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 Is Afraid를 보고
※스포일러 주의
누구든 시작은 그랬길 바란다.
세상과의 첫 조우는 결코 따뜻하지 않았다. 빛과 어둠이 교차하면서 누군가 내 등을 밀어내듯 그렇게 세상으로 나와버렸다. 그 시작을 알리기 싫어서 일부러 눈물을 참았는지도 모른다. 어둠도 빛도 모두 두려웠던 보는 그렇게 태어났다.
어린 날을 회상해보면 블랙코미디 같았다. 내가하는 말을 상대방은 도통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고, 소통이 안 되는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하루는 지나갔다. 세상은 특별히 위험하고 사람들은 유난히 불친절했다. 대체 어쩌라는 건지, 소통이라는 높은 절벽 위에 아슬아슬 서 있는 공포란 그런 것이다. 구멍이 숭숭 뚫린 어른으로 자라는 동안 수없이 느꼈을 그 공포는 결국 부모에게서 시작된다.
내 곳곳에 뚫려있는 수많은 구멍들은 결국 내가 스스로 채워 나가야한다. 남이 메워준 구멍은 솜사탕처럼 금방 녹아버려서 더 큰 구멍과 상처만 낼 뿐이다. 부모라해도 달라질 건 없다. 보가 고장난 어른으로 자란 것은 그간 자신의 구멍을 모나가 대신 메워주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모나는 보의 구멍을 메워주며 보의 정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사랑이라 강요했다.
분명 좋은 기억들도 있었다. 욕조의 따뜻한 물처럼 내 몸을 편안하게 감싸던, 누워있는 내 위에서 생글 웃으며 내 볼을 만지던 모나의 표정을 기억하기 때문에 보가 느끼는 죄책감은 훨씬 더 컸을 것이다. 결국 보는 모나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모나가 없어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모나는 자신의 구멍까지도 스스로 메우지 못한 채 죽어갔다. 보가 모나를 그리워하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의지하는 것도 그리고 외면하고 죽이고 싶어 하는 것도 모두 거짓 없는 마음이다. 서로에게 진심으로 뜨거웠기 때문에 보가 마주한 영화 같은 현실이 더 가슴 아프다.
같은 어른으로 서로 응원하면서 늙어가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우리는 대체 서로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나. 스스로 세상을 살아가는 힘은 대체 어디에서 찾아야할까. 누가 그 힘을 대신 쥐어줄 수 있을까.
보가 태어나던 날 의사의 실수로 보가 떨어졌다. 떨어졌다고 과민한 엄마가 믿었는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엄마가 보를 떨어뜨렸을지도.
명절이 온다.
명절이면 외로운 사람들이 더 외로워진다. 기다리고 실망하는 고독한 싸움을 연휴 내내 해야 한다.
그만 미안하자.
이제 더 이상 실망하지 않길, 기다리지 않길.
스스로 하루를 온전히 살아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