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 일

아버지의 길(Otac, Father, 2020)

by 우린

2021년 9월 28일 화요일,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아버지의 길' 시사회에 참석했다. 어떤 과정을 뜻하는 길을 떠올리며 관람했는데, 실제로 두 발로 걸어 나가야 하는 길 위에서 펼쳐지는 영화였다. 다만 도착점으로 한정되지 않는 길처럼 느껴졌다.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해당 시사회는 키노라이츠에 응모 및 당첨되어 참석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아버지의 길(Otac, Father)'


줄거리

'니콜라 스토이코비치'가 부당 해고를 당한 후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그의 아내 '밀랴나'는, 어린 남매와 분신자살을 시도한다. 이 비보를 들은 니콜라는 아내가 있는 병원으로 향하지만, 신경쇠약을 진단받은 그녀를 만나지 못한다. 그리고 복지센터에서 데리고 간 자녀들을 찾아가려고 하지만, 이미 위탁가정으로 분리 처분을 받은 이유로 좌절한다. 이후 복지센터에서 제시한 조건들을 만족시켰지만, 여전히 자녀들을 만날 수도 없는 니콜라는 이의 신청서를 들고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갈림길
The ways


시작부터 길이었다. 언제나 땅에 두 발을 붙이고 사는 존재로서, 길 위에서 영화가 시작되는 게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니콜라가 내딛는 걸음에 집중하면 더 많은 것을 읽어낼 수 있다. 그가 길을 걸어가는 것은 단순한 이동이 아닌, 단호한 행동이다.


니콜라에 앞서 길을 나선 건, 그의 아내 밀랴나였다. 그녀는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니콜라가 해고당한 직장으로 향한다. 밀린 월급과 퇴직금 문제를 지금 당장 해결하지 않는다면, 분신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는 말을 행동으로 옮긴다. 이제 니콜라의 길이 시작된다. 일용직 벌채 작업을 하던 니콜라는 아내와 남매가 걸었던 길을 정확하게 그러나 빠른 걸음으로 달려간다. 이어서 병원으로 이송된 아내를 찾아가고, 아이들을 보호하고 있다는 복지센터로 간다. 하지만 그 누구도 다시 만나지 못하고 착잡한 심경으로 집에 돌아온다.


지인 '코스타'의 도움으로 이의 신청서를 작성한 후, 아이들과 다시 살아가기 위해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로 출발한다. 그는 오로지 두 발로만 이동한다. 그는 인도, 차도 그리고 길이 없는 곳도 과감하게 걸어간다.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신고를 받은 경찰과 마주하고, 들에서 늑대 무리와 만나기도 한다. 위기가 찾아온 만큼 조력자들도 만나게 된다. 이처럼 니콜라의 이야기는 여느 모험의 서사를 갖고 있는데, 무언가를 얻기 위한 모험담(대표적으로 '그린 나이트(2021)'가 있는데, 주인공은 갖지 못한 '영웅적 면모'를 위해 모험을 떠난다.)과는 차이가 있다. 니콜라는 빼앗긴 것을 되찾기 위해서 나선다는 데에서 구별된다. 그럼에도 모험담이라고 해석하는 이유는, 그가 아버지의 자격을 증명하기 위해 나섰다는 점 때문이다.


그는 300km나 되는 거리를 두 발로 걸어가기로 하는데, 이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니콜라의 가정이 얼마나 심각한 가난을 겪고 있는지를 확인한 우리들은, 자연스럽게 금전 문제 때문이라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에서 우리는, 니콜라가 집으로 돌아갈 '차비'를 준비해뒀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루라도 빨리 아이들과 아내를 되찾고 싶은 니콜라였을 텐데, 그는 5일이라는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 책임자를 만나지 못하면 돌아가지 않겠다는 각오로 출발한 니콜라이기에, 돌아올 방법 없이 떠났을 것 같다는 짐작이 들기도 했었다. 이처럼 처음에는 걷는 것 말고는 아무 선택권이 없어 보이던 니콜라였다. 하지만 결국 니콜라는 베오그라드로 향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길이란, 방법이나 수단 혹은 과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단어다. 아이들을 되찾는 것에 맹목적이라고만 생각한다면, 아버지라는 존재의 길은 마치 정해져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니콜라가 걸어간 길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그것은 한 가지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러 갈림길 교차점에서 그는 선택을 하며 저벅인다.


출처: 네이버 영화 '아버지의 길(Otac, Father)'




길 위에서
On the road


니콜라는 길 위에서 다양한 동물과 인물들을 만난다. 동물은 인물보다 상징적으로 그려질 때가 있는데, 언어 대신 다른 소통 방식을 사용한다는 면에서 더욱 그러하다. 관람자는 동물이 취하는 행동의 부분적인 모습을 보고, 인간을 비유하거나 상징성을 부여한다. 물론 모든 동물들이 상징적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고민은 우리를 늘 즐겁게 만든다.


