쁘띠 마망(Petite maman, 2021)
2021년 10월 6일 수요일,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쁘띠 마망' GV에 참석했다. 'petite'는 '작다', '귀엽다' 그리고 '어리다'라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 단어인데, 모든 뜻에 맞는 엄마(maman)를 만날 수 있는 영화였다. 역시나 영화 전에는 특별한 정보 없이 관람했다.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이 글은 해당 GV에서 다뤄졌던 내용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넬리'의 외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넬리의 가족은 외할머니 집을 정리하게 된다. 어머니가 쓰던 방에서 잠을 자게 된 넬리는 어머니 '마리옹*'의 유년 시절을 궁금해진다. 어느 날 어머니가 뛰어놀던 숲에서, 어머니와 같은 이름을 가진 아이를 만나게 된다.
*영문 표기로는 '마리옹'에 가깝지만, 프랑스어 발음으로는 '마히옹'에 가까운 발음이다. 이 글은 '다음 영화'에 표기된 이름 '마리옹'을 사용하였다.
과거의 모습
The image of past
생생하고 정확한 기록들이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우리는 기억 속의 과거를 여전히 볼 수 없다. 과거는 마치 잔상처럼 기억에 머문다. 그리고 잔상이란 늘 현재에 중첩되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할머니 댁에 도착한 후 넬리의 아버지는 부엌의 냉장고를 한편으로 옮긴다. 그러자 그 자리에는 이전의 벽지가 마치 네모난 문처럼 드러난다. 이는 비유일 뿐, 실제로 과거로 들어가는 문은 아니다. 그렇게 넬리는 어머니의 과거를 부분적으로 접하게 된다. 그리고 어머니가 사용하던 방에서 시간을 보내며, 넬리는 계속해서 어머니가 간직하는 추억에 빠져든다.
사실 넬리는 이전부터 어머니의 어린 시절을 궁금해했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유년 시절에 뛰어놀던 숲에서, '마리옹'이라는 이름의 여자아이를 만난다. 마리옹이 만들고 있던 오두막에, 넬리가 챙겨온 예쁜 색의 낙엽들이 더해진다. 이처럼 어머니가 간직해온 기억의 잔상이 넬리의 현재와 겹쳐져, 오두막이 완성된다.
꼬마 마리옹과 넬리는 서로의 얼굴만큼이나 닮은 공통점을 알아차리고 단숨에 친해진다. 특히 그들은 서로의 '이름'을 통해서 익숙함을 느낀다. 넬리의 어머니 이름이 '마리옹'이었고, 마리옹의 외할머니 이름이 '넬리'였기 때문이다. 즉, 어린 넬리를 기준으로 어머니로 거슬러 올라가면, '넬리→마리옹→(마리옹의 어머니=넬리의 외할머니)→넬리'가 된다. 이 익숙함은 곧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이는 넬리와 마리옹 두 아이뿐만 아니라, 넬리의 외할머니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녀가 넬리의 이름을 부르자, 자신의 어머니 잔상이 어린 넬리 위로 드리워졌을 것이다.
관객도 이 인물들처럼 이전에 알고 있던 마리옹과 새로 사귄 마리옹을 중첩시키며 바라보게 된다. 특히 넬리는 타임머신처럼 특별한 장치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과거와 마주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기계식 기술 없이도 시아마 감독은 인상적인 장면들을 시적으로 편집하여 영화적 마술을 이끌어냈다.
흑표범
Le léopard noir
영화는 역설적이게도 여러 번의 헤어짐의 인사로 시작한다. 넬리가 그동안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던, 병원의 할머니들과 작별 인사를 건넨다. 수많은 작별 인사가 오가지만, 넬리는 세상을 떠난 할머니께는 제대로 된 인사를 하지 못했다. 할머니의 병실을 정리하던 어머니의 힘없는 모습이 넬리의 눈에도 들어온다. 넬리가 건네는 간식만큼 작은 위로를 어머니께 전달할 수 있을 뿐이다.
