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디(Wendy, 2020)
2021년 6월 28일 월요일,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열린 웬디 시사회에 다녀왔다. 늘 배경지식 없이 영화를 관람하는데, 아무 정보 없음에도 불구하고 '웬디'처럼 꼭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필자는 디즈니의 피터팬 애니메이션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웬디는 피터팬을 재창조한 영화인데, 영화가 시작되고 나서야 '이 영화 피터팬과 비슷한 것 같은데?'라고 떠올렸다. 필자에겐 재창조된 피터팬 영화가 아닌, 오로지 '웬디'로 기억될 영화였다.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해당 시사회는 키노라이츠에 응모 및 당첨되어 참석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철도 옆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어머니 덕에 웬디와 그녀의 쌍둥이 더글라스, 제임스는 기차와 뛰어놀며 자란다. 웬디는 영원히 아이로 머무르는 동화를 즐겨 읽는데, 친구인 토마스는 어느 날 유령 기차를 타고 사라진다. 몇 년이 흐르고, 웬디에게도 유령 기차가 도착하자, 쌍둥이 오빠들과 그 기차에 올라탄다. 아이들은 피터가 보여주는 황홀하고 드넓은 자연 속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그 섬에는 노인들이 호시탐탐 아이들을 노린다.
꿈
Dream
아이들은 엄마가 자기들처럼 아이였던 시절이 있었는지를 궁금해하며 엄마의 꿈에 대하여 물어본다. 이에 엄마는 로데오를 실컷 타는 것이었다고 말하고, 아이들은 엄마의 작은 꿈을 듣고 웃는다. 이번엔 웬디가 엄마가 현재 갖고 있는 꿈이 무엇인지 묻는다. "너희들을 잘 키우는 것." 엄마가 답한다.
엄마의 어릴 적 꿈은 사소하지만 재밌고, 현재의 꿈은 딱딱하고 재미도 없어 보인다. 매일 제비를 넘으며 장난을 치는 쌍둥이들과 웬디는 엄마의 답을 듣고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고리타분한 어른이기보다 영원히 즐거운 아이로 머물고 싶어 한다. 여기서 주목해봐야 하는 것은 엄마의 꿈이 어른이 되면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로데오를 실컷 타는 것을 이미 이뤘을 수도 있고, 아니면 직업이나 육아 때문에 더 이상 로데오를 못 타게 된 것일 수도 있다. 이처럼 누구나 어린 시절이 지나가면 꿈은 바뀌게 된다. 혹은 꿈이 바뀌는 순간,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 웬디는 로데오가 그려진 상의를 입고 다닌다. 엄마가 로데오를 실컷 타고 싶었던 것처럼, 웬디도 엄마의 어릴 적 마음 그대로 신나게 모험을 한다. 이 부분을 보고 느꼈던 것은, 우리는 부모님의 어릴 적 사진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서야, 어른들에게도 아이일 적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대 차이 혹은 환경 차이로 서로의 꿈에 완벽하게 공감할 수는 없다. 어릴 적 이야기를 늘여뜨려 놓는 어른은 꼰대라고 불리기도 하며, 어린이 같은 취향을 갖고 있는 어른은 키덜트로 분류되기도 한다. 하지만 엄마의 꿈이 그려진 옷을 입고 자라나는 웬디처럼, 부모님들의 어릴 적 꿈은 우리가 갖던 꿈과 닮아 있을 것이고, 우리의 지나갈 이 꿈들도 아이들의 상상과도 비슷할 것이다.
아이들과 노인들
Children and old men
'웬디'에서 말하는 어른은 청년 혹은 중장년과는 다르게 유독 노인으로 그려진다. 아이들과 노인들의 대립을 보여주고, 하루아침에 노인의 팔을 갖게 된 제임스는 다소 이분법적인 접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 말하는 어른의 의미를 되새겨 보면, 이는 이분법적이라기보단, 단절의 의미를 갖는다.