니콜라가 베오그라드로 향하기 시작하자마자 하늘을 날아가는 새떼를 본다. 니콜라와 새들은 정확한 목표를 향해서 나아간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하지만 땅에 있는 니콜라가 하늘에 있는 새들을 바라보려면, 고개를 들어 우러러봐야 한다. 또한 새들과 니콜라 사이의 거리로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는 점도 흥미롭다. 흩어진 가족과 다시 만나기 위해서 집은 나선 니콜라와 무리를 지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새떼가 서로 대척점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그다음으로 만나는 동물은 떠돌이 개다. 어느 순간부터 니콜라를 따라오기 시작한 개는, 니콜라가 잠시 멈추어 쉬자 똑같이 휴식을 갖는다. 니콜라는 얼마 안 되지도 않는 빵을 개에게 떼어주고, 같은 담요를 덮어서 잠을 잔다. 이 개는 앞서 말한 새와 다르다. 니콜라와 아주 가까이 붙어있는 점에서 그러한데, 그런 의미에서 개는 니콜라 혹은 그의 가족처럼 보인다. 다음날 아침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개는, 부당 해고로 인해서 잔인한 생활고를 겪어야 했던 그와 닮아있다. 이런 개가 니콜라와 떨어진 후에 사고가 일어났다는 점에서, 니콜라로 하여금 자신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자녀를 연상시킨다.


이후 니콜라는 산에서 토끼를 보기도 하며, 들에서 늑대 무리를 만나기도 한다. 토끼와 늑대는 동물의 세계에서 약자와 강자로 분류되는데, 이들은 지나가는 니콜라를 바라볼 뿐 특별한 행동을 취하진 않는다. 다만 토끼는 니콜라를 보고 도망을 가며, 늑대는 가만히 서서 그를 응시한다. 이들은 니콜라의 자녀를 위탁가정에 무기한으로 맡기려는 복지센터장의 처분을 따르기만 하는 센터의 직원들과 유사하다. 그들은 자신이 힘이 없다고 생각해서 자리를 뜨고, 자신과는 관련 없다고 외면한다.


출처: 네이버 영화 '아버지의 길(Otac, Father)'




자력구제
Do what you can


"자력구제가 해답이야."


니콜라의 이야기가 마을에 퍼지자, 그의 친구가 나타나 그를 차에 태워준다. 만약 아이들을 빼내오면 국경을 넘어갈 수 있게 해주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니콜라가 내려야 할 곳이 다가오자 친구는 차를 세우고, 트렁크를 연다. 그러자 일면식 하나 없는 외국인들이 우르르 내린다. 니콜라의 친구는 자신의 말처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중이었다. 다만, 그 일은 할 수 있지만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이처럼 영화의 인물들은, 할 수 있는 일이 늘 최선은 아니라는 것을 사색하게 만든다.


먼저 복지센터 사람들은 권리를 운운하며, 남용에 가까운 명령을 내린다. 또한 이들은 모든 사람들의 권리가 아닌, 자신들의 권리만을 내세운다. '아동 최선의 이익'을 위해 내린 처분은 권리에 부합하지만, 이에 항의하는 니콜라에게는 그럴 권리가 없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특히 센터장의 권리는 횡포에 가깝다. 처음에는 복지센터 '위원회'의 결정이라고 말하지만, 니콜라의 계속된 이의 제기에 '나'의 결정임을 강조한다.


이후 니콜라가 여정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모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경찰은 고속도로를 걷고 있는 니콜라를 잡았으며, 의사는 길에 쓰러진 그를 치료한다. 그에게 음식을 내준 사람, 차로 그를 태워준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언론사는 그의 이야기를 신문에 싣고, 방송에 내보냈다. 이런 노력들이 모여, 그가 고용노동보훈복지부 차관과 마주할 수 있게 했다.


차관도 역시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행동한다. 니콜라를 존경한다는 차관은, 이의 신청서를 받아들이고 권고서를 써준다. 하지만 권고서는 강제성이 없기에 복지센터의 재처분을 강요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SNS에 게재하기 위해서 니콜라와의 사진도 잊지 않는다.


되돌아온 니콜라에게 복지센터장은 권고서의 내용을 이행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아이들을 돌려줄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또한 법에 기반한 것이라 강조하며 법 조항을 읊는다. 그러자 니콜라는 일주일에 한 번은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권리가 법으로 보장된다고 주장한다. 결국 법과 권리를 내세우는 이에게 니콜라도 똑같이 대응한다. 이런 그의 행동은, 이전에 할 수 있었지만, 행동하지 않은 사람들을 마음을 움직였다. 센터 직원 중 한 명이 니콜라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강구해 보겠다고 한 것이다. 즉, 센터장의 행동이 권리와는 별개로 만행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할 수 있는 일이, 곧 해도 되는 정당한 일은 아닌 것이다.


니콜라도 할 수 있는 일들을 줄곧 해왔다. 호의를 받아들일 때도 있었고, 강력하게 항의할 때도 있었다. 이런 그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세간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그것을 훔쳐 간 사람들은 그가 다시 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다. 그는 여기저기 흩어진 가구들을 다시 집으로 가져온다. 아이들과 다시 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던 그는, 담담하게 식탁을 등에 짊어진다. 가족 수에 딱 맞는 의자를 한 개도 빠뜨리지 않고 되찾아온다. 그 의자들 위에 가족을 앉히기 위해서 그는 얼마나 더 긴 길을 갈 수 있어야 할까.


출처: 네이버 영화 '아버지의 길(Otac, Father)'





출처: 다음 영화 '아버지의 길(Otac, Father)'














2021년 09월 28일 CGV 용산아이파크몰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39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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