넬리의 어머니는 방 한편에 '흑표범'이 있다는 이야기를 넬리에게 들려준다. 이 표범은 눈이 어둠에 익숙해졌을 때 나타나는데, 이것의 심장소리가 들릴 만큼 생생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결국 이 심장소리는 표범의 것이 아닌, 자신의 것이었다고 고백한다. 잠을 잘 이루지 못하던 넬리는 어머니께 할머니와 제대로 된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해서 슬프다고 말한다. 이처럼 부모님이 슬픈 감정을 보일 때면, 아이들은 그것이 자신 때문은 아닌지 걱정할 때가 있다. 넬리처럼 마음속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가슴속 심장이 뛰는 소리가 흑표범이 내는 소리처럼 들릴 수 있다.
유전적으로 내려오는 불편함을 겪지 않기 위해서, 어린 마리옹은 어떤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넬리는 입원을 위해 짐을 챙기는 마리옹을 도와준다. 마리옹이 걱정되는지 넬리에게 묻자, 넬리는 마리옹의 수술이 잘 될 것이라고 응원한다. 그러자 마리옹은, 어머니를 여읜 미래의 마리옹이 걱정되는지 다시 묻는다. 같은 또래의 마리옹은 쉽게 위로했지만, 어머니인 마리옹에게 건네는 위로는 쉽지 않다. 마리옹은 이런 넬리에게, 어머니가 슬퍼하는 것은 네 탓이 아니라고 말한다.
(프랑스의 작별 인사. 여기서는 또 만나자는 의미보다는 긴 이별의 인사에 가깝다.)
병원으로 출발할 준비를 다 마친 마리옹은, 넬리와 작별 인사를 한다. 그리고 넬리는 차에 타고 있는 할머니께도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 그동안 할머니의 마지막을 배웅하지 못한 작은 상처가 넬리를 힘들게 했었다. 하지만 넬리는 이제 할머니와 제대로 된 이별을 하게 된다. 넬리는 어머니에 대한 걱정을, 흑표범이 아닌 나무의 그림자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것을 따뜻하게 드리우는 달빛이 된다.
마지막
It could be the last
이 말은 넬리의 외할머니가 습관처럼 하던 말이었다. 마지막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자는 의미보다는, 다가올 시간에 대해 회의적인 관점이 엿보인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알 수 없지만, 넬리는 이런 할머니와의 마지막을 함께하지 못했고, 자고 일어나 보니 어머니 또한 가족들보다 먼저 집으로 돌아갔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어릴 적 추억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있기에, 어머니의 유년 시절을 스스로 찾아 나서야 했다.
넬리는 꼬마 마리옹과 만났을 때, '잠시' 할머니 집에 머물고 있다고 자기를 소개한다. 마리옹도 수술을 3일 앞두고 있었다. 마리옹과 함께 하던 즐거운 시간도 잠시, 넬리는 이들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넬리는 마리옹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고, 넬리의 집에 간 마리옹은 넬리의 말을 믿게 된다.
그들은 오늘이 함께 할 수 있는 마지막 날임을 깨닫는다. 할머니 집이 다 정리되어, 넬리가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음 기회에 다시 놀러 오자는 넬리 아버지를 설득하고, 넬리는 마리옹의 집에서 하룻밤을 자게 된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보낸 밤은 마리옹의 생일밤이었다. 마리옹의 어머니 그리고 넬리가 마리옹의 생일을 축하한다. 생일 노래를 들으며 생일 케이크를 마주한 마리옹은, 다시 한번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달라고 요청한다. 생일 초를 불기까지 너무나 짧은 시간이기 때문에, 마리옹은 이 순간은 조금이라도 더 오래 간직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넬리와 마리옹은 참 소중한 마지막 하루를 보낸다.
마지막이 찾아올 줄 알고서도 이들은 슬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짧은 시간을 더 즐기려는 어린아이들의 순수함이 돋보인다. 외할머니는 항상 마지막이 찾아올 것이라고 버릇처럼 말씀하셨다. 넬리는 그 마지막을 놓쳐버렸다는 슬픔도 잠시, 이제는 어떻게 마지막을 보내야 하는지 알게 된다. 이들은 서로가 이미 마음속에 있기에, 아쉬운 헤어짐 앞에서도 이 순간을 간직할 수 있다.
2021년 10월 06일 CGV 용산아이파크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