사람은 아기로 태어나서 연속적으로 성장한다. 어린이에서 청소년 그리고 청년이 된 후에도 시간에 따라 늙어간다. 아이로 머물고 싶어도, 어느새 어른으로 자라나는 것이다. 이 과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성장하는 몸과 맞춰 마음도 어른처럼 자라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흘렀음에도 성장하지 않은 토마스처럼, 피터가 안내한 섬에서는 아이들이 자라지 않는다. 이 섬에서는 늘 즐겁다고 말하는 피터는 동심을 비유하는데, 그는 아이로 머문다면 항상 즐거울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일단 시련을 알게 되면, 다시는 아이로 돌아가지 못한다고 경고한다. 노인이 되어버린 버조와 사람들은 아이가 되고 싶어 하지만, 이미 아이처럼 상상하거나 웃을 줄 모른다.
그렇다면 정상적으로 성장한 어른들은 어디에 있을까? 그들은 이미 피터의 섬을 떠나, 동심을 간직한 채 어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시련과 성장을 받아들인 웬디의 엄마처럼 말이다. 피터의 섬에 있던 아이들이 다시 가족의 곁으로 돌아오면서 그들은 청년이 되고 부모가 된 것을 확인할 수가 있다. 영화의 마지막에 엄마가 된 웬디는 딸이 피터와 만나 기차를 타는 것을 보게 된다. 어릴 적 웬디처럼 뛰어보지만, 그 열차에는 다시 올라탈 수는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어린 시절처럼, 그녀의 딸이 피터를 만나 성장의 의미를 깨닫게 되길 바랄 것이다. 웬디의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내일'호
The boat, manyana
웬디와 쌍둥이 형제 더글라스와 제임스는 해안가에서 어느 고물선을 발견한다. 이 고물선에는 'Manyana'라고 적혀있는데, 이들은 이를 '만야나'라고 읽고, 웃긴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Manyana'는 사전에 있지 않은 단어이다. (지역명이 Manyana인 곳이 있긴 하다.) 하지만 '만야나'를 '마냐나'라고 읽으면 그 고물선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마냐나'는 'Mañana'와 발음이 같아지는데, 이는 스페인어로 '내일'이라는 뜻의 단어다. 이 배는 굉장히 낡아있고, 주인 없이 해안가에 아무렇게나 정박되어 있다. 피터의 섬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똑같이 늙지 않고 영원히 아이로 지낼 수 있는 특별한 곳이다. 그렇기에 '내일'은 어제와 같고 오늘과 같다. 즉, '내일'이라는 단어는 아무 쓸모가 없다.
심지어 더글라스가 이 배에서 다치면서, 제임스와 웬디는 더글라스가 죽었다고 생각하며 헤어지게 된다. 자신의 반쪽을 잃어버린 제임스는 그날 이후 슬픔에 젖어, 이전처럼 아이로서의 나날을 즐기지 못한다. 제임스에게는 고물선 사건 이후로 내일로 그려지는 미래가 없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 시련을 겪으며 노인처럼 늙어버린다. 제임스는 늘 행복할 것이라는 피터의 동심을 의심하며 시련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동심 전체를 없애버리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노인들과 함께 고물선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아이들을 미끼로 잡으러 간다.
반면 후에 발견되는 더글라스는 노인처럼 변하지 않고 아직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런 더글라스에게 제임스는 서로를 잃었는데, 자신만큼 슬퍼하지 않았다며 더글라스를 탓한다. 하지만 더글라스는 시련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영원히 아이로 머무는 것이 행복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웬디 또한 이 쌍둥이 오빠들을 보고, 더글라스처럼 성장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내일'의 이름을 가진 고물선 사고가 웬디와 쌍둥이 형제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과연 제임스가 움직인 '내일'호는 그에게도 성장의 의미를 알려줄 수 있을까?
2021년 06월 28일 씨네큐브 광화문