팀장의 어쩌고, 저쩌고 팀장입니다 등등 팀장과 팀원의 소통을 다룬 책 세 권을 내리 독파한 나는 나를 옥죄는 이 관계에서 내가 잘못한 점도 많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이게 바로 성장인가. 나를 부숴가며 성장으로 나아가는. 갑각류는 좁아진 껍데기를 버리고 가장 연약할 때를 만나야 비로소 성장을 이룬다고 했던가. 잠이 부족하니까 생각도 이상한 데로 곧잘 튀었다.    

 

우리, 얘기 좀 할까요. 내가 살기 위해서 미지 씨와 마주 앉았다. 나는 그동안 내가 혼자 일하는 것 같은 외로움을 느꼈다고 미지 씨에게 솔직하게 고백했다. ‘정확한 문장’을 쓸 수 있도록 공부해 보자고도 말했다. 미지 씨도 자기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는데, 6시 이후엔 도저히 회사에 남아있을 수가 없다고 했다. 집중도 되지 않고 몸도 힘들어서 회사에서 일이 되지 않는다고, 업무가 남으면 차라리 집에서 해오겠다고 했다. 그런데 집에서 일하면 회사에서보다 더 나은 원고가 나올까? 그리고 정말 일하는 시간을 얼마큼 들였는지 알 수도 없잖아. 그렇다고 내가 일을 했는지 안 했는지 감시하겠다는 건 아니고. 1초 만에 세 가지 반박이 떠올랐지만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너를 이해한다는 듯이. 사실은 나 자신을 이해시키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팀원을 미워하지 않기 위한 노력의 몸부림이었다. 우리 팀은 나 아니면 쟤니까.     



이 외에도 미지 씨의 어록(?)과 딴짓들, 거기에 상응하는 희한한 문장들은 내 복장을 터뜨리기보다 은근히 짓이겨놓았다. 주변 사람들이 궁지에 몰린 나의 안색을 보고 요즘 무슨 일이 있냐고 자주 물었고, 나는 요즘 나를 미치게 하는 이 사태를 털어놓았다. 다양한 대처방법을 알려주었는데, 과연 어떻게 마무리